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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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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균 통일부장관 후보자님께 드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런 철학도, 비전도, 정책도 없었던 박근혜 정부 아래서는 누가 통일부 장관이 되든 저는 아무런 관심도,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제가 가장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다리던 각료 지명이 바로 '통일부 장관'이었습니다.

지난 13일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되신 조명균 후보자의 첫 발언은 "개성공단 재개"였습니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반가운 일성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은 남북경제 협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이 민족화합과 평화통일의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성공단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여간 여러 차례 북한을 여행하며 제가 만난 북한동포 중에 개성공단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북한동포들은 개성공단을 민족화합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남녘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개성공단 재개" 발언은 북한동포들에게도 평화의 청신호로 비쳤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핵'을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지난 5월 15일 압록강철교 북측 지역인 신의주 화물 접수 창고에서. 평양에서 마중나온 셋째 수양딸 최경미 안내원과 함께 쌀을 확인 접수하면서.
 지난 5월 15일 압록강철교 북측 지역인 신의주 화물 접수 창고에서. 평양에서 마중나온 셋째 수양딸 최경미 안내원과 함께 쌀을 확인 접수하면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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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하고 1주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2016년 여름 대홍수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함경북도 수재민들을 위해 저는 남과 해외의 동포들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외국인들이 정성스레 모아준 성금으로 구입한 쌀을 전달하기 위해 북한에 방문했습니다. 북한 동포들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잘 알고 있었으며, 남북관계 개선에 큰 기대를 갖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 동포들에게 조심스럽게 핵과 미사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물론 저의 속마음은 '분위기 조성을 위해 혹시라도 핵시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같은 군사적 행동을 자제해줬으면' 하는 뜻에서 그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핵과 미사일은 남조선과는 전혀 련관이 없는 일입니다. 기건 미국과의 대결입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의 일정대로 갈 것입니다."

이런 답이 나올 줄 짐짓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저는 그들의 반응이 무척 걱정스러웠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6.15와 10.4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하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뒤쪽에서 조명균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책상위에 올려 놓은 디지털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며 동시에 메모를 하고 있다.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하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뒤쪽에서 조명균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책상위에 올려 놓은 디지털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며 동시에 메모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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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북한동포들에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북한동포들은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동포들에게 "6.15 선언의 요지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자주적으로 우리끼리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냐"라고 되물었습니다. 덧붙여 "미국과의 문제도 남과 북이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런 저의 언급에 그들도 더 이상 답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저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침묵에서 우리의 역할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북한동포들이 말하는 '일정'에 우리도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우리가 그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봤습니다.

남북관계에 있어 지난 9년간은 칠흙같은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남북관계는 전쟁 촉발 직전 상황에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혹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북한에 세 명의 수양딸들을 포함한 수양가족들이 있고 따뜻한 동포애를 저에게 베풀어 준, 눈에 밟히는 북녘의 동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동해에서 군사작전을 펼친 미국과 일본의 해군 함정들을 미국 TV 뉴스로 보며 지금도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박근혜 탄핵'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남북관계는 더 험악한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에게 새 시대를 맞아 다시 한번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새 역사의 장을 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는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만나야 합니다, 그 시작이 개성공단이길 기대합니다

지난해 2월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가 차량에 물품을 가득 싣고 복귀하고 있는 모습.
▲ 박스 테이프로 꽁꽁 동여매고 철수하는 개성공단 화물차량 지난해 2월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가 차량에 물품을 가득 싣고 복귀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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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통틀어 '통일'이라는 이름을 붙인 행정기구를 갖고 있는 나라는 분단국가인 우리 나라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부 장관이란 직책도 세계 유일의 행정각료직일 것입니다. 이는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비애가 만들어낸 직책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는 직책일 수도 있습니다. 

2011년 10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 북한 관광을 떠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까지 저는 북한이 한국 국적자를 제외한 전 세계 나라 사람들에게 관광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한 출신의 미국 시민입니다. 북한동포들에게 있어 저는 최악의 조합인 셈입니다. 과연 북한동포들은 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자세로 저를 대할 것인지 불안해 했던 기억입니다. 그러나 저는 첫 방북 이후 무려 여덟 차례나 더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조국의 최북단 함경북도의 두만강이 동해로 흘러가는 그곳에 이순신 장군의 기념관이 있었습니다. 그곳부터 남녘의 연평도가 훤히 보이는 황해도 해안가까지 여행하며 저는 통일 조국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 남과 북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 공동체를 이뤄 함께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민간이든 정부 차원이든 우선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없이 사랑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 시작점이 개성공단 재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첫 일성이 개성공단이라는 점에서 통일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고맙습니다.


태그:#조명균, #통일부장관, #문재인, #신은미,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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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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