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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14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상훈·박병대 전 대법관 후임 대법관 후보자 추천을 위해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한덕수 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14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상훈·박병대 전 대법관 후임 대법관 후보자 추천을 위해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한덕수 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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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16일 마지막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행사하며 '서울대·남성·판사'라는 기존 공식에서 다소 벗어난 인물들을 발탁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의 다양화'라는 사회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양승태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 대법관 후보로 조재연 변호사와 박정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임명을 제청했다. 이들은 지난 2월과 6월 각각 퇴임한 이상훈·박병대 대법관 후임이자 문재인 정부의 첫 대법관 후보다.

두 사람은 모두 비서울대를 나왔다. 조 변호사는 성균관대학교, 박 부장판사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이들은 판사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조 변호사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법관으로 재직했고, 박 부장판사는 현직 법관이다.

'비서울대·여성·재야' 나름 참신하긴 하지만...

법관 시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판결을 선고한 경력도 닮았다. 조재연 변호사는 1985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민중달력'을 만들어 배포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는 피의자들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1987년엔 납북귀환어부 간첩사건에 무죄를 선고하는 등 군사독재시절 시국사건에서 소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박정화 부장판사는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시절 쌍용자동차 징계해고 1심을 맡아 '파업 참여를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먼저 신고된 집회가 '유령집회'라면 나중에 신고된 집회를 금지해서 안 된다는 판결을 선고했고, 남편이 숨진 뒤 재혼을 강요당한 케냐 여성과 동성애자란 이유로 박해를 받아 한국으로 도피한 나이지리아 남성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두 사람의 입지전적인 면모 또한 눈길을 끈다. 조 변호사는 덕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을 다니며 야간대학에 진학했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인물이다. 박 부장판사는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출신으로 서울행정법원 최초의 여성 부장판사였다.

양 대법원장은 이번 임명 제청 때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를 각별히 염두에 뒀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법대·판사 출신에 남성 일색이었던 기존 대법관 후보 임명제청을 감안하면 '조재연·박정화 카드'는 참신한 편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조재연 후보자 발탁을 두고 대법관이 고위 법관의 최종 승진자리로 여겨온 관행이 깨졌다고 평가했다. 또 여성을 임명제청한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박 부장판사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대법관 14명 중 3명이 여성으로 채워진다. 역대 가장 높은 여성 비율이다. 지금까지 김영란·전수안·박보영·김소영 네 명의 여성 대법관이 나왔지만 현직 숫자는 최대 두 명이었다.

"여전히 법관 중심... 논란 속에 대법관 뽑아야 하나"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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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두 후보 모두 결국 판사 출신"이라며 "여전히 법관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력 후보 중 하나였던 김선수 변호사를 언급하며 "약자들의 권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기대가 부정돼 아쉽다"고도 했다. 김 변호사는 새 정부의 첫 대법관 후보로 유력하게 꼽혔던 인물이다. 그는 제27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뒤 노동·인권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걸어왔고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개혁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한상희 교수는 "출신이나 성별을 따지는 다양성은 형식적이다,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라며 "이번 임명제청은 그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이 잦아들지 않은 상황에서 양 대법원장의 임명제청권 행사는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대법원은 사법개혁을 논의하려는 판사들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고, 그 의혹을 진상조사한 결과마저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 법원의 판사들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6월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연다(관련 기사 : '법원발 블랙리스트 사건' 마침내 입 연 대법원장).

한 지방법원 판사는 "이번 임명 제청은 정말 무난하다. 법원 내부에서 비판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양 대법원장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 역시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 자체도 법무부 장관 등이 대행 체제라 안정적이지 않다"며 "굳이 지금 대법관을 뽑아야 하냐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태그:#양승태, #대법원, #사법개혁,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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