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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무등산, 초록 잎새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검광처럼 번뜩인다
 6월의 무등산, 초록 잎새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검광처럼 번뜩인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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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유수와 같다 했던가. 찬란하고 위대했던 '2017년의 봄'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계절은 어느덧 '녹음방초 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로 접어들었다. 초록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향긋한 풀냄새 감도는 여름이 꽃피는 봄철보다 못하지 않다고 했으니, 가버린 봄을 그리 아쉬워할 것은 아니다. 영랑처럼 봄을 여읜 설움에 마냥 섭섭해 울 일만은 아니다.

'낙화'라는 시에서 이형기 시인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이별의 순간을 아름다움으로 변주시켜 놓는다. 사람뿐 아니라 계절도 우리의 삶을 순환하고 있다. 찬란했던 봄과의 이별 뒤에는 가슴 뛰는 여름과의 사랑이 있다. 초여름 무등은 어떤 얼굴일까. 그 가슴 뛰는 사랑을 만나러 간다.

무등산 초입,하얀 털실을 주렁주렁 매달고있는 밤꽃이 비릿한 살내음을 풍기고 있다
 무등산 초입,하얀 털실을 주렁주렁 매달고있는 밤꽃이 비릿한 살내음을 풍기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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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민초(民草)들

불과 보름 만이다. 중머리재 가는 길, 연둣빛 신록의 물결들은 어느새 검푸른 녹음으로 깊게 물들어 가고 있다. 아기 손같이 보드랍던 잎새들은 황사며 미세먼지 다 이겨내고 원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짙어지고 있다.

당산나무가 있는 송풍정 쉼터를 지나 오르는 길가 묘지에 찔레꽃과 보라색 엉겅퀴 꽃이 흐드러 지게 피어나 무덤을 뒤덮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찔레꽃이 연분홍색을 띠고 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유행가 가사에나 나오는 보기 드문 붉은 찔레꽃이다.

중머리재 가는 길 묘지에 피어있는 붉은 찔레꽃
 중머리재 가는 길 묘지에 피어있는 붉은 찔레꽃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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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꽃잎으로는 떡을 해 먹었고 배고팠던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간식으로 어린 순을 따 먹었다던 찔레꽃이다. 그래서인가. 소리꾼 장사익은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놓아 울었다고 절창(絶唱)을 하고 있다.

꽃대를 쑥 내밀고 보라색 꽃을 단 채 여전사처럼 늠름하게 서있는 엉겅퀴는 무엇이 두려워 앙상한 가시로 중무장을 하고 있을까. 엉겅퀴란 이름은 '피를 엉기게 하는 풀'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혈 효과가 있어서 등산이나 야외 활동 중 상처가 났을 때 비상 약품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기 때문에 요즘 같은 가뭄에도 끄떡없이 잘 자라는 강인한 풀이다.

찔레와 엉겅퀴, 짓밟히고 억눌려도 온몸으로 항거하고 다시 일어서서 남의 자리 탐내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피어난다. 주류에서 밀려나 질박하게 살아가는 마이너들의 삶과 닮아 있다.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민초들이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목하 체험하지 않았던가. 순하고 착한 민초들이 있어 들판 같은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세속을 떠난 선비의 초연한 모습, 입석대

온갖 상념에 잠겨 오르다 보니 어느새 장불재에 다다랐다. 919m 높이의 장불재는 무등산 9부 능선의 넓은 개활지다. 화순 동복·이서면 사람들이 광주를 오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이다. 길은 길에 연하여 있다고 했다. 무등산의 웬만한 산길들은 모두 장불재로 이어져 있다. 입석대와 서석대 천왕봉·지왕봉·인왕봉으로 오르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아! 참 좋다.  좀 더 멀리 봐주십시오. 역사란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2007년 5월 19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 장불재에서 했던 산상 연설문의 일부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지 말고 멀리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을 가지라는 그가 그립다. 최근 개봉된 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관람객 120만을 넘기며 흥행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신의 돌기둥 입석대, 누가 갈고 누가 잘라 냈는가
 신의 돌기둥 입석대, 누가 갈고 누가 잘라 냈는가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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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불재에서 입석대까지는 약 0.5km, 서석대까지는 1km 남짓이다. 장불재에서 바라보는 입석대와 서석대는 짙푸른 녹음에 가려 완만하게 대강의 윤곽만 보인다.

입석대 가는 길은 잘 정리되어 있다. 깔끔한 데크 계단이 놓여 있고 그위에 옐로 카펫이 연상되는 멍석이 깔려있다. 고운길을 걷다 보니 단숨에 입석대에 도착했다.

1574년 초여름에 제봉 고경명 선생은 광주 목사 임훈 일행과 함께 무등산에 오른다. 그는 무등산 기행문, '유서석록'에 입석대의 풍광을 이렇게 실감 나게 풀어놓고 있다.

"멀리서 보면 벼슬 높은 분이 관을 쓰고 공손히 읍하는 모습과 같다. 가까이서 보면 철옹성과도 같은 튼튼한 요새다. 투구 철갑으로 무장한 듯한 그 가운데 특히 하나가 아무런 의지 없이 홀로 솟아 있으니, 이것은 마치 세속을 떠난 선비의 초연한 모습 같기도 하다···"

440여 년 전의 입석대의 풍경과 오늘의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을 수 있을까. '산천은 의구하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누워있는 주상절리대, 승천암
 누워있는 주상절리대, 승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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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올라온 해금강, 서석대

입석대를 지나 조금 오르면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듯한 흔적이 남아 있는 바위가 길게 누워있다. 승천암이다. 옛날 이부근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는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승천하지 못했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없이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무기는 스님을 풀어주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승천암은 주상절리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달리 하게 한다. 대개의 주상절리대는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 솟아 있지만, 승천암은 수평으로 누워있는 절리대다. 승천암을 지나고 너덜 돌계단을 올라 서석대에 도착했다.

서석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수정 병풍
 서석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수정 병풍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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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이 무엇인고. 한눈에 담기지 않는다. 육중한 돌기둥 끝에 하늘이 매달려 있다. 이 거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육당 최남선'의 말을 빌릴 수밖에 없다. "마치 해금강의 한 쪽을 산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라고 육당은 찬탄했다. 약 200여 개의 돌기둥이 수정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서석대는 가히 무등산 최고의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기암괴석들 사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선홍색 철쭉은 오히려 떡갈나무와 산딸나무의 초록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조연이다. 꽃보다 초록이다.

서석대, 뒤로는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 초록에 묻혀있다
 서석대, 뒤로는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 초록에 묻혀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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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무등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석대 상부에 올라섰다. 무등산 모든 봉우리, 능선들이 올망졸망 서석대를 향하고 있다. 왜 '무등(無等)'인지를 웅변 해주고 있다. 빛고을 광주 시가지의 모습과 담양, 화순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어느 한 곳도 쉽게 눈을 뗄 수 없다. 물결은 강에만 있는 게 아닌듯 하다.

청량한 초록의 물결이다. 죽어도 좋겠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저 광활한 초록 위를 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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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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