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기아차 광주공장 뇌출혈 사고, 2014년 1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 자살, 2016년 구의역 하청업체 사망사고, 이 죽음의 공통점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거나, 현장실습생 출신이란 점이다. 그리고 올해 초 LG유플러스 콜센터로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반복된 죽음은 막지 못할 죽음이었을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나누기 위해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며 민주노총전북본부 교선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문식님을 5월 29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만났다.
강문식님은 본인이 경험했던 학교가 억압적이고 질서복종만을 훈육했다고 했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구조에 노동문제까지 결합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특성화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특성화고 취업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헛다리만 집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북지역 특성화고 학생들이 어디로 현장실습을 나가 무슨 일을 할까가 궁금해졌죠. 작년 3월 네트워크에서 전라북도교육청에 특성화고 현장실습 현황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요청하신 자료는 단위학교 관리 자료이기 때문에 도교육청에서 보관하지 있지 않다고' 답변이 왔어요. 정말 깜짝 놀랬죠."다른 시·도교육청도 비슷했다. 2016년 직업계고 전체 학생 수는 졸업생 기준 11만 4225명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으로 나감에도 시도교육청에서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결국 교육청과 학교 당국에 의해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청소년 노동인권에 관심이 있는 개인과 단체들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교류하며,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인권교육만으로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근본적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작 학교에 나가 깨달았다고 했다.
"작년 모 지역 공고에 교육을 갔는데, '우리는 ○○ 공고예요. 우리는 이런 거 필요없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거 들어봐야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특성화고 안에서도 서열화가 돼있어요. 그 서열구조에서 아래쪽에 있는 이런 학생들은 권리의식이 아예 없는 거죠. 십몇 년을 선생님, 가족, 사회에서 그런 대접받으며 살아왔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친구들에게는 학교를 졸업해서 안정적 직장에 취업한다는 고민 자체가 거리가 먼 거죠. 아르바이트 전전하는 거고요. 큰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청년 일자리 문제와도 맞물려 있는 건데. 10대, 20대 전반적 정서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강문식님은 노동인권교육을 한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 교육 상황이 너무 밑바닥이란 걸 증명하는 것 아니겠냐고 씁쓸히 말을 이어갔다.
"현장 실습 문제가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 수준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청소년이란 신분과 함께 학생, 청소년에게 사회가 부과하는 역할과 규범들로 인해서 발생하는 차별이 있고, 이 사회에 기본적으로 노동에 대한 불공정한 인식이 있는데 서로 맞물려서 더 그렇죠." 이전에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사망사건이 자주 발생했는데, 이번 콜센터 사건의 경우 특히 주목을 많이 받았다. 이 현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동안 해마다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곳은 한 집 건너 내 주변 사람 누구나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인 휴대폰 업체의 콜센터라는 거죠. 감정노동도 문제고요. 그리고 피해자가 청소년, 여성이라는 점. 이들은 보호해야 하는 존재인데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들, 어쩌면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가 공유하는 부채의식 같기도 해요. 청소년과 여성을 약자로, 보호받아야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작용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드는 부분이에요."서울뿐 아니라 전주에서도 해결 촉구를 위해 격주 금요일 추모문화제, 회사 앞 출근 선전전, 지역 토론회, 회사 앞 추모 부스를 놓고 시민들이 추모 엽서를 쓸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문식님은 지역 추모활동을 하면서 시민들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내 문제라고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 바로 LG유플러스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이었던 것이다.
"주말이었는데 한 어르신이 오셔서 자기도 써도 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놈의 실적, 딱 다섯 글자를 쓰시더라고요. 자기도 삼성에서 일하다 얼마 전 퇴직했는데 실적 가지고 사람을 줄 세우고, 쪼고, 인격적 모멸을 주고 하는 것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대기업일수록 더 심하다고, 꼭 없애야 한다고 하셨어요. 거기서 한참 서있다 가셨어요."문제는 교섭에 나오지 않는 LG유플러스였다. 모든 권한과 책임은 원청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식으로 교섭에 불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현장에선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끝내 원청인 LG유플러스는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다. 업체와 교섭을 하는 동안 모든 권한과 책임은 원청에게 있음이 확인되었다.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안 투쟁이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현장에선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내부 재직자들을 만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교섭을 진행하면서 현장 개선사항을 알려달라고 하니 '지금처럼만 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사건 이후 저녁 6시 반이면 아예 사무실 불 끄고 퇴근 시키고, 회사에서 일부 부서는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업무를 분리시켰다고 해요. 당장 바꿀 수 있는 문제였다는 거에 슬프기도 하고. 사람이 죽어야만 바뀌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마 원청에서 바꾸라고 해서 조치가 취해진 걸 거예요. 전주고객센터뿐만 아니라 다른 자회사 콜센터도 노동환경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결국 원청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교섭에 원청은 안 들어오고 회피하고 있고, 괘씸하죠."강문식님이 만났던 재직자들은 공통적으로 일반상담업무(인바운드)와 상품 판매 영업(아웃바운드)을 분리해야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원하지 않아도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조건 해야 하는 상품 판매 영업이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진행한 '서비스 산업의 감정노동 연구'에 따르면 콜센터 노동자의 경우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동시에 하는 노동자가 사회심리 스트레스, 우울증의 위험 정도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아웃바운드, 인바운드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고인이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한 것처럼 기업으로 나가 실습을 하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올해 당장 중단이 안 돼도 업체 파악, 직무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전라북도교육청은 파견 시기를 2학기 중간고사 이후로 미룬다고 매뉴얼 지침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면접을 이미 보러 다니거든요. 면접을 보러 갔는데 똑같은 조건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9월부터 바로 일을 할 수 있는데, 여기는 10월이나 11월부터 되는 거죠. 면접 보러 갔다가 그냥 되돌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나 봐요. 이렇게 되면 당장 반발이 생기죠. 학생들에게서 나오는 이런 반발을 접하면서 아직 우리가 공감대 형성을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국적으로 같이 대응해서 늦추더라도 같이 늦추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현장실습생 역시 민주노총과 함께 해야 할 주체로서, 노동조합 활동가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노동 조합 전체 사업장의 공통된 고민이에요. 조합원 평균 연령이 높아요. 신규 조합원 특히 젊은 조합원 조직이 필요하죠. 단순히 젊은 사람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문제예요. 솔직히 나이에 따른 위계, 직군에 따른 위계가 노동조합에도 있어요. 이런 현상을 바꾸기 위해 서로 존중하는 노력도 필요하죠. 그런 걸 통틀어서 현장의 미조직 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살피는 것부터 착목하면 좋겠어요."강문식 님은 그동안 전북에서 있었던 문제와 해결방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토론을 해보고 싶은 지점이기도 한데,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문제 해결 방식에 고민이 있어요. 2015년에 김승환 교육감이 반도체 기업에 현장실습 보내지 말라고 했죠. 삼성전자반도체 직업병 사례를 봤을 때 환영할 일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삼성 공장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반도체 공장에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업체 한두 군데 차단한다고 학생들, 미래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전북교육청의 조치가 사회적으로 논란을 던지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실제 노동환경의 변화로 이어지는 고리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문제가 있으니 일단 차단하자 하는 건 너무 편의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처방입니다. 우선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알 권리에 대한 교육, 취업 전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고요. 더 나가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바꿔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당장 전북지역 특성화고에서 2015년 현장실습을 나간 기업체 중 1급 발암물질 배출사업장이 11곳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로 취업한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 교육청의 취업제한 조치만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취업한 업체에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물질이 쓰이는지 사전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고객센터 사건이 발생하기 전,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전북교육청에 화학물질 정보제공 등 문제를 제기했었고 교육청에서도 추진해가겠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강문식님은 취업제한보다 권리 강화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강문식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물었다.
"현장 실습 문제는 특성화고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틀에서 우리 사회의 노동의 인식도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는 노동인권교육이 법에 치중되어 있는데, 노동과 사회의 관계 문제를 담은 교과서 개발과 교육과정이 시급하다고 봐요. 지금의 교육은 특성화고뿐만 아니라 전체 교육에서 교육의 목표가 실종됐습니다. 고민할수록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 시작인 것 같고 더 길게 보고 가는 게 필요하겠죠."인터뷰 이후 지난 6월 7일 공대위와 서울 대책회의는 회사와 교섭을 통해 ▲LB휴넷 대표이사 명의의 공개사과 및 유가족 대면 사과 ▲유가족 보장 ▲감정노동자 보호대책 마련 ▲시간 외 근무 중단 ▲전주시 감정노동 실태조사 적극 협조 ▲일반 상담업무와 영업 상담업무 분리 등 작업환경개선 대책에 합의했다.
그리고 6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실에서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경과·교섭결과 보고회' 자리가 마련되었고, LG유플러스 유필계 부사장이 참석하여 사과의 말을 전했다. 전라북도 교육감은 6월 14일 유가족을 만나 사과하고 대안적인 직업교육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사과를 받기까지 약 5개월이 걸렸다.
공대위는 6월 7일 교섭 결과 보고대회를 마지막으로 공식 해산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후에도 다방면의 활동을 모색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나래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한 잡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