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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방 청년 이야기'는 수도권 지역 이외에 살고 있는 '지방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여러분의 생생한 '사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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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여성들의 두려움과 불평등에 관하여 폭발적으로 논의가 확장되었다.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논의되고 있는 문제를 요약하기란 어렵다.

가장 큰 충돌의 지점은 '특권'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남성은 자신이 특권을 쥐고 있다는 이야기를 동의하기 어려워한다. 2년여를 바쳐 군역을 이행하고, 더 많은 경제적 의무를 부여받고도 왜 남성이 특권을 쥐고 있다고 비판받아야 하느냐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임금의 격차, 조롱과 멸시를 동반하는 대상화로부터의 자유 등 남성이 가진 특권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비단, 이러한 '자연스러운 특권'의 논의는 성 담론에만 국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나고 자란 이유로 수많은 특권이 쥐어진다. 불문헌법에 의한 수도라는 초헌법적인 권위를 취득한 서울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공간적 경계가 된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이름의 경쟁은 시작부터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촌놈의 자격지심의 발로라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 논의와 같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특권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촌'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면적 88%의 별칭이자, 5000만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더 나아가, 청년세대에게 있어 치열한 입시경쟁의 패배자들이 잔존하는 구역의 이름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격차는 능력주의의 환상 아래에서 철저하게 정당화된다. 입시경쟁에서 '인서울'은 예선통과를 의미했다. 지역에 남아 있으며, 패배자 딱지를 면하기 위해서는 의대나 교대와 같은 직업적 안정성이 보장되는 길을 획득해야 한다.

서울은 이기고, 지방은 진다

서울 만리동과 퇴계로를 잇는 ’서울로 7017’이 개방된 지난 20일 오후 국내 첫 고가 보행길에 화려한 조명이 점등되고 있다.
▲ '서울로 7017' 밝힌 화려한 조명 서울 만리동과 퇴계로를 잇는 ’서울로 7017’이 개방된 지난 20일 오후 국내 첫 고가 보행길에 화려한 조명이 점등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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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강 이남 최고의 대학'이었던 과거의 자부심을 학내구성원들이 간직하고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신입생들의 일부는 결과에 만족하고 과거의 영광에 기댄 자부심으로 생활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입시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으로 대학을 시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내가 능력이 못나 여전히 '촌'에 있다는 의식은 지역을 탈출한 이들에게도, 남아있는 이들에게도 남아있는 적용되는 기준이 돼버린다.

이 패배자의 낙인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지역에 태어난 아이들은 대입을 통해 지역을 벗어나기를 바라고, 지역에서 대학을 나온 청년들은 수도권에서 취직하기를 바란다.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있으니 생존을 위해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대입에서도 취업에서도 서울행은 예선통과를 의미하게 된다. 대입 때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으로 임용된다면, 패배자 딱지를 면하게 되기는 한다.

결국,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능력주의로 정당화된다지만, 그 능력의 척도는 서울에 존재하느냐 아니냐로 귀결된다. 서울에 산다는 것이 실력이고, 능력의 증명은 곧 서울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다. 서울은 이기고, 지방은 진다.

그럼에도 반문할지 모른다. 청년세대에 주어진 환경이 수도권 중심이었기에, 지역 격차가 거시적 문제일 수는 있으나, 개인의 역량을 판별할 수 있는 척도인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고. 더 거칠게 이야기하면 '네가 지역에 남아 있는 건 어찌됐든 네 능력이 모자라서 아니냐. 너도 서울로 오고 싶은 것 아니냐'라고 되물을지 모른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은 낙원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아남는 것'이라는 성공의 지표는 모두에게 같은 가격으로 부과되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입성하기 위한 비용은 차별적으로 지불한다. 지역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주거비용을 감당한 채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며, 그마저도 어느 정도 가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로 국한된다. 가난이 삶에 더 비싼 비용을 요구하듯이, 지역 출신이라는 것은 더 큰 비용을 감내해야하는 낙인이 된다.

서울에 산다는 것, 그 '자연스러운 특권'

서울의 풍경
 서울의 풍경
ⓒ 서울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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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울의 문화적, 사회적 인프라의 크기와 규모는 그것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정말로 간절한 것들이다. 취업시장을 중심으로 대학생 청년의 사교육은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중이지만, 비수도권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흔한 스터디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인터넷에 취업 관련 정보는 넘쳐흐르지만, 중요한 정보들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제한적으로 공유되고, 폐쇄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인턴 기회는 상경을 전제로 해야 한다. 대외활동의 기회 또한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으며, 면접의 기회조차 수반되는 비용은 비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차이가 발생한다. 그 외에도 문화생활의 기회격차와 집적 효과의 열거할 수 없는 이득은 수도권에 태어날 때부터 쥐어진다.

그 비용을 짊어지지 못하기에 지역 청년들은 패배자로 불려야 하는 것인가. 꿈이 있으나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외침이 패배자의 볼멘소리로 들리는가. 내 꿈을 찾고 적성을 찾아 진로를 개척하겠다고 대학생활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공무원뿐이라며 휴학하는 아이들은 정말로 정말 열정이 부족해 안주하는 이들인가.

그리고 그 공무원 시험을 위해서도 서울로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은 웃음마저 난다. 우리가 공정하다고 믿는 그 시험들 이전에 과연 우리는 동등했는가. 기회도, 결과도, 불평등하고 기계적인 평가 이전에도 우리는 불평등했다. 이는 비수도권 지역의 활력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반복되고 심화될 이야기이다.

비단, 지역인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끊임없는 서울제일주의는 사람을 서울로 끌어당기고 이제 지역은 청년들을 줄줄이 빼앗기고 자생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가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의 청년들은 작년에만 1만 여명이 자신들이 자라온 고향을 떠났다. 그 과중된 부담은 서울이 지게 되었다. 지역균형 선발을 '지균충'이라 낮잡아 부르거나, 지역인재 균형선발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행위 등은 수도권의 경쟁 과열 상태의 방증이다.

그리고 이 경쟁이 가속화되고 서울의 부담이 늘어날수록, 지방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지방은 피폐해지고 사람은 더 많이 지역을 떠나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 서울이 가져가 버린 기회를 찾아 중심으로 향해야했던 이들에게 사람들은 기회를 빼앗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시점이 오면, 모두가 지방에서 '기어 올라온' 사람들을 욕할지 모르겠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특권은 언제나처럼 잊어버린 채로. 그 기어가야 할 절벽이 얼마나 높은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태그:#지방, #수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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