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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MB 블랙리스트 문건이 실체를 드러냈다. 블랙리스트와 함께 정반대로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화이트리스트도 있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정권이 눈엣가시 같은 문화계 인사들을 통제하는 이러한 행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헌법 유린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논란에 대해 어떤 이는 그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사들이 화이트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며 어떤 정권이든 그런 목록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문화가 융성해 왔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시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는 정조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가 좋은 선례다.

<단원의 그림책> 최석조 지음, 아트북스
▲ 책 표지 <단원의 그림책> 최석조 지음, 아트북스
ⓒ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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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을 소개하는 <단원의 그림책>은 '오늘의 눈으로 읽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교과서에서 봐 와서 익숙한 <씨름>, <무동>, <서당> 등 25점의 작품을 해석한 저자 최석조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저자는 단문 위주의 구어체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옛 작품들을 우리 앞에 풀어놓고 있다. 그 가운데 저자는 김홍도와 정조의 관계를 권력과 예술의 밀착이었다고 짚고 넘어간다. 그래서 김홍도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정조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둘은 비록 군신 관계이지만, 계급장을 떼고 보면 서로의 도움이 절실한 동지이기도 했다. 각자의 전공인 '정치'와 '예술'의 완벽한 성취를 위한 공생관계다." -93쪽

왕조 시대에 임금은 어버이요, 은덕을 베푸는 자요, 뒷배를 봐 줄 수 있는 절대 권력이다. 그런데 저자는 임금과 한낱 도화서 화원인 중인을 어찌 동지요, 공생관계라고 했을까? 설령 김홍도에 대한 정조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그림에 관한 모든 일을 주관케 하였다고 하나, 그게 정당한 평가일까?

저자 최석조는 "정조에게는 그의 정치를 홍보할 수 있는 '홍보처'가 필요했고, 김홍도 역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주거니 받거니' 한 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최석조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오늘날 김홍도 하면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라는 별칭이 떠오른다. 단원은 익살스럽고 생동감 넘치며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당대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렸을까 하는 데는 의문이 있다. 개혁 군주를 표방한 정조는 체제를 선전할 도구로 그림을 택했기 때문이다.

정조의 화성 원행을 기록한 <시흥환어행렬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의궤도>를 보자. 저자는 이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콱 막힐 지경이라며, 수천 명의 인파와 화려하고 장엄한 연출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자 이데올로기 영화라고 평한다. 현실보다 더 장엄하게 그려서 누구라도 왕실 위용에 눌려 기죽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고단수 통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빛나는 왕실의 권위. 그야말로 '대한늬우스'와 똑같지 않은가." -291쪽

그뿐만이 아니다. 김홍도가 그린 <그림책>을 아무리 들춰봐도 꾀죄죄한 프롤레타리아를 찾을 수 없다. 그림 속 평민들은 다 행복한 표정이다. 풍류가 김홍도에게 애당초 사회비판은 거리가 멀었고, 투쟁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중인 신분 화원으로 현감, 고을 수령인 사또까지 했으니 김홍도는 왕이 원하는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꿰차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임금님 덕택에 백성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하려면 그림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기와이기>, <주막>, <무동>, <씨름>, <쟁기질>, <새참>, <고누놀이>, <타작>, <활쏘기>, <시주> 등 김홍도의 <그림책>에 실린 25점은 모든 작품에서 숭늉처럼 구수한 여유가 끓는다.

"여유는 물론, 삶에 대한 달관까지 더 보탰으니까. 아무도 덤비지 않는다. 조금도 급할 것 없다. 잔챙이를 기다리는 갈매기도 그렇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고, 음식을 기다리는 떠꺼머리가 그렇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이 역시 몇 백년간 곰삭은, 조선의 마음 아닌가." -135쪽

'당대 백성들이 그런 여유를 갖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통치자가 원하는 그림은 정해졌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야박한가? 저자는 김홍도가 드러내는 여유를 이렇게 말한다.

"약속이나 한 듯하다. 힘과 부드러움, 긴박함과 여유가 어김없이 함께 들어 있다. 일부러 뿌린 향수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밴 냄새다. 작가의 역량이라기보다는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봐야겠다." -319쪽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김홍도의 태도는 '어용'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 그런데 조선이 '군사부일체'요, 지엄한 임금님 뜻을 헤아리는 것을 최고 미덕으로 알던 성리학 사회였던 것을 헤아리지 않고 어용이라고 매도해도 될까? 옛 그림을 감상하면서 오늘날 관점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온당할까?

저자는 '옛사람의 마음으로 옛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마음으로 옛 그림을 보려고' 했다고 밝힌다. 어떤 작품을 해석할 때 역사 문화적 배경을 알고 작가 의도를 살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해석은 개연성과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풍성해질 수 있다는 면에서 저자 최석조와 같은 시도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해석이 절대 옳다 할 수 없다.

저자가 김홍도 그림책을 해설하는 것을 읽다 보면 옛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 마치 오늘날 이야기 같다. 그러나 옛 작품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당연시할 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식이면 '김홍도도 선택과 집중에 의해 조선 최고 풍속화가가 되었다'고 억지를 부릴 테니 말이다.

오히려 블랙리스트니 화이트리스트니 하는 말을 들으며 '왕이 쓰시겠다' 하면 꾸뻑 죽는 어용 예술가들이 판치는 것을 용납할 시민이 있겠는지 따져봐야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이 왕조시대가 아님을 안다면 당연 그렇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인들이 그런 목록을 만들거나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고 감시해야 한다.

더불어 정조와의 동지적 관계를 인정한다 해도 단원을 어용화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그 관계가 수상했었다 해도 말이다. 단원에게 오늘날 잣대를 들이댄다면 한바탕 웃는 여유는 어디에서 찾겠는가.

체제를 선전했지만, 볼 때마다 즐거운 장면, 볼 때마다 힘이 나는 장면으로 백성을 즐겁게 해 주었다고 하면 어용이라고 함부로 욕하지 못할 것이다.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위해 헌신했으니 말이다.

"속칭 '이발소 그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지 않았을까. 잠시나마 괴로운 현실을 잊을 수 있으니까. <그림책>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김홍도는 신나게 그렸다." -245쪽


단원의 그림책 - 오늘의 눈으로 읽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최석조 지음, 아트북스(2008)


태그:#김홍도, #어용,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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