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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정문 입구에 3년이 넘도록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이 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정문 입구에 3년이 넘도록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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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게 방사능이 나오는 곳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굉장히 가슴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에요. 내가 4년 전 갑상선 수술을 했는데 가족력도 없는데 왜 암이냐고 물으면 방사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원자력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신고리 5·6호기의 공사재개에 대해서도 원자력공론화위원회가 판단하도록 했다. 사실상 원전 제로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일부 국민들의 우려도 있지만 원전의 폐해를 우려하는 시민들로부터는 환영받고 있다.

하지만 원전 주변에 살면서 환영받지 못하는 주민들이 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 입구에서 이주를 요구하며 3년하고도 1개월이 넘도록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고리원전이 주목받는 대신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월성원전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다. 매주 목요일에는 경주시내로 나와 거리행진을 하며 이주대책을 세워줄 것과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입구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황분희씨.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입구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황분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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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찾은 농성장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주민들이 3년 넘게 농성을 이어온 이곳에는 '천막농성 3년, 나아리 방문의 날'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고 9월 25일의 날짜와 '집회일수 1125일'이 적혀 있었다.

이곳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황분희씨는 "우리 주민들은 이미 피폭이 되어 있다"면서 "어른들도 그렇지만 엄마 배속에서 이미 오염이 돼 태어나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우리 손자도 2년 전 4살 때 검사를 했는데 어른보다 방사능이 더 많이 나왔다. 교수들이 애들은 성장하면서 더 많이 방사능에 오염된다고 한다"며 "공기나 물, 먹거리 모두 오염돼 있다. 애들을 키울 수 없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최민희 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월성 삼중수소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분석한 결과 월성원전 주변 주민들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삼중수소는 수소보다 3배 무거운 수소로 주로 중수로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의 일종으로 피부나 호흡기, 수분섭취 등으로 체내에 흡수되어 염색체 이상을 일으키고 암을 발생시키는 방사선물질로 알려져 있다. 월성원전은 중수로 4기 등 모두 6기가 가동되고 있다.

월성원전 입구에 세워져있는 제한구역 알림판. 주민들은 이곳에서 살기 두렵다며 이주를 요구하는 농성을 3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다.
 월성원전 입구에 세워져있는 제한구역 알림판. 주민들은 이곳에서 살기 두렵다며 이주를 요구하는 농성을 3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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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지난해 9월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을 떠올렸다. 그는 "여기는 외길이다. 울산으로 가는 길도 외길이고 경주로 나가는 길도 외길"이라며 "만일 터널이 잘못되면 갈 곳이 없다. 남들은 지진이 나서 놀랐다고 하지만 우리는 원전 사고가 나지 않아 안도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지진이 발생한 후 주민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면서 "만일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해 원전에 사고가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나? 지진보다 원전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갑자기 지진이 났을 때 누구 하나 어떻게 피신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원전이 사고 났을 때 피신하는 훈련을 한 번 해본 적도 없다"면서 "재난방송에서는 큰 건물을 벗어나 피신해야 한다고 하는데 원전 사고가 나면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경주지진이 발생한 후 초등학교 5학년인 황분희씨의 손자가 싸놓은 생존배낭.
 지난해 경주지진이 발생한 후 초등학교 5학년인 황분희씨의 손자가 싸놓은 생존배낭.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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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지진이 났을 때 생존배낭을 쌌다. 이걸 보고 정말 참담하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났다"며 "애들이라도 내보내고 싶지만 모든 걸 이곳에 바쳤는데 집을 팔고 나가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수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라지만 자기들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전소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는데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이 미비하면 노력해야 하고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미달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도 호소했다. 황씨는 "다른 지역에 가서 우리 이야기를 하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듣는다"면서 "한수원이 워낙 홍보를 많이 하니까 핵발전소가 좋은 줄만 안다. 발전소 옆에 살면서 혜택을 많이 보지 않았느냐고 말할 때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황씨는 주민들이 3년이 넘도록 농성을 벌이면서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외부에서는 지역이기주의로 볼 수도 있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황씨는 "월성원전에는 고준위폐기물이 임시로 저장돼 있다"며 "2019년까지 가지고 나가기로 했지만 나갈 수가 없다.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월성원전이 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마을에는 빈 상가가 즐비하다.
 월성원전이 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마을에는 빈 상가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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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핵폐기물을 2053년까지 여기 임시보관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죽은 뒤에 가져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말 가져갈 수 없다면 지역민들을 이주시키고 핵폐기물 저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주민들을 방치하고 여기 임시저장 하겠다고 하니까 우리가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씨는 "지금 천막농성에 나오는 분들은 30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곳 주민들 대부분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이주를 요구하는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서명을 받았는데 80% 넘는 주민들이 서명했다"고 말했다.

황분희씨는 기침을 자주 했다. 4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나서부터 좀 무리한다 싶으면 기침이 나오고 목이 아프다고 한다. 그는 암이 발생한 가족이 아무도 없었는데 갑상선암에 걸린 것은 방사능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가족들이 고통스러워 할까봐 힘들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부에 나가서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말을 하지만 함께 먹고 사는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황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었고 우리의 안타까운 일들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며 "조금 느리지만 대통령이 다녀가면서 안타까워하시던 마음 잊지 말고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대통령도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으셨을 것"이라면서 "여기 오셨을 때 진지하게 듣고 가셨기 때문에 무관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 추석에 좋은 선물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마지막으로 "우리 마을을 한 번 돌아보세요. 빈 상가와 빈집이 너무 많아요. 누구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고 내 집을 팔고 싶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이곳이 바로 지옥이지 어디가 지옥이겠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의 한 분식점. 이곳도 굳게 문이 닫혀 있다.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의 한 분식점. 이곳도 굳게 문이 닫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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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의 빈 식당 건물 안에 먼지만이 가득하다.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의 빈 식당 건물 안에 먼지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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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와 헤어져 나아리를 돌아보니 많은 상가가 비어 있었다. 굳게 잠긴 상가의 출입문 입구에는 '임대' 현수막이 늘어져 있었다. 또 다른 빈 상가의 유리문 뒤로는 텅 빈 공간에 먼지만이 가득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한 식당에 들어가자 주인은 "예전에는 외부에서 손님도 많이 오고 장사도 잘 됐는데 요즘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면서 "그동안 전기 만드는 친환경적인 발전소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무서운 발전소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태그:#월성원전, #이주대책, #방사능,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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