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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수마을과 강원 홍천 서석마을 등 도시와 농촌이 함께하는 한가위 잔치가 열렸다.
▲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 서울 인수마을과 강원 홍천 서석마을 등 도시와 농촌이 함께하는 한가위 잔치가 열렸다.
ⓒ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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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놀이이고, 일상은 수련이고, 살림은 예술이 된다.' 우리 마을에서 열린 한가위 잔치가 남겨준 느낌입니다. 모처럼 길게 찾아온 한가위 연휴를 맞아 여기저기로 떠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만큼 팍팍한 삶을 벗어나고픈 이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피로사회'를 살다보니 쉼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딜 가나 놀이와 쉼마저도 돈 내고 얻는 상품이 되고, 나는 내 쉼의 주인이 아니라 소비자가 될 뿐입니다. 가족과 친지들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기다움을 느낄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마을은 그런 곳입니다. 돈 많이 버는 사람, 적게 버는 사람, 만날 가족이 많은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모두 즐거움과 쉼을 골고루 나눌 수 있는 관계망입니다. 생명과 생명이 저마다 자연스러움으로 충만하고 평화로이 어우러지는 곳. 그런 마을을 일구는 이들이 한 데 어우러지면 흥겨움 넘치는 마을 잔치가 됩니다. 지난 4일 맑고 깊은 가을 저녁 도시와 농촌마을이 함께하는 한가위 잔치가 열렸습니다.

강원 홍천 아미산자락에 있는 서석마을. 태어난 지 70일 된 어린 아가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350여 명이 모였습니다. 서석에 사는 사람들만 모인 게 아닙니다. 서울 인수동과 군포 대야미, 홍천 서석 등지에서 저마다 마을 이루어 밥상에서 함께 밥 먹고, 아이들 함께 기르고, 함께 일하며, 서로 살리는 삶 배워가는 이들입니다.

주말이면 홍천 검산리마을로 와서 땅을 살리는 농사(하늘땅살이), 몸을 살리는 집짓기(생태건축)를 하며, 평소 안 쓰던 근육 움직여 구슬땀 흘리기도 하고, 성인과 청소년이 함께 공부하는 삼일학림 학생으로 공부도 하지요.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이들의 한가위 잔치였습니다.

길놀이 하는 인수마을 풍물패
▲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 길놀이 하는 인수마을 풍물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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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다니는 틈틈이 한 마을 친구와 함께 준비한 공연
▲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 직장 다니는 틈틈이 한 마을 친구와 함께 준비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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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아이 낳고 기르면서 틈틈이 민요와 판소리를 갈고닦아, 마을 어린이와 성인들에게 가르쳐온 이가, 판소리 한 자락 들려주고 있다.
▲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 마을에서 아이 낳고 기르면서 틈틈이 민요와 판소리를 갈고닦아, 마을 어린이와 성인들에게 가르쳐온 이가, 판소리 한 자락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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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마을과 서석마을 사람들이 서울과 홍천을 오가며 틈틈이 연습한 창작곡을 들려주고 있다
▲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 인수마을과 서석마을 사람들이 서울과 홍천을 오가며 틈틈이 연습한 창작곡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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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잔치에 어린이들도 빠질 수 없다. 홍천 청량리 마을배움터 어린이들이 평소 즐기던 노래와 몸짓을 선보였다.
▲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 마을잔치에 어린이들도 빠질 수 없다. 홍천 청량리 마을배움터 어린이들이 평소 즐기던 노래와 몸짓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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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루어 모여 살다보니, 이 사람이 잘 하는 이것, 저 사람이 잘 하는 저것, 저마다 지닌 재주들이 맛깔나게 버무려졌습니다. 먼저 인수마을 주민들로 꾸려진 풍물패가 신명나는 길놀이로 흥 돋우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다음은 인수동 마을초등학교 학생들이 곱게 한복 차려입고 입 모아, 학교 수업 때 배우고 흥얼거리던 민요 몇 가락을 맑은 소리로 불러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른 아침마다 지하철 타고 도심으로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마을밥상으로 달려오는 직장인 둘이 밤마다 마을창작실에서 만나서 짓고 연습해온 노래와 연주도 선보였습니다. 졸업한 뒤 연주할 기회가 거의 없던 두 아이 엄마는 모처럼 현란한 손놀림으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곡을 들려주었습니다. 꾸준히 연습해온 클래식기타 실력을 뽐낸 40대도 있었습니다. 서로의 삶을 다 알고 응원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떨림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어떤 유명한 곡도 한 마을 벗이 하면 어떤 예능인보다도 더욱 울림이 있습니다. 아이 낳고 기르는 동안 우리 소리에 푹 빠져 민요와 판소리를 갈고닦으며 마을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도 가르쳐온 이가 춘향가 한 대목을 뽑아냈습니다. 듣는 이가 다 속이 후련해지는 우렁찬 목소리에 추임새가 절로 나왔지요.

홍천 서석 청량분교에서 함께 배우고 자라가는 어린이들은 주말마다 신나게 보내던 노래와 몸짓 시간을 그대로 무대로 옮겨와, 특별한 공연 아니어도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홍천 밝은누리움터 삼일학림에서 노래 만들고 부르는 동아리 '우아해(우리는아침에뜨는해다)'는 삶을 담아 지은 창작곡들을 불렀습니다. 서석마을에서는 이미 여러 창작곡들이 알려져 있어 객석에서도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요.

이번 무대에 서고자 몇 주 전에 꾸려진 아카펠라모둠도 있었습니다. 인수마을 젊은이들과 서석마을 젊은이들이 홍천과 서울을 오가며 틈틈이 만나서 연습한 것이지요. 저마다 다른 지역에 터해 살고 있어도 마음 모아 언제든 함께 일 꾸밀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은 밝은누리움터 풍물패의 웃다리 사물놀이였습니다. 밝은누리움터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배우고 가르치며 더불어 사는 배움의 숲입니다.

한가위를 맞아 농촌과 도시에서 함께하는 마을잔치에 350여 명이 함께 밥도 나누고, 공부도 하고 어울려 놀았다.
▲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 한가위를 맞아 농촌과 도시에서 함께하는 마을잔치에 350여 명이 함께 밥도 나누고, 공부도 하고 어울려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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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를 맞아 서석에서 열린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는 이후에도 나흘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4일 '농촌과 도시가 함께하는 고운울림 문화예술잔치' 뿐 아니라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실력 발휘 운동회도 하면서 마음껏 뛰놀기도 하고, 쉼을 얻는 시간들로 꾸려졌습니다.

도시 중심의 자본주의 소비문명을 거슬러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대안적인 식·의·주·락 생활양식을 만들어가려면 삶의 밑바탕이 되는 철학을 든든히 세워가는 공부가 뒤따라야 합니다. 잔치 내내 다양한 공부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동학과 21세기'를 주제로 김용휘 님(한울연대)이, '화이트헤드와 21세기'를 주제로 김희헌 님(향린교회)이, '새 문명을 일구는 사람들 – 세계 공동체 순례'을 주제로 조현 님(한겨레), '분단된 조국과 삶을 넘어 – 탈북인이 꿈꾸는 화해와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손정열 님(성지에서온교회)이 강의하였고, 예수원, 동광원, 디아코니아자매회, 가나안농군학교에서 함께 살고 노동하며 수도적 영성을 닦아온 이들이 삶과 영성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밝은누리 대표 최철호님은 '동북아 생명평화공동체 – 역사, 생활영성, 마을, 교육'을 주제로 강의하였습니다. 최철호님은 "새로운 삶과 실천을 생명력 있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함께 깨닫고 새로운 삶을 실천하는 조직된 힘이 필요합니다. 서로 돕고 나누며, 먹고 입고 살고 즐기는 삶을 스스로 일구는 다양한 마을공동체가 세워지고, 서로 주체로서 자율로 연대하는 것이 새로운 삶이 만들어갈 관계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역사에 남은 명동마을과 명동학교, 용동마을과 오산학교, 가나안이상촌과 농군학교, 농촌계몽운동과 자주독립운동 등 일제 전후시대 마을, 교육, 생명평화운동을 살펴보고, 또한 앞으로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동북아 생명평화공동체에 대한 구상도 나누었습니다.

한가위 보름달 아래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농촌과 도시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땅 곳곳에 생명과 평화가 아름답게 피어나길 염원했습니다.


태그:#밝은누리, #마을잔치, #귀농귀촌, #농도상생, #삼일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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