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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촛불이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변화되었다고 하지만 인권의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인권단체들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인권현실을 알리고자 촛불1주년인 오는 28일 오후 4시 보신각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인권궐기대회를 준비 중이다. 그에 앞서, 우리의 삶과 일상을 나누는 연속기고를 진행한다. - 기자 말

지난 3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1차 범국민행동 '촛불은 멈추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1차 범국민행동 '촛불은 멈추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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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매주 주말이면 촛불의 군중 속에 무지개깃발이 펄럭였다. 성소수자 역시 함께 분노하고 나란히 보폭을 맞췄다. 시린 손을 비비고 피켓과 깃대를 번갈아 들며 행진했다. 성소수자들도 주말의 즐거움을 잠시 접고 저마다의 얼굴을 드러내며 적폐청산과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그렇게 촛불이 승리의 불꽃으로 변하고, 우리는 광장에서 저마다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자리에 돌아온 성소수자들이 촛불대선을 기다리며 마주한 장면은 동성애에 찬성하냐는 한 대통령 후보의 질문이었다. 동성애가 싫고, 반대한다는 다른 후보의 대답이 돌아왔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반대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녔다.

인권을 미루고 묵인하자는 합의가 국민의식이고 상식인양 환기되었다. 합의하자고 합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합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어느 쪽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합의를 미루기 위한 거짓 합의나 다름없었다. 시민들의 요구와 어떤 연관도 실체도 없는 합의를 시민들의 책임으로 돌린 셈이다.

분명한 점은 국민정서 운운하며 '인권'의 자리에 '합의'를 남겨놓은 태도가 결과적으로 촛불이 요구한 변화의 수위에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혐오와 차별을 철폐하자고 외쳤지만, 성소수자는 언제든 호불호의 판단으로 밀려날 수 있는 사람들로, 합의에 따라 시민이 되거나 되지 않을 수 있는 이들로 자리매김 됐다. 촛불을 들고 변화를 외치는 성소수자들은 말 그대로 바람 위에 촛불로 밀려나고 있다.

촛불 이후 일어난 믿기 어려운 일들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지난 4월 육군참모총장이 군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했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A대위를 구속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개헌이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일이라고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수만 명씩 군집을 이뤄 지역을 점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소수자가 체육대회를 하는 것이 풍기문란이라며 시설관리공단이 체육관 대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번 국정감사는 어떤가. 동성애가 국방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나오고, 동성애자의 위험한 성관계가 HIV/AIDS를 유발시켜 복지예산을 축내며 '에이즈 테러'를 일으킨다는 발화가 제지 없이 쏟아져 나왔다. 성소수자 인권에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동안 당사자들은 합의되지 못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차고 넘치도록 확인했다.

적폐로 불리는 이들은 자리를 지키려 총력을 쏟는다. 하지만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소수자 인권을 발목 잡아 혐오선동으로 규합을 다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발악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존재를 송두리째 흔드는 혐오의 정치세력화에 변화를 갈망해온 성소수자들이 당면한 인권의 낙차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흔히 사람들은 그 사회 인권감수성의 척도를 파악할 수 있는 논쟁적인 사안들을 '리트머스'라고 부른다. 논리대로라면 모든 변화의 기류에 '동성애 찬반'이 걸림돌처럼 놓여있는 지금만큼 성소수자 인권이 사회의 인권지수를 판가름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권을 리트머스로 보는 관점은 보편적인 인권 가치를 논쟁적인 문제로, 합의를 통해 절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사안으로 오해하기 쉽다. 누군가의 존재에 찬반을 들먹이는 것은 시민의 자격에 위계를 둠으로써 평등을 전제하고,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10월 28일 촛불 1주년이 다가온다

성소수자는 그동안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성소수자로서 삶을 사회에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었다. 매년 퀴어퍼레이드에 수만 명이 모이고, 차별금지법을 외치고 군형법상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정당과 협력하며 풀뿌리 운동을 일궜다. 국내외에 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알린 노력은 국제사회에도 가 닿았다.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 권고에 이어 지난 10월 9일 유엔 사회권위원회 역시 한국사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화한 군형법 폐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의료차별 해결 등을 권고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는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시민으로서 사회의 차별을 공감하고, 차별로부터 변화를 일구는 과정에 공동의 언어를 만들어왔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인권을 요구하는 과정은 연대와 저항의 시간이기도 했던 바, 성소수자의 인권을 요구하는 것은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보편적인 무게를 갖는다. 이러한 노력은 은둔 속에 자신의 삶을 감춰온 이들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취약한 삶의 얼굴들을 공공의 장에 드러나게 했다.

촛불을 들고 변화를 요구한 지 1년이 되었다. 촛불은 '혁명'으로 불릴 만큼 하나의 거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촛불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고, 변화의 그림자 속에 고착된 구조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공동의 과제일 것이다. 다만 평가와 자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촛불을 통한 확신이 있다면 누구라도 차별당하고 배제되는 경험을 바꾸기 위해서는 함께 분노하고 변화를 요구해야한다는 것이다.

10월 28일 촛불 1주년이 다가온다. 1년을 기념하는 즐거운 자리인 만큼, 여전히 찬반의 선택지 위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취급되는 이들이 거리에 나와 불꽃을 태울 것이다. 인권은 합의와 절충을 요하는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인권의 가치를 설득하고 누구도 배제될 수 없음을 외치는 자리에 함께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태그:#촛불1주년, #성소수자, #인권, #인간답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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