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죽음을 읽다 책표지
 죽음을 읽다 책표지
ⓒ 이상북스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결국에는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안에 간직해두려 애써왔지만,
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면서
그는, 음울하게 말합니다.

"난... 다른 공간에 있고 싶어."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 속에서 찾겠금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나쁜 기억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너무 어두워서 끝이 보이지 않고, 자기 방어도 불가능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나쁜 기억들.

41년 4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 하고 그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공간,
편히 쉴 공간을 찾아서 자유로이 가볍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 2017.7.21 MBC Radio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 멘트 중에서.
갑자기 날아든 린킨파크(Linkin Park) 보컬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의 자살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의 이십대 시절을 함께 해준 소중한 친구이자 영웅이였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던 시간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정체하지 말 것'을 일깨워주었고, 그 목소리가 내 무의식 속에서 찾게 되는 일종의 신호와 같았다. 절친이였던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의 생일날,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한 그는 계획했던 것일까? "하지만 결국에는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의 죽음을 전달하는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를 난 아직도 자주 챙겨 듣는다.

체스터 베닝턴의 죽음을 계기로 한동안 잊고 있던 '죽음'에 대한 묵상이 계속 되었다. 여러 형태의 '죽음'이 있듯이, 우리가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미나 반응들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십대 시절 나에게 갑자기 다가왔던 '죽음'은 세상을 부정하게 되는 계기였고, 그 분노가 차차 가라앉더니 슬픔이 되었고, 그 슬픔은 오롯이 혼자 남을 수 있는 깊은 밤과 맞닿게 되었다. 그 시절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음악이 가수 이소라의 7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Track 8>이다. 

이소라는 내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라는 이름에 제일 어울리는 뮤지션 중에 하나다. 무엇보다 솔직하고, 자신을 오롯이 담아서 노래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비긴 어게인>에서도 회자되었지만, 이소라는 노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생각'이라고 말했다) 2008년에 발매된 <이소라 7집>은 노래의 제목들이 모두 특정 문구들이 아닌 <Track 1>부터 번호가 달려있다. 보통 사람들이 제목을 보고 해당 음악을 기억하거나 추측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그 노래에 오롯이 집중해서 각자의 색깔로 한번 더 해석해 볼 수 있도록, 마치 뮤지컬 넘버처럼 번호를 달아놓은 이 방식도 '이소라 답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겪어야 할 일이었을까
혼자서 남겨진 방 그 마지막 끝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떠나야 할 일이었을까
먼저 사라진 그대 또 올 수가 없네

볼 수도 없어 죽음보다 네가 남긴 전부를 기억할게

- 이소라 <Track 8> 가사 중에서

올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존재'에게 우리는 그 무엇도 직접 당사자의 목소리로 들을 수가 없다. 그저 막연한 우리의 기억 속의 '그 존재'를 떠올리고,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마침표를 찍은 또 다른 세계를 존중하고 기억하는 것, 받아들이는 과정만이 최선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그것이 죽음만이 만들어내는 평온함과 울림인지도 모른다. 온전한 소멸이기에 가능할 지도 모를 그 여운 말이다.

 @jtbc <비긴 어게인> 화면 갈무리
 @jtbc <비긴 어게인> 화면 갈무리
ⓒ 비긴 어게인

관련사진보기


이상북스의 <죽음을 읽다>를 보는 순간, 이소라의 <Track 8>이 저절로 연상되었다. '홀로/천천히/투명하게'라는 부제와 아련하게 보이는 하늘과 숲이 담긴 표지가 그 음악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멀게는 이천년 전, 가깝게는 현재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글을 모아 놓았다. '죽음'을 4부에 걸쳐 [죽음을 생각하다/겪다/친해지다/넘어서다]로 구성되어 있다.

글쓴이 백형찬은 책을 여는 글에서 '죽음과 친해지기'를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지난 20세기만 해도 '죽음'을 세상과의 단절, 혹은 현 세상과의 이별로 한정지어 생각했다면 21세기에 들어서서는 해석되는 다양한 의미들이 문화예술로 표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영화 <버킷 리스트>, <100>, <원 위크>처럼 죽음을 선고받은 후 자아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처럼 말이다. 사실 '죽음'은 간단하지 않다. 이 책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종교, 철학, 시대상 등 여러 관념들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순간' 만큼은 모두는 평등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죽음'을 읽어내는 과정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밤이 깊어간다.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는 밤은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이다. 심연에 빠져들어 이 책과 함께 하다보면 매일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나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죽음'의 매력이라는 사실을 여러분께 끌어내려는 이 책의 목소리이기에.    

* 그가 연기로 그려낸 수많은 세상을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한 홍반장, 김주혁 배우님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루카
1995년 4월, 대구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 참사. 두 명의 친구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냈고 육상선수가 꿈이였던 단짝 친구는 두 다리도, 꿈도 잃었다. 그 이후 죽음, 특히 ‘사회적 타살’에 대한 관심이 많다. 2014년 4월, 단원고 희생자들을 보며 19년전 떠나간 백여명의 또래 학생들이 떠올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들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작은 행동이라도 일상 속에서 멈추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이렇게 겨울이 다가오면 마왕의 목소리가 더욱 그립다.



죽음을 읽다 - 홀로, 천천히, 투명하게

백형찬 지음, 이상북스(2017)


태그:#이소라, #죽음, #서평
댓글1

땡땡책협동조합은 책을 읽고 쓰고 만들고 전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책 읽기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이웃과 연대하며 자율과 자치를 추구하는 독서공동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