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회사에 대한 믿음

친한 후배가 하나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만나면 반가워하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툭 터놓고 할 수 있는 사이. 그와 난 대학에서 같은 학문을 공부했던 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관심사가 비슷했고, 덕분에 금세 가까워졌다. 우리의 대화는 격식격의 없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후배가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이후 우리의 대화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의 회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회사였는데, 그 회사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갈리면서 후배와 나의 대화가 어느 지점에서인가 겉돌기 시작한 것이다. 후배가 옮겨 간 회사는 바로 네이버였다.

한국인에게 너무 익숙한 화면
▲ 초록색 네이버 한국인에게 너무 익숙한 화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후배는 술자리에서 회사 이야기, 특히 검색어 조작 이야기만 나오면 펄쩍 뛰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조작을 주장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확신했다. 네이버 검색의 '알고리즘'에는 절대 외부인이 개입할 수 없으며, 모든 의심은 우연의 일치 혹은 과한 음모론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후배의 확신 앞에서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어차피 모든 의심이 물적 증거 하나 없이 심정 증거에만 기댄 것이니 그에게 더 이상의 주장은 쓸모없었다. 나의 지식은 알고리즘 운운하며 복잡한 연산 방식이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반박하기에 너무 얕았으며, 후배의 회사에 대한 믿음은 매우 확고했다.

MB정부 당시 어떻게 그렇게 반정부적인 검색어만 일찍 사라질 수 있었는지, 왜 정치적으로 구여권에게 불리한 사건만 터지면 전혀 상관없는 검색어가 수위에 오르는지 의심되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답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얼굴을 붉힐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 한들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난 그냥 알았다고 했고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다만 세상이 바뀌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네이버의 사과

그 후 정권이 바뀌었고, 이번 네이버 기사 재배열 사건이 터졌다. 네이버는 한국프로축구연맹 김아무개 팀장의 문자를 받고 기사를 재배치했으며, 한성숙 대표는 스포츠 뉴스 재배치를 사실로 인정했고 사과했다. 청탁을 받아 편집을 했던 네이버 책임자에게는 '정직 1년'이라는 중징계도 내렸다고 밝혔다.

문득 네이버를 다니는 후배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톡을 날렸다.

"그나저나 너희 회사는 안 시끄럽냐? 기사 배치 조작한 거 걸렸는데."
"그 임원은 세게 징계 먹었는데 직원들이 약하다고 반발하고 있지."

후배의 대답은 짧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것저것 변명할 만도 하건만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서늘했다. 그의 대답에는 뭔지 모를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동안 회사를 철석 같이 믿었던 만큼,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만큼 배신감도 컸을 테지. 아마도 네이버 내부에서도 꽤 많은 동요가 있으리라.

나는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것은 후배에 대한 예의였으며,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이로서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것이 네이버의 문제였다고 하지만, 어쨌든 네이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가 그만큼 만만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이 시대를 만들었던 기성세대로서 한 줌의 책임이 있지 않겠는가.

사고가 여기까지 이르자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네이버의 공정 신화가 깨진 이상, 어쨌든 포탈을 이용한 여론 호도는 힘들어지지 않았는가. 뉴스나 검색어가 민심을 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의심할 것이고, 그 의심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굳건히 만들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균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사태도 유야무야 지나가고, 네이버가 모든 것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신화가 계속 되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 큰 독이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네이버는 여론을 호도했을 것이고,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독점

그럼 네이버 사측은 과연 이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담당 임원을 중징계할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님 그저 스쳐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할까?

이와 관련하여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는 지난 국감장에 나와 네이버의 이번 뉴스 배치 조작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또 다른 논쟁거리를 남겼다. 국회의원들이 뉴스 배치 사태에 이어 네이버의 국내 독점 문제를 지적하자 다음과 같이 발언한 것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 투자책임자가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 투자책임자가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구글로부터 빼앗길 수 있는 시장을 (네이버가) 막아내고 있다"
"(구글 등을) 이기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살아남기만을 바란다."
"네이버 국내 점유율이 70~80%가 넘는다고 해서 이것을 과점으로 볼 것인지는 국내만 봐선 안 되고 전 세계적인 시장 점유율을 봐야 한다."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조국을 지켜내는 독립투사 네이버. 얼핏 들어서는 네이버가 자국의 인터넷 시장을 지키는 만큼 고마운 듯하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위험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결국 네이버의 현재 독점을 자기합리화 하는 논리로서, 이번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 그들의 근본적인 성찰이 부족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뉴스 배치나 검색어 순위에 조작의 유혹이 항상 존재하는 것은 네이버가 현재 우리 인터넷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검색어를 쳤을 때 광고가 몇 번 째로 나오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고, 네이버의 검색어 순위에 따라 그날 뉴스 내용이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네이버는 자신을 한낱 포탈이라고 정의하지만 현재 네이버는 그 어떤 광고사, 언론사보다도 영향력이 크다. 인터넷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그들은 우리 사회의 여론을 좌지우지 한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외국 자본으로부터 한국 시장을 지키고 있으니 좀 봐 달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글로벌기업이 내뱉기에는 부끄러운 발언일 뿐이다.

물론 네이버가 검색어 시장을 개척하며 한국 인터넷사를 새로 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혁신이었으며, 신화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신화의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독점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영향력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나 기업이나 모든 권력은 독점하는 만큼 더 쉽게 썩기 때문이다.

큰 힘을 가진 자는 그만큼의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네이버가 궁색한 변명을 하는 대신 사회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태그:#네이버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