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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소설은 30초짜리 광고와 닮았다. 10쪽 남짓한 그의 단편 소설들은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준다. 기이하지만 탄성을 자아내고, 엉뚱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필력은 그릇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내용이며, 내용이 그릇보다 앞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소설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 작가의 심혈이 기울어져 있으며 독자는 소설 읽기를 통해서 문장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훈이 <칼의 소설> 첫 문장을 두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할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라고 할지 오랫동안 고민을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한 편은 이미 뛰어난 문장가인 소설가가 자신의 온 필력을 발휘해서 탄생시킨 소산물이며 독자는 이를 글쓰기의 교재로 삼을 만하다고 믿었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탄성을 자아낼 때는 스토리 전개보다 남들 앞에서 암송하면 유식하다는 찬사를 들을 수 있는 글귀를 발견할 때가 아니던가? 소설은 인문서나 실용서처럼 정보 제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장르가 아니므로 작가의 필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김동식의 소설은 문장력뿐만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김동식은 등단하지도 않았고, '소설 쓰는 법'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도 없으며 어떻게 하면 더 화려하게 멋지게 글을 쓰려고 시도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굳이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부터 10년 동안 노동자로만 일해 왔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도 그의 소설 한 편만 읽어도 누구나 이 사실을 감지한다.

김동식 소설 <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 <회색 인간>
ⓒ 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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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소설집 <회색 인간>에 수록된 '디지털 고려장'을 읽으면서 필자는 눈물을 흘렸다. 필자의 모친은 16년째 중풍으로 고생하고 있고 지금도 요양원에 계신다. 디지털 고려장이란 노인들의 육체를 빼앗아 가상 세계로 이주시켜 골치 아픈 노인 요양 문제를 해결하는 가상의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이 제도를 장려하며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한다. 노인들은 이 제도를 거부하지만, 자식들의 권유로 결국 가상의 세계로 이주하며 자식들이 비싼 돈을 들여 '업데이트'를 해주지 않는 한 자식들의 근황을 알지 못한다. 노인 문제를  이토록 신선하고 냉철한 시각으로 글을 쓴 사람이 김동식 말고 또 있었을까?

요양원에 계시는 내 어머니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들리지 않는 이상 요양원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하고 내 딸아이가 몇 학년인지, 방학했는지를 모른다. 내 어머니라고 요양원이 가고 싶었겠는가?

김동식의 소설은 이처럼 무심한 문장이지만 독자의 가슴을 후벼 파고, 상상력의 소산이지만 현실을 이야기하며, 산만하게 진행하는 것 같지만 단 몇 쪽 만에 식스센스급의 반전이 기다린다.

김동식의 소설은 미래사회에 관한 황당무계한 내용이지만 우리가 추앙하는 소설가의 필력을 천상의 세계로 두고 찬사를 하듯이 김동식의 상상력 또한 감히 흉내내기가 힘들겠다는 탄식을 자아낸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정도의 상상력과 기발함'이라면 '문장력' 따위가 무슨 문제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회색 인간>에 수록된 '사망 공동체'라는 단편이 있다. 이승의 사망률이 낮아져 저승에 심각한 인구문제가 발생하자 저승에서 사망자 두 배 정책을 만들었다. 사망자를 많이 생기게 해서 저승의 인구를 예전처럼 늘이겠다는 의도였다.

사망자 두 배 정책은 이승의 인간들을 자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다른 한 사람과 영혼의 짝으로 맺어주고 둘 중 한 명만 사망하여도 나머지 한 명은 무조건 함께 사망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승에서 한 명만 죽어도 다른 한 사람이 죽게 되니 그 만큼 저승으로 오는 인간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 정책을 발표하자 인류에게 변화가 생겼다. 사형 집행이 중지되었다. 사형수 하나를 죽이면 무고한 다른 한 명이 죽어버리니까. 전쟁도 중지되었다. 전사자가 생기면 누가 죽을지 모르니까.

인류에게 일어난 더 이상의 재미있고 기발한 변화를 읽다 보면 김동식 작가의 정체마저도 그의 소설처럼 가상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의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달리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회색 인간

김동식 지음, 요다(2017)


태그:#소설, #김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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