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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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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낮은 산이면서도 참으로 큰 산이다. 마애불의 보고라 할 만큼 마애불 또한 많은 산이다. 과연 남산을 빼놓고 신라를 논할 수 있을까. 신라인들의 신앙터이면서 불교미술 창작을 위한 예술터이기도 했고, 생활 터전이면서 신나는 놀이터이기도 했던 남산은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는 내겐 늘 그리운 산이다.

지난 8일 오전 8시 경남 창원 마산역에서 새송죽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출발하여 용장마을(경북 경주시 내남면)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0분께. 한 달 만의 산행이라 다소 들뜬 기분으로 관음사와 열반재를 거치며 1시간 정도 걷자 어느새 고위봉(494m)에 올랐다. 여기서 칠불암까지 거리는 1.35km. 백운재를 지나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길에 몇몇 일행과 함께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경주시 남산동)을 먼저 보러 갔다.

돌 속 부처를 캐낸 듯한 마애불

     신비스러운 감동,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신비스러운 감동,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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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나러 갈 때마다 왜 그리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마음 흐트러짐이 없는, 깊은 영성을 지닌 신라 석공에 의해 탄생됐을 것 같은 이 불상은 여전히 신비스럽다.

불상 높이가 1.4m로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는 보살상이다. 오른손에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린 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위에 지그시 눈을 감고 앉은 모습에서 내 마음도 일순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절벽 아래 칠불암 마애석불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스라이 보여 나는 칠불암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은 1.74m 간격을 두고 사방불(四方佛) 뒤쪽 병풍바위에 삼존불을 새겨 일곱 부처를 모시고 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앞에서.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또 빌었을까.
 칠불암 마애불상군 앞에서.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또 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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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속에 부처가 있다고 생각한 신라 석공이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그 부처를 캐낸 듯한 불심이 전해져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엄한 감동이 밀려왔다. 삼존불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화려한 연꽃 위에 앉아 부처의 자비를 한없이 드러내고 좌우에는 크기가 같은 협시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 또한 화사하게 피어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품은 한을 달래며 소원을 빌고 또 빌었을까.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지 않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뒤로하고 내려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며 점심을 같이했다.

한가한 점심을 끝낸 후 이영재를 지나 남산에서 가장 큰 골짜기로 고위봉과 금오봉 사이에 위치한 용장골 쪽으로 걸어갔다. 따사로운 햇빛이 부서져 내려 포근한 겨울 날씨였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렀다는 용장사지로 내려갔다.

대현 스님 따라 고개 돌리던 불상 머리는 어디 있을까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자연석 기단 위에 3층탑 같은 원형 대좌가 특이하다. 대현 스님 따라 고개 돌리던 불상 머리는 어디에 있을까?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자연석 기단 위에 3층탑 같은 원형 대좌가 특이하다. 대현 스님 따라 고개 돌리던 불상 머리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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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은 주변 자연과 조화로이 어우러져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그 자태가 아름답다.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 작품으로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래 기단으로 삼았으나 어떻게 보면 바위산 전체를 하단 기단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아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을 보러 내려가는 길이 꽤 가팔랐던 기억이 나는데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수월해졌다. 자연석 기단 위에 3층탑 같은 독특한 형태의 원형 대좌를 만들었고 맨 위 원형 대좌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대좌에 비해 불상은 작은 편이다. 통일신라 대현 스님이 염불하면서 이 불상 주위를 돌면 부처님도 대현 스님 따라 고개를 돌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불상의 머리 부분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바위산 전체를 하단 기단으로 삼은 듯한 경이로움,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바위산 전체를 하단 기단으로 삼은 듯한 경이로움,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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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칫 놓쳐 버리기 쉬운 보물,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자칫 놓쳐 버리기 쉬운 보물,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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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58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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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여래좌상 뒤쪽 바위벽에 새겨진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은 자칫 놓쳐 버리기 쉬운 보물이다. 위치가 길목이라 급하게 서두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인상적이고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마침 따사로이 비쳐드는 햇살로 온화한 느낌이 들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후 2시 20분 남짓 되어 금오봉(468m) 정상에 이르렀다. 4시까지 하산이라 이내 삼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분쯤 걸어갔을까, 멀리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58호)이 보여 정말이지,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거대한 자연 암벽에 새긴 마애불로 높이가 무려 6m이고 속세의 중생을 굽어살피는 듯한 자비와 위엄이 서려 있다.

경주 남산은 산길을 걸으며 불상을 계속 만나는 설렘과 감동을 맛보게 되어 신라 불교미술의 노천박물관이라 가히 말할 수 있다. 하산길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가운데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힌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가운데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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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 머리를 잃어버렸음에도 위엄이 넘치는 불상이다.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 머리를 잃어버렸음에도 위엄이 넘치는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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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바윗면에 각각 삼존불을 선으로 새겨 놓았는데, 조각 수법이 정교하고 뛰어나서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가운데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힌다 한다. 오른쪽 삼존불의 본존은 연꽃 대좌에 앉아 있는 반면에 왼쪽 본존은 입상으로 좌우 협시보살이 본존을 향해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 들고 한쪽 무릎은 세운 채 꿇어앉은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잰걸음으로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머리를 잃어버렸음에도 위엄이 넘치는 불상이다. 조선 시대의 억불숭유 정책 탓이었을까. 계곡에 묻혀 있다 지난 1964년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어 옮겨 놓은 것이다. 옷 주름, 가사(袈裟)의 매듭, 매듭에 달린 술까지 아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아름답다. 

    경주 배동 삼릉(사적 제219호).
 경주 배동 삼릉(사적 제2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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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어귀에 위치한 배동 삼릉(사적 제219호)에 도착했다.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박씨 성을 가진 왕들로 신라 제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신라 초기 아달라왕의 무덤과 무려 700여 년이란 시간적 거리가 있는 두 왕릉이 한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삼릉 주변에는 소나무들이 많다. 그런데 왕릉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들이 무덤을 향해 유난히 기울어져 있는 것이 몇 번을 보아도 신기하다. 천 년의 역사를 품은 경주 남산. 산행길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하나씩 하나씩 만나는 기쁨에 젖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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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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