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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못 둑에 세워져 있는 상화 시비 앞에서 상동마을여행 김두현 대표(앉은이)의 해설을 듣고 있는 '두산동 상동 마을 답사' 참가자들
 수성못 둑에 세워져 있는 상화 시비 앞에서 상동마을여행 김두현 대표(앉은이)의 해설을 듣고 있는 '두산동 상동 마을 답사' 참가자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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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마을여행(대표 김두현)이 준비한 대구 수성구 두산동-상동 답사가 3월 17일 실시됐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답사에는 20여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두산동 소재 대구방송 앞을 답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일행은 이내 두산 오거리를 지나 금세 상화공원에 닿았다. 상화공원은 수성못 입구 넓은 둔덕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이상화 시인의 여러 시비와 해설판이 조성되어 있다.

이상화 시인과 그의 작품에 대한 소개를 마친 김두현 대표는 못둑 아래 들안길 일대를 가리키면서 "빼앗긴 들이 이곳 들안길 일원이 아니라 앞산 아래 대명동 일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김두현 대표는 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가사로 한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답사의 첫머리가 자못 흥미로웠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를 보고

수성못 못둑길을 걸어 고인돌 유적지로 향했다. 김두현 대표는 "수성못은 일제 강점기 때에 수세 징수 등을 목적으로 본래 규모보다 확장되었는데 그 일을 주도한 인물이 일본인 수기임태랑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화 시비 앞에 <수기임태랑 선생님께서 수성못을 축조했다> 식의 사실과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극존칭까지 사용한 잘못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서 다행"이라는 해설을 덧붙였다.

 수성못 유원지 인근의 고인돌 유적(대구시 기념물 12호)
 수성못 유원지 인근의 고인돌 유적(대구시 기념물 12호)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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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둑을 내려와 놀이공원을 지나니 고인돌 입구를 가리켜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정표를 따라가니 길이 끊겨 있었다. 철망에 막혀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곳 상동 501번지의 고인돌 무리가 대구광역시 기념물 12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요 문화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접근로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이 착잡했다.

기념물 12호 고인돌, 거의 방치 수준

막힌 길을 돌아나와 방황을 하고 있는데 인근의 족구장 주인이 뜻밖의 친절을 베풀어 답사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다. 족구장 사무실 앞을 통과하면 고인돌 유적지로 갈 수 있다면서 편의를 봐준 것이다. 일행은 족구장 주인에게 웃는 얼굴로 사의를 표시한 후 이윽고 고인돌이 멀리 보이는 지점까지 전진했다.

"지구상에는 약 6만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 중 절반인 3만여 기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고인돌의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반도 안의 분포를 보면 약 2만 기가 남한에, 약 1만 기가 북한에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대구에 3천여 기가 있어서 가장 많았습니다."

고인돌에 대한 김 대표의 해설은 계속됐다.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았지만 대구는 제외되었습니다. 대구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고인돌을 상당수 훼손하기도 했고, 해방 이후 도시개발 과정에서 대부분을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도 얼마 안 되지만 이곳에서 보는 것처럼 관리 상태도 엉망입니다."

 봉산서원을 지나 야수정으로 가고 있는 답사자들
 봉산서원을 지나 야수정으로 가고 있는 답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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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유적지에서 도로로 나가는 통로도 막혀 있었다. 고인돌 주변 땅의 소유자가 사방에 철망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답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유적지 옆의 밭두렁을 밟고 어렵게 길로 나왔다. 답사에 참가한 최봉태 변호사는 "시나 구청에서 고인돌 유적지 일원의 땅을 매입하거나, 아니면 소유자와 협약해서 통로를 열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진왜란 유적 봉산서원을 찾아서

일행은 2015년 우수마을기업에 선정되었던 '분재 마을'을 둘러본 다음 봉산서원을 찾았다. 보조 해설에 나선 필자는 '봉산서원은 임진왜란 유적'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군은 1592년 4월 21일 대구를 점령합니다. 적군은 청도에서 팔조령을 넘어온 다음 파동, 상동을 거쳐 읍성으로 이동했습니다. 영남대로를 따라 행군한 것이지요. 일본군이 대구에서 가장 먼저 만난 지식인이 손린인데, 이곳 봉산서원은 손린을 기리는 곳입니다. 이름난 시인이기도 했던 손린은 전후에 이 경험을 작품화했는데 대략 병법을 공부했더라면 적을 물리칠 수 있었을 텐데 글공부만 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는 소감을 담고 있습니다.

봉산서원은 삼문에 지행문(砥行門), 강당에 지행당(砥行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중국 황하의 가운데에 지주(砥柱)라는 거대 바위가 있는데 아무리 큰 홍수가 나도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킨다고 합니다. 지행문과 지행당의 지(砥)는 꼿꼿한 선비의 기상을 의미하고, 행(行)은 선비 최고의 덕목인 언행일치를 뜻합니다. 즉 지행은 꼿꼿한 품격을 지키면서 선비답게 살아가겠다는 손린 선생의 정신세계를 함축하고 있는 두 글자라 하겠습니다."

 찾아온 답사자들에게 야수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임수무 계명대 명예교수(왼쪽의 선 이)
 찾아온 답사자들에게 야수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임수무 계명대 명예교수(왼쪽의 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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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상동 마을지도> 제작 근거지였던 '공간 울림'을 거쳐 야수정으로 이동했다. 대구시 문화재자료 14호인 야수정은 1900년대 초기에 지어진 진씨 재실로 장마루, 천장의 우물정자 장식, 유리창문 사용 등 일본풍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 집을 현대식 '서당'으로 활용 중인 임수무 계명대 명예교수가 답사자들을 맞아 해설도 하고 차까지 대접해서 모두들 고마워했다.

다음 답사지는 '이서 공원'이었다. 이서(1732∼1794)는 조선 정조 때 대구판관으로 재직했던 인물로, 대구 읍내가 해마다 홍수를 겪는 것을 확인한 이서는 1778년 사비를 들여 둑을 쌓음으로써 물길을 바꾸었다. 이서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인 1797년(정조 21) 대구 백성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 빗돌을 세웠다. 비에는 '이공제비(李公堤碑)'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서 공이 둑(堤)을 쌓은 것을 기려 세워진 비석이라는 뜻이다.

이서 공원 비각 안에 비석이 셋 있는 까닭

김두현 대표는 "1808년(순조 8) 대구 백성들은 좀 더 크고 모양이 뛰어난 이공제비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후 1898년(광무 2) 대구에는 재차 대홍수가 나서 이공제의 일부가 무너졌는데, 이때 군수 이범선이 신속하게 보수 공사를 잘 마무리하여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군수 이범선 영세불망비>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현재 비각 안에 비석이 세 개 보존되어 있습니다"라고 해설했다.

 이서를 기려 세워진 이공제비와 비각
 이서를 기려 세워진 이공제비와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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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답사지는 '상동 청동기 마을'이었다. 이곳은 선사 시대의 집터와 고인돌 아래의 무덤이 복원되어 있어 학생들에게 아주 유익한 학습 공간이다. 집터는 본래 이곳에 있던 정화여자고등학교가 범어동으로 옮겨간 뒤 우방정화팔레스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고, 고인돌은 학교 교정 곳곳에 산재해 있던 것을 옮겨서 모아놓은 것이다.

이곳은 수성구청에서 지난 해 가을과 겨울에 걸쳐 재정비를 한 덕분에 지금 아주 깔끔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반송들이 길을 따라 일렬로 서 있어 신비감을 주는가 하면, 고인돌들도 아파트를 등지고 좌우로 나란히 놓여 있어 정제미가 뛰어나다. 제법 너른 잔디밭 가운데에는 기존의 집터 유적 및 고인돌 아래 돌널무덤과 돌넛널무덤을 복원하여 안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움집도 한 채 새로 지어놓아 더욱 선사 시대의 분위기가 돋보인다.

한 마을에 이토록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으니 감탄할 일

답사에 참가한 추연창씨는 "대구에서 하나의 마을 단위에 이만큼 문화유산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오늘 답사한 여정을 좀 더 가다듬으면 훌륭한 여행 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수성못 아래의 고인돌로 접근하는 길을 정비하고, 이공제비에 관한 해설을 오류없이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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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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