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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여름, 나는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 주관으로 관계 공무원 7명과 함께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를 방문하며 유럽 다문화도시 벤치마킹 코디를 맡은 적이 있다.

첫날 방문지는 프랑크푸르트시 다문화통합센터였다. 통일 이후 프랑크푸르트시는 1989년에 다문화과가 신설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통합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센터는 어떻게 평화적·성공적으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지, 종교간의 문제를 어떻게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지, 외국인들과의 분쟁, 소통 방식 등을 연구하고 있다. 언어교육(독일어, 모국어),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에 센터는 전문적인 인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역에 깊이 개입하며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180여 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도시

한국다문화관계 공무원들이 유럽다문화도시 벤치마킹 탐방하다
▲ 2015년 여름 프랑크푸르트시 다문화센터 방문 한국다문화관계 공무원들이 유럽다문화도시 벤치마킹 탐방하다
ⓒ 홍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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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센터는 민간기관인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와 깊은 연계 아래 일을 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180여 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 센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종교간의 분쟁 해결이며 다양한 종교 분쟁을 해소하고 성공적으로 어울려 살아가게 하기위한 노력을 한다.

현재 이 프랑크푸르트시 안에는 40% 이상의 시민이 이주의 경험이 있고 24.3%가 국제이주민이다. 신생아 2/3가 외국인 부모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시 안에는 이주 아동들(이주의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데 교육(직업교육)을 통해서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더 나은 전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청소년들이 가족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또한 아프리카인, 무슬림인 등의 이주민들이 배제되지 않는 문제를 부서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근래 뜨거운 주제는 전 세계적으로 6500여만 명의 난민 문제로, 이란 등 자국에서 살해위협, 고문 등의 상황을 피하려고 난민으로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가 주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 난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나라로 내가 방문한 2015년 상반기에만 해도 20만 명(유럽 전체로는 40만 명)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5년 한 해 80만 명 정도가 들어올 예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120만 명가량이 들어왔다.

많은 숫자에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독일에서는 이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두 가지 입장이 있었다. 유입 난민에 대해 환영하며 받아들이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개신교 디아코니아와 같은 기관들을 비롯해서 시청 등 관공서에 방문하는 것, 문서 쓰는 것 등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았다. 프랑크푸르트시는 그런 측면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유입 난민에 대해 개신교 디아코니아, 가톨릭 카리타스 등의 시민단체 및 종교기관 등에서의 다양한 종류의 도움(물품, 재정, 언어, 자원봉사)과 지원에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2일 머물고자 했던 이란 난민, 지금은...

프랑크푸르트 시장선거에 나온 이란 난민
▲ 에스칸다리 그륀베르크 박사 프랑크푸르트 시장선거에 나온 이란 난민
ⓒ 홍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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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이 부서를 방문하면서 충격에 빠졌다. 이 부서의 대표가 이란에서 난민으로 33년 전 정착한 에스칸다리 그륀베르크 박사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망명으로 온 이란 출신의 난민이었던 이 여성은 당시 독일 중부 유럽 금융의 허브권인 프랑크푸르트시의 다문화통합부서의 명예부시장이었다(2008년부터 2016년).

그녀는 여기서 일을 하면서 생기는 대립뿐만 아니라 이들이 분쟁 지역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난민들 중에서도 이스라엘 팔레스티안 문제나 종교적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모두에게 권리를 주면서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녀는 강변한다.

이란의 테헤란에서 1965년 출생한 그녀는 자신의 라이프스토리를 말하는 것에 대해 그리 흔쾌하지 않았다. 기억하기 싫은 트라우마가 떠오르기 때문이란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이란혁명 때 그녀는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이란의 물라 정권에 대항한 민주주의운동에 가담해 체포돼 감옥에서 1년 반을 복역했다. 그녀는 당시 종교의 자유와 무슬림에 대한 비판적 대화에 관여했다. 이후 19세에 독일을 경유 미국으로 망명을 계획하고 프랑크푸르트에는 2일 정도 머물고자 했다.

하지만 이란과 미국 관계가 나빠지면서 미국 체류 비자가 안 나와서 더 머물게 된 것이 33년간 독일에서의 체류로 이어졌다. 행운이었다. 독일에 머물면서 의학과 심리학으로 학위를 하고 지금은 정치가로 활동하고 심리학자로서 테라피스트로서 경제활동 하고 시 다문화센터에서는 명예직으로 일하고 있다가, 올해 2018년 2월, 그녀는 프랑크푸르트시 시장선거에 나와 기민당, 사민당 후보에 이어 녹색당 후보로 선전했다.

다음은 2015년 여름, 그륀베르크 대표와의 대화 내용이다.

- 본인의 출신 자체가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때로 약자만 대변하다 보면 정부와 마찰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NGO단체나 이민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시행하는 방식과 절차 및 의견수렴을 위한 조직이나 모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가?
"1층에 의회가 있고 서류로 접수받아 일이 진행 처리된다. 위원회는 300개가 있으며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해결점을 찾는다. 이 일 자체가 도전적인 일이어서 항상 대립과 마찰이 있을 수 밖에 없다. 7년 전에 무슬림 사원 건축문제로 시위도 일어났는데, 그 이후로는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다. 여기서 살면서 생기는 대립뿐만 아니라 이들이 분쟁 지역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난민들 중에서도 이스라엘․팔레스티안 문제나 종교적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모두에게 권리를 주면서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시 센터에서 중앙정부와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독일은 독특한 시스템으로, 주정부는 하나의 정부이며 시는 독자적인 정부로서 연방에서 모여서 대표들이 회의하지만 예산이나 과제는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 다문화부서 직원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전문인력들인지 궁금하다.
"직원의 수는 40명이며 그밖에 인력은 총 100명 정도이다. 이들은 모두 전문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고, 한번 일하게 되면 계속 근무한다.(한국처럼 순환식으로 하지 않는다)"

-  독일의 이주민 정책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주해온 지 30여 년 됐는데 처음에는 3년 계약으로 일하다가 정착하게 됐다. 3년마다 돌려보내고 정책변경 후 4세대까지 와서 많은 변화 예상된다. 이주정책이 지금까지도 많이 변했고 앞으로도 변화가 예상된다."

- 이란에서 와서 정착할 때 민간이나 정부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나?
"처음에 망명 왔을 때 독일 정부의 지원은 없었으며 혼자서 7개월 정도 카세트로 어학 공부하고 8개월째에는 의학공부를 시작했으며 복지단체에서 점점 많은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때는 지원이 열악했으나 지금은 NGO나 시민사회에서 많이 돕고 있다."

난민수용소를 방문하고
▲ 독일 방문시 하이델베르크 구다리를 전경으로 난민수용소를 방문하고
ⓒ 홍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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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에 대해 이주민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독일 여권이 있어야 투표가 가능하며 20년 이상 오래 살아도 투표권 없는 경우도 있다. 지방정부 선거도 안 되며 세금을 내더라도 투표권은 없다. 다만 유럽연합에 속한 사람은 의견제시가 가능하다."

- 한국에서도 난민 때문에 법무부에서 어려움이 많다. 비자가 만료되는 시점에 난민 신청하여 결정까지 2년이 소요되어 한국에서 2년간 생활할 수 있다. 만약 안 받아지면 제소를 하고 판결나는 시간까지 1년 걸려서 최대 3년까지 한국에서 체류 가능한데 독일은 어떤가?
"독일은 보통 1~3년까지 걸리는데, 최대 6년까지 되기도 한다. 난민으로 통과가 안 되면 법정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주는데 기간이 정해지지 않아 12년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검토해서 난민 인정이 안되면 불법체류가 된다. 또한 기다리는 동안 일을 못하기 때문에 시에서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난민 발생이 많아 서류 검토 등 인력이 부족해서 이번에 한꺼번에 1000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헤센주 디아코니아는 시와의 긴밀한 공조아래 난민들을 돕고있다
▲ 시다문화센터와 디아코니아관계자와의 토론 헤센주 디아코니아는 시와의 긴밀한 공조아래 난민들을 돕고있다
ⓒ 홍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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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으로 들어와 독일 땅에 정착하면서 부시장으로 역동적으로 일하고 있고 지금은 시장선거에 나온 그륀베르크 박사에게 뜨거운 연대를 보낸다. 그녀는 이주민이 적은 곳에서는 오히려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나 행동이 나온다고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40%이상이 이주의 경험이 있고 24.3%가 국제이주민이고 신생아 2/3의 부모가 외국인부모라는 프랑크푸르트는 다양한 국제이주민들이 통합을 이루면서 오히려 무지개색 미래를 향해 평화로운 공존의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Wir sind stolz... 우리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한국 사회는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 500여 명을 둘러싼 논쟁으로 아직까지도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제까지 그리 주제가 안 되었던 세계 난민에 대한 관심도 시민사회에서 갖게 되었다. 이는 현재 난민에 대한 다양한 논란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향방에 뜨거운 화두로 작용하리라는 기대도 함께 갖게 된다.

하지만 독립된 섬처럼 분단상황으로, 60여 년간 지내온 지정학적인 한계로, 우리는 아직도 세계시민으로서 인지해야 할 많은 인식론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난민이나 이주민에 대한 인종주의와 혐오와 배제의 문제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라고 본다.

최근 안타까운 탄원서를 접하게 되면서 이란 난민 출신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장후보 그륀베르크 박사가 오버랩되었다. 청와대에 제출된 청원 핵심내용은 이렇다.

현재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란 국적의 학생은 7살에 한국에 왔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해서 반 아이들과 국적을 불문하고 어울려 지내왔다. 하지만 난민 신청이 불허되어, 법원 판결 패소했고, 신분이 박탈되어, 강제 출국 예정이란다. 지금 그는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 목숨이 매우 위태롭게 되어 27명 반 친구들의 매우 간절하고 절박한 청원운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청원서에 힘을 실어 주어야한다. 거짓 난민은 없다. 다음은 청와대 청원주소이다(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03099).

우리에게도 난민출신 시장선거 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


태그:#난민 ,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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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신학대학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개신교 신학부 박사 한신대 강사 한국연구재단 연구교수 한국디아코니아 대표이사 수원에서 난민사회적 기업으로 YD케밥하우스를 운영하며 난민쉼터와 노숙인 도움행동을 하고있다. 식탁에서 시중을 든다는 의미의 디아코니아를 실천하고 이론화하는 것을 직무로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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