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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는 배가 다닐 수 있도록 수로를 만드는 사업이다. 도로 및 항공이 발달되기 전인 19세기까지, 운하는 배로 대량의 화물을 먼 거리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전문가들은 보통 500킬로미터 이상이 되거나,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처럼 항로 단축효과가 있을 경우 경제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두 지역에 '운하'가 있다. 하나는 지난 2014년 3월 개통한 '포항운하'다. 포항운하 개통식 당시 4대강 전도사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는 자신의 SNS에 "운하건설이 환경개선 사업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다"면서 "운하가 환경파괴라고 하던 좌파환경단체들은 다 도망가고 안 보인다"라고 게재한 바 있다.

포항운하는 길이 1.3km, 폭 13~25m, 수심 1.7m 규모다. 이 사업은 1970년대 국가공단 조성을 위해 매립한 형산강 지류를 되돌리는 사업으로서, 사실 '운하'라 칭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다. 실제 화물선은 다닐 수 없고, 겨우 40인용 규모 유람선만 운항했다. 하천복원사업이라 해도 될 곳을 굳이 '운하'로 명칭을 정한 이유는 뭐였을까?

포항이 '한반도 대운하'에 집착했던 MB의 고향이자, MB 친형이며 '형님 예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MB 정권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포항운하를 추진했던 박승호 전 포항시장은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4년 경북도지사로 출마하면서,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로 권력에 민감했다.

경인운하는 4대강사업 축소판

이철재 에코큐레이터가 2013년 직접 촬영한 경인운하. 당초 건설 목적이었던 화물운송은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 자전거 도로에만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이철재 에코큐레이터가 2013년 직접 촬영한 경인운하. 당초 건설 목적이었던 화물운송은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 자전거 도로에만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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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가 '경인아라뱃길'로 불리는 '경인운하'다. 2012년 5월 인천에서 서울 강서까지 폭 80m, 깊이 6m, 길이 18km 구간을 뚫어 완공시켰다. 국민 세금 2.7조 원이 들어갔다. 사실 경인운하는 일제강점기부터 이명박 정권에 이은 현재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었다. 화물차 20여분 거리를 화물선으로 2시간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경제성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MB 정권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인운하 비용편익분석(B/C) 1.07(1이 넘으면 경제성 있다고 본다)을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전망했다. MB 정권은 이 사업을 통해 2만5천~2만8천 개의 일자리와 3조 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빼놓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2009년 1월 16일 당시 KDI 현정택 원장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KDI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전문적 기관"이라며 "(경인운하 경제성 평가 논란은) 무지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같은 날 경제성 평가 실무를 맡은 김강수 연구위원도 <YTN>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객관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현실과 달랐다. KDI가 전문성을 가지고 공정하게 평가했다는 경인운하 물류는 개통 1년 즈음 전망 대비 7%에 그쳤다. 당시 서울대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의 B/C 분석은 0.1이었다. 2013년 5월 28일 <동아일보> 허승호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경인운하는) 토건 족이 주도했다"며 "참 아름답고 거대한 오시범(誤示範) 사례"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수공 관계자는 3~4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다. 개통 5년 차인 2017년 물동량은 계획 대비 8.7%, 여객선 비율 역시 20%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말 국토해양부 관행혁신위원회는 "처음부터 타당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관행혁신위원회는 "항만물류 중심인 경인운하의 기능 전환과 존폐 여부를 수자원공사가 발주자가 아닌 새로운 연구 용역과 공론화위원회 논의를 통해 결정하라"고까지 권고했다. 경인운하는 타당성 없는 사업을 국가가 일방적 권위를 내세워 혈세를 낭비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4대강 사업과 판박이다.

이 뿐만 아니다. 경인운하 공사가 진행되던 2009년 10월 국감에서는 경인운하 짬짜미 정황이 지적됐다. 당시 6개 공구 턴키공사 낙찰율은 88~90%였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4월이 돼서야 대형 건설사들의 담합을 인정했다. 4대강사업의 경우 2009년 10월 담합 의혹이 제기됐으나, 공정거래위원회는 MB 정권 말기인 2012년 5월 담합을 인정했다. 경인운하는 이 보다 더 늦게 결론 났다.

경인운하, 민주당 원죄

그 사이, 4대강사업처럼 경인운하 역시 은탑산업훈장, 국민훈장동백장, 산업포장 등 훈·포장이 수여됐다. 2012년 5월 25일 대한민국 관보에 게재된 '경인아라뱃길 사업 유공' 관련 서훈 상황을 보면 경인운하 강행의 핵심 수자원공사 관계자와 현대건설 등 담합 건설사 관계자 등 모두 22명에게 수여됐다.

혈세낭비, 비리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이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없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환경정의포럼 박용신 운영위원장은 "경인운하 경제성 조작에 관여한 전문가, 관료 등은 현재도 어떠한 사과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어 "2003년 9월 경인운하 경제성 조작으로 감사원에서 징계를 요구받았던 국토부 관료 안아무개는 4대강사업 강행 시 핵심적으로 활동하던 인사였다"고 지적했다.

혈세 낭비와 비리로 얼룩진 경인운하는 몇 차례 백지화될 수 있었다. 2002년 말 당시 대선에 나선 노무현 후보는 백지화를 언급했다. 실제 2003년 1월 노무현 정권 인수위는 경인운하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다음날 바로 입장을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하지만 2003년 9월 감사원은 정부가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경제성 있도록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시기 환경단체들은 경인운하 백지화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뒤집은 것이 당시 지역 정치인들이었다. 앞서 2003년 1월 경인운하 백지화 번복 해프닝도 당시 열린 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깊게 관여돼 있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 정치인들은 "물류와 교통난 해소 차원에서 경인운하는 꼭 필요하다"며 강행을 고집했다.

2006년 3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열린우리당 김한길 대표와 강봉균 정책위의장 역시 경인운하 건설을 약속했다. 2007년 7월 대선이 본격화 됐을 때는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이 나서서 "경인운하는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와 다르다"면서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송영길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 인천시장 야권 단일 후보가 되면서 경인운하 추진을 사과했다.

그러나 잘못된 결정으로 발생한 피해를 바로잡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MB가 강행한 4대강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였고, 처음부터 타당성 없는 사업을 국가 권력으로 밀어붙여 혈세를 낭비하고 자연환경을 악화시켰다는 것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거듭 확인됐다. 경인운하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대운하와 경인운하는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2018년 4월 16일 자 <한겨레> '촛불 이후, 토건이 돌아왔다'라는 칼럼을 통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과 기초단위에서 언급되는 무분별한 토건 공약을 우려했다. 그는 "시장이나 도지사의 당선과 치적을 위해서 촛불 기념, 민주화 기념, 이런 껍데기를 달고 토건이 복귀하는 것은 시대정신이 아니다"면서 "토건 정책 재검토를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비슷한 의견이다. 8월 25일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할 예정이라 상기시키고 싶다. 경인운하는 토건족을 위한 혈세 낭비의 또 다른 사례였고, 이 사례를 만든 책임에 있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자유로울 수 없다. MB의 4대강사업은 앞선 정권의 토건족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전조가 있었기에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환경운동연합 누리집에도 올립니다.



태그:#경인운하, #경인아라뱃길,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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