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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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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문화재단과 서천문화원이 주최한 2018년 '이제는 금강이다' 행사가 충남 서천 문헌서원 교육관에서 열렸다. 28일 오후 3시부터 진행된 이날 행사는 50여 명이 참석했다. 문헌서원 교육관은 가정 이곡 선생과 묵은 이색 선생님의 높은 학식과 고매한 정신을 후예들에게 널리 알리고 육성하기 위한 곳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다.

강의에 나선 나태주 시인은 "서천은 안 오고 싶었다. 아는 사람들도 많고 중학교, 초등학교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불편함이 많다. 지금은 공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나를 선생으로 만들기 위해 1년 빨리 학교에 보냈다. 나는 선생에 대한 꿈은 없었다. 그림도, 체육도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해라고 하니 해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아버지 말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상 다니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2018년 지금까지 강연을 100번 정도 했는데, 많이 힘들다. 풀꽃이랑 시 때문에 많은 곳에서 불러 주는 것 같다. 공주에 20~30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지역 사람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을 정도로 힘든 지역이다. 그래서 공주 문화원장을 두 번 하고 나서부터 조금씩 인정을 해주는 것 같다. 지금은 '풀꽃문학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천을 생각하면 늘 죄송하게 생각한다. 지역에는 유명한 분들이 많이 계신다. 서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셔도 된다. 갈수록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서 큰 일이다. 요즘 걷는 것이 의미가 없다. 어릴 때는 8km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는데 지금은 걷는 것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71년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좋아하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애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배 쓸개가 터져서 고생을 했었다. 당시 15일 동안 고생하면서 이빨을 박박 갈았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 이후부터 '풀꽃'이란 시부터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이 알아주고 있다.

시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 요즘은 SNS 시대인데 길고 어려우면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짧고 쉽게 글을 쓰는 편이다. '풀꽃'이란 시도 24자의 글로 만들어졌다. 학교에서 선생을 할 때 아이들을 보면서 쓴 글이다. 가꾸려고 하면 풀도 꽃이다."

한편,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했다. 서울신문 신춘문회에 당선된 후부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1973년 대숲 아래서와 1980년 막동리 소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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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나태주, #풀꽃, #시인,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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