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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유신묘 전경
 경주 김유신묘 전경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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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1호로 지정된 김유신묘는 경주 송화산 동쪽 양지바른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다.
김유신 장군의 업적은 여기에서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학교 다닐 때 많이 배웠던 부분이라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 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만큼 김유신은 살아서는 왕이 아니었지만 죽은 후에 그의 공을 인정받고 흥무대왕으로 추존 받았던 인물이다.

김유신묘 좌측에 세워져 있는 비석
 김유신묘 좌측에 세워져 있는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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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묘 왼쪽에 아주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라고 새겨진 이 비석은 신라 때 세운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 경주 부윤이 새긴 비석이다.
김유신묘 우측에 김해김씨 후손들이 세운 비석
 김유신묘 우측에 김해김씨 후손들이 세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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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도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김해김씨 후손들이 세워 두었다. 그런데 여기 비석에 '개국공순충장열흥무왕릉"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비만 오면 맨 아래 글자가 "능"에서 "묘"로 바뀐다는 점이다. 아마 후손들이 흥무대왕의 위엄과 품위 때문에 처음에 새긴 "묘"를 "능"으로 바꾼 것 같다. 일부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비석에 물을 붓고 이를 확인하는데 요즘은 못하게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원래 글자를 메꾸고 다시 새긴 흔적이 보인다.

김유신묘 앞에는 제단이 하나 놓여져 있는데, 김해김씨 후손들이 찾아와 예를 갖추고 절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김유신묘 주위 12지신상은 사람의 형상에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다. 얼굴은 동물 형상을 하고 있는데 고개를 전부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는 게 특징이다. 경주지역에 있는 왕릉중 12지신상은 여기가 제일 선명하고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12지신상을 자세히 보면 모서리 부분이 떨어져 나간 흔적들이 보이는데 이는 어두운 시절 도굴꾼들이 도굴을 위해 일명 '빠루" 같은 것으로 도굴하다 떨어져 나간 것으로 생각된다.

도굴의 흔적으로 십이지신상 파손된 모습
 도굴의 흔적으로 십이지신상 파손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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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묘 주위를 둘러보고 내려오면 오른쪽에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신도비가 보인다. 신도비에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장군의 일대기를 기록해 두었다.
김유신장군 신도비 모습
 김유신장군 신도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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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눈여겨 보고 와야 할 곳으로 김유신장군 신도비 아래 나무테크가 설치되어 있는데 바로 옆에 "하마비"가 숨겨져 있다. 대부분 보지 못하고 내려 가는데 하마비는 그 어떤 사람도 여기를 통과 할 때는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해야 한다는 표시석이다.

2014년 경주 황남동 숭혜전 입구 하마비가 도난당했는데 여기도 좀 더 보완하여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숭무전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하마비
 숭무전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하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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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묘 관광 후 신도비 아래에 보면 송화산 등산로 가는 길이 보인다. 여기서 150여m 내려가면 김유신장군 영정을 모신 숭무전과 금산교육관이 보인다. 숭무전은 평소 출입이 통제되어 볼 수 없지만 금산교육관 주변으로 산책삼아 걸어 다니면 힐링코스로도 좋다.

금산체육관 앞에는 건축 당시 기부한 헌성방명기가 세워져 있는데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름만 보아도 누군지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금산교육관 현판 글씨는 작고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적었다.

김유신장군 영정을 모신 숭무전 모습
 김유신장군 영정을 모신 숭무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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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곳이 있는데 김유신묘 주차장에서 일방통행도로로 100여m 내려오다 보면 왼쪽에 공개석실고분이 보인다. 대부분 보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곳이다. 여기도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한번 보고 가길 권한다,

옛날 사람이 죽으면 널길은 남쪽으로 쭉 뻗어 나게 하고 동서로 길게 관을 놓은 흔적들이 보인다. 공개한 고분 안을 들여다 보면 머리돌과 발받침 등이 놓여 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된 것을 관련 기관에서 발굴조사를 해보니 말뼈 32점만 나오고 나머지는 없었다고 한다. 옛날 1960-70년대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도굴꾼들에 의해 중요문화재가 도굴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숭무전앞 금산교육관 모습과 헌성방명기
 숭무전앞 금산교육관 모습과 헌성방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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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묘 관광 후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일방통행로이기 때문에 내려갈 때는 연결된 길로 그대로 가야 한다. 간혹 올라오는 방향으로 다시 역주행하는 차량들이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경주 공개석실고분 외,내부 모습
 경주 공개석실고분 외,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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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가 네이버 폴라 트레블러로 활동하면서 올린 기사내용과 일부 중복되는 글이 있습니다.



태그:#모이, #김유신묘, #공개석실고분 , #숭무전, #김유신묘하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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