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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인사이드'는 청와대·통일부·외교부·국방부·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정보'가 있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18년 11월 23일 오전 9시 15분, 권혁기 춘추관장이 일정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날 브리핑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와대 비서관 전원이 참여하는 워크숍 일정이었다. 권 관장은 "문재인 정부 임기 3년 차를 맞이해서 전체 비서관이 국정목표와 과제를 같이 토론하고 심기일전하는 자리다"라고 설명했다. '심기일전(心機一轉)'이란 '이제까지의 마음과 자세를 바꿔 새롭게 가다듬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이날 워크숍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비서실과 정책실, 국가안보실 소속 비서관 전체가 모이는 자리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권 관장의 일정 브리핑은 오전 9시 21분께 끝났다. 이어서 오전 9시 32분 청와대 출입기자단 카카오톡방에 '오전 11시 교육부 차관 인사 발표' 공지가 떴다. 권 관장의 아침 일정 브리핑에도 없었던 일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종천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사건이 발표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부대변인 갑작스러운 백브리핑 "대통령이 즉각 사표수리 지시"
 
지난 7월 2일 김종천 의전비서관(가운데)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
 지난 7월 2일 김종천 의전비서관(가운데)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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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전 11시 23분 권 관장의 알림 문자가 출입기자단 카톡방에 올라왔다. '11시 30분 1층에서 고민정 부대변인 백브리핑 있습니다'라는 문자였다.

이미 춘추관장의 일정 브리핑이 진행됐고, 교육부 차관 인사 발표 공지까지 나간 상황에서 오전에 백브리핑(백그라운드브리핑의 줄임말)할 거리가 뭐가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부대변인 백브리핑'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부대변인 백브리핑에 일부 기자들이 "브리핑 의제가 따로 있느냐?"라고 물었지만 답변은 없었다.

오전 11시 30분께 춘추관 1층 브리핑룸에서 고민정 부대변인이 백브리핑을 시작했다. 백브리핑의 내용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김종천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과 사표 수리였다.

"오늘 새벽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음주운전으로 단속됐다. 의전비서관은 비서실장에게 보고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자진신고하고 조사를 요청했다. 오전 현안검점회의가 종료된 후 비서실장이 티타임 때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이 즉각 사표수리를 지시했다."

음주운전의 당사자가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김종천 비서관이었다는 점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청와대의 공직기강 해이라는 비판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게다가 김 비서관이 임종석 실장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실세로 평가받는 임 실장에게도 그 불똥이 떨어질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 부대변인의 백브리핑이 열리기 전 한 보수 인터넷 매체가 김 비서관의 음주운전을 제보받아 취재 중이었다는 점이다.

고민정 부대변인에 이어 일문일답에 나선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김종천 비서관의 음주운전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김 비서관이 이날 오전 1시께 대리운전기사를 맞이하는 장소까지 음주운전을 했다고만 전했다. 음주운전의 구체적 경위와 거리, 동승자 등을 묻는 말에는 "경찰에 확인하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추가 브리핑

구체적 설명을 회피한 이후 김종천 비서관의 차량에 동승한 사람이 여성이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결국 앞서 언급한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오후 3시 넘어서 출입기자실에 와서 구체적인 음주운전 경위를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기자들한테 질문 받은 것을 말하면 동승한 여성은 의전비서관실 직원 2명이다. 의전비서관실 행정관 한 명이 다른 수석실로 가는 인사가 예정돼 있었고, 의전비서관실에 새로 와있는 직원이 있어서 김종천 비서관이 환송식과 환영회를 겸해서 회식을 한 것이다. 두 명의 여직원은 평창동 관사에 살고, 김 비서관의 집은 정릉이어서 회식이 끝난 뒤 대리를 불러 정릉 가는 길에 평창동 관사에 (여직원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동승시켰다. 동승한 여성이 누군지 하는 억측이 시중에 돌고 있다고 해서 설명한다.

식사 장소도 많이 궁금해 하는데 (경복궁 근처 한정식집) '연정'이다. 여러 분도 잘 아는 거기서 1차 회식을 했고, 김종천 비서관 차량은 '연정'에 주차해놓고 2차를 갔다가 (2차가 끝나고) 대리를 불렀다. '연정' 앞에서 대리기사를 만나기로 했는데 식당에서 (김 비서관과 대리기사가) 조우가 안돼 본인이 100미터 가까이 운전해서 나간 것이다.

그리고 김 비서관이 사용한 차량은 의전비서관실 고정 차량이다. 수석급은 차량이 제공되지만 비서관급은 차량 제공이 안된다. 다만 업무의 특성상 고정차량 제공되는 경우가 있다. 춘추관장, 의전비서관, 국정상황실장 등은 (고정)차량을 이용한다."


이 관계자는 공직기강실 조사와 관련해 "본인이 인정했기 때문에 조사가 끝났을 것이다"라며 "이 사건과 별개로 청와대 비서관의 사표가 수리되고 면직되는 것에는 추가 조사가 있다, 추가 조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 비서관은 현재) 의전비서관실에서는 해촉된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묘한 반전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에서 재계·노동계 대표들에게 발언하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에서 재계·노동계 대표들에게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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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그렇게 마무리함으로써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사건'은 경찰 쪽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권혁기 관장이 오후 4시 42분 '17시 대변인 백브리핑 춘추관 1층'이라는 문자를 출입기자 카톡방에 올렸다. 이어 오후 5시 2분께 김종천 비서관 음주운전과 관련해 김의겸 대변인이 백브리핑에 나섰다. 여기에서 '묘한 반전'이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김종천 의전비서관을 의원면직이 아닌 직권면직을 했습니다. 오전에 사표를 수리했다고 발표했는데, '사표를 수리했다, 의원면직했다'라고 하는 것은 사전적인 즉각적인 조처인 것이고, 직권면직이 정식 조처입니다. 또 차량에 동승한 2명에 대해서도 경찰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징계 절차 착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 '대통령이 직접 음주운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준수해야 할 청와대 직원이 어겼다는 점에서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의원면직과 직권면직은 차이가 있습니다. 별정직 공무원 인사 규정에 따른 것인데, 의원면직은 징계 기록이 남지 않으나 직권면직은 징계 기록이 남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종천 비서관을 '직권면직'했다는 발표였다. 특히 이날 오전에 고민정 부대변인이 "대통령이 즉각 사표 수시를 지시했다"라고 발표한 것은 '사전적인 조처'이고, '직권면직'이 문 대통령의 정식조처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사표수리 지시는 사전적 조처이고, 직권면직은 정식조처라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일신상의 사유로 사표를 제출하고 그것을 수리하는 게 의원면직이고, 직권면직은 징계할 사유가 발생했을 경우 면직심사위를 구성해서 면직시키는 것이다"라며 "이미 그(직권면직) 절차에 들어갔고 대통령이 결국 직권면직을 하겠다는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대변인의 설명대로 의원면직(사표 수리)과 직권면직은 큰 차이가 있다. 본인이 원해서 사표를 제출하고 퇴직하는 것이 의원면직이고, 임용권자(인사권자)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의 신분(공무원)을 박탈하는 것이 직권면직이다. 일반 기업에 빗대자면 의원면직은 '퇴직', 직권면직은 '해고'에 해당한다.

이날 김 대변인의 백브리핑은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저를 불러서 좀 전에 전달한 대통령 말씀을 발표하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전체 비서관 워크숍에 참석 중인 대변인을 불러 '직권면직'을 언론에 발표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사건은 문 대통령에게 다급하고 중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어떤 경우든... 청와대 참모들, 대통령 보좌에 문제 있어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사건과 관련해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의 방침은 '사표수리', 즉 '의원면직'이었다. 고민정 부대변인도 분명하게 "비서실장이 티타임 때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이 즉각 사표수리를 지시했다"라고 전했다. 즉 임종석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과 티타임을 할 때 김 비서관의 음주운전 적발과 사표 제출을 보고했고, 이를 보고받은 문 대통령이 '즉각 사표수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것까지만 보자면 김종천 비서관은 오전까지 '의원면직' 상태였다. 하지만 오후에는 문 대통령의 방침이 크게 달라졌다. 김의겸 대변인은 오후 백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김 비서관을 직권면직했다"라고 발표했다. 김 비서관의 신분이 오후에 갑자기 '의원면직'에서 '직권면직' 상태로 추락한 셈이다. '사전적 조처'니 '공식조처'니 하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이는 5시간 30분만(오전 11시 30분~오후 5시)에 일어난 일이다. 민감한 사건을 두고 대통령의 방침이 이렇게 바뀌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히 국정운영에서 그런 일이 없을수록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청와대 공직기강 해이와 직결되는 사안을 두고 대통령의 조처가 의원면직에서 직권면직으로 바뀌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하나는 문 대통령이 여론 악화를 헤아려 사표수리에서 직권면직으로 조처를 높였을 경우다. 다른 하나는 문 대통령이 오전에도 직권면직을 지시했는데, 임종석 비서실장 등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이 이를 잘못 해석하거나 축소해 언론에 사표수리로 발표했을 경우다.

전자라면 문 대통령은 여론 눈치를 보는 대통령으로 비칠 것이고, 후자라면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청와대 참모들의 대통령 보좌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청와대의 진짜 '심기일전'이 필요한 때다.

태그:#김종천, #의전비서관 음주운전사건,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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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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