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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거쳐 2019년 새해까지 맞이했지만 마냥 설레지만은 않다. 특별할 줄로만 알았던 이십대 후반의 크리스마스와 송년회, 그리고 신년회도 사실 별것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십 년 전쯤의 나는 가끔 이십대 후반의 나를 상상하곤 했다. 미래의 나는 많은 사람들을 모아 아주 즐겁고 휘황찬란한 신년 파티를 열고, 고급스러운 장소에서 와인을 한 잔 들고 풍미를 느끼며 새해를 맞이할 줄 알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그러나 이십대 후반인 지금, 별로 이룬 게 없다. 딱 굶어죽지 않고, 돈을 모아 이따금 조그마한 여유를 누릴 수준의 월급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다. 너무 비싼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통장 사정이 그리 여의치 않다.

그래도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고자 하는 마음에 1월 1일 신년회를 해볼까 하고 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휴일에도 직장에 나가야 한단다. 또 다른 친구는 전날 마감을 위해 야근을 해야 한다고.

그리하여 나는 1월 1일 연휴, 다음날의 출근을 생각하며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밀린 이불 빨래를 한 번하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뽀송한 이불을 덮고서 텔레비전과 함께 집에 푹 늘어진 채 '치맥'으로 새해 첫날을 마무리했다. 이른바 '소확행'을 누린 것이다.

이런 풍경이 어쩐지 울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족스러운 양가 감정이 들었다. 지난해에 이어 계속해서 주목받고 있는 유행어인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일상 속에서 작지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자는 라이프스타일을 담고 있는 단어다.

나 역시 소확행을 누리며 만족하지만, 한 편으론 씁쓸하다. 내게는 소확행이 정말 '최선'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 아니라, 지금 나의 현실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이 단어가 만들어진 유래를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소확행이란 단어는 1986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시기에 일본은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에 탐닉하는 것에 몰두하며 많은 정신적 가치들이 전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볼 때, 소확행은 물질적 가치 탐닉의 대안으로, 소소할지라도 정신적인 '행복'의 가치를 우선시하자는 의미로 등장한 이야기다.

소확행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청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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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의 소확행은 선택의 영역이 아닌 듯하다. 수많은 갈래의, 수많은 크기의 행복 중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식으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10년 전 5~6%였던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2.8%를 기록했고, 올해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매번 최악을 기록하고 있고, 20대 근로자 중 3분의 1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등 일자리 질 문제도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서울 1인 청년가구 3명 중 1명은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을 정도로 주거 빈곤 문제도 여전하다. 현실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해결은 저 편으로 미뤄둔 채, 소소한 일상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인 것 같다.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마음 편히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고... 이 많은 인생의 선택지들이 지금의 청년들에게 선택할 수 없는 사치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작은 행복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주, 나는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보고 싶었던 영화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소확행을 누렸다. 주말에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치를 감상하는 여유를 누리고 싶지만, 집과 떨어진 동네의 예쁜 카페를 찾아 독서를 하는 것으로 소확행을 누렸다.

이마저도 전 직장에선 누릴 수 없었던 소확행이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발전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며 흐뭇해하기엔 현실이 어쩐지 씁쓸하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바란다. 소확행'밖에' 추구할 수 없는 것이 젊은 날의 행복의 전부가 되지 않기를. 우리 사회가, 높은 수준의 '워라밸'이 갖춰진 사회, 누구든 쉽게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소확행이 무수한 선택지 중 일부가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태그:#소확행, #에코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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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끝자락에서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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