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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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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재판 받는 사람들이 아닌 시민들 앞에 섰다.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대표 여태훈)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이다.
 
문 판사는 "왜 책을 많이 읽었느냐"에 대해서부터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 '무지', '무경험', '무소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문 판사는 "서울에 대학을 가니까 사투리가 부끄러웠다. 버스번호를 물어봐야 하는데, 사투리 때문에 부끄러워 묻지 못해 다른 방향으로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투리는 안 쓰면 되지만, 무지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경험보다 귀중한 자산은 없다"고 한 그는 사법시험 합격 뒤 군대 때 법무관이 아닌 정훈장교를 지내면서 겪었던 좌절감, 그리고 1986년 사법시험 치고 나서 구로공단 '진흥전자'에서 한 달 반 동안 나사를 조이는 일을 했던 경험을 털어 놓으며 경험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과거 자신이 했던 판결을 사례로 든 그는 "판사라는 직업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권한이 많다고 하지만, 판사 치고 그것이 권한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유죄인지 무죄인지, 집으로 보내야 할지 교도소로 보내야 할지 헷갈리는 사건들이 많다. 그런데 사건은 대부분 옛날에 누군가 했던 일이 되풀이 되는 게 많다. 책을 읽다보면 판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재판 장면을 문학 속에 배치한 작가는?
 
문형배 판사는 소설 <레 미제라블>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부활>, <베니스의 상인>을 사례로 들며 '문학 속 재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재판 장면을 문학 속에 배치한 작가로는 토스토예프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은 죄로 기소되었고, 자수했다는 점과 다른 정상이 참작되어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 형법(2010년 4월 개정 전)은 강도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살인 또는 무기징역형에 처하게 되어 있고, 자수하여 형을 감경할 때는 무기징역형일 경우 7년 이상 선고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결국 대한민국에서 재판을 받았더라도 징역 8년 선고가 가능하였는데, 소설을 읽어 본 독자로서 징역 8년이 적정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토스토예프스키의 양형 감각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죄를 지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은 증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긴가 민가 할 때는 풀어주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오래도록 터득한 법치다"며 "누구는 저런 사람을 풀어주느랴고 하지만, 본인이 당사자가 되면 그런 말을 못할 것이다. 법은 원래 그렇게 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문명사회가 지금까지 만든 이치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이야기도 했다. 문 판사는 "인류가 오랜 경험을 해보니,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다. 어떤 분이 아침에 경찰관이 와서 경찰서로 가자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조리있게 말을 못한다"고 했다.
 
이어 "자기가 판단의 주체가 될 때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은 보완해 주는 제도가 변호인이다. 문제가 많지만 권리로서 있어야 한다. 사선이 안 되면 국선을 붙여 주어야 한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변호사 선입했다고 해서 지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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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살자살 10번을 외치게 하니 살자로 들려"
 
문 판사는 "김훈의 <흑산>에 나오는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를 읽고 나면 가난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판사는 10년 전 자신이 처리했던 한 사건을 떠올렸다.
 
"20대 청년이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 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도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재판 당일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하자 피고인은 그냥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했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 하면서,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했고, 그 책(시집) 중의 한 쪽을 읽어주었다. 그 때 읽어준 시가 알프레드 디 수자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또 있다.
 
"제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이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10번 외치게 했다.
 
'자살자살자살 … 이렇게 10번을 외치면 본인은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은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라고 피고인에게 말을 한 다음 책을 선물했는데, 그 책이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였다."

 
문형배 판사는 "저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 생각한다"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고 했다.
 
이어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모두 모습이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고 덧붙였다.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견해는? 

문형배 판사는 법과 관련한 여러 현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형제도에 대해, 그는 "사형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70%라고 한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렇게 해야만 끔직한 범죄를 줄일 수 있고, 피해자의 한이 풀린다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한을 풀기 위해, 보복하기 위해 사형해야 한다는 것은 문명사회가 채택한 게 아니다. 복수 금지 차원에서 사법제도가 있는 것이다"고 했다.
 
"재범 방지 효과와 일반 사람들의 범죄 예방 효과를 언급한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사형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재범을 막을 수 있다. 종신형이 있다. 무기징역은 나중에 풀어 줄 수도 있지만, 종신형을 하면 된다. 종신형은 사형제와 차이가 하나다. 사형은 하루만 하면 되지만 종신형은 죽을 때까지 밥을 먹여 주는 것이다.
 
사형제가 다른 사람에 대해 효과가 있느냐. 세계에서 사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중국과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은 세계에서 재범률이 가장 높다. 사형을 하면 범죄가 억제된다는 것이 증명된 바가 없다.
 
핀란드에서는 몇 해 전에 한 사람이 20명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 사람은 21년형을 받았다. 21년형이 그 나라의 최고형이다. 핀란드의 재범률은 미국보다 훨씬 낮다. 사형제가 있어 재범이 준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다.
 
EU와 우리나라가 FTA 양해각서를 맺었을 때, 유럽 국민에게 사형 집행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EU에 들어가려면 사형제가 없어야 한다. 터키가 오래 전부터 EU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사형제와 이슬람이 장애다. 사형제의 폐지는 문명국가의 증표다. 선진국 가운데 사형을 시행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

 
문 판사는 "우리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다. 김영삼정권 이후 단 한 명도 집행한 적이 없다"며 "저 보고 사형 폐지 찬성론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 판사는 "재판도 문학을 차용하자는 것이다, 판사가 많은 경험을 해야 하나 여러 제한이 있다. 문학은 보편적인 진실 추구한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거짓말은 아니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한다"며 "재판은 있을 법한 이야기는 필요 없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또 "사법부가 위기지만 탈출 방법은 있다. 재판 잘 하면 된다"라며 "억울한 사람이 없으면 되고, 벌을 줄 사람한테는 벌을 주면 된다. 아무리 여론이 높아도 벌 줄 사람은 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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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엄하게 처벌을 받으면 피해자의 감정이 풀릴까"
 
질문이 쏟아졌다. "선처를 해주었는데 다시 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문 판사는 "풀어주었는데 석 달이 안돼서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주운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음주운전은 교수님이나 무지랭이나 변명과 핑계가 똑같다"고 했다.
 
'살인자 인권'에 대한 물음도 있었다. 문 판사는 "피해자 인권이 더 중요하다"며 "우선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용서를 구하게 하자는 것이다,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가해자가 느끼게 해주자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가해자가 사형되었다고 해서 피해자가 과연 위로를 받는 것이냐. 그렇게 하는 것이 피해자 인권이 보호되는 것이냐.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가해자가 엄하게 처벌을 받으면 피해자의 감정이 풀리는 게 있을 수 있다.
 
빅토르 위고가 살인자 조사를 해보니, 심리 상태가 정상적일 때 살인은 없다는 것이다. 과도한 흥분이나, 술을 먹어 분별력이 없거나, 가난해서 분간할 수 없을 때 살인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왜 맨 정신에 사람을 죽이느냐. 사형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과연 누가 하느냐의 차이다. 사형은 정당시 하면서 살인은 범죄시 하는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고, 평생토록 용서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용서도 구하지 않고 죽여 버리면 그것이 과연 반성하는 것일까."

 
"돈 많은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더 엄격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문 판사는 "제가 사회지도층 범죄사건의 양형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사회지도층 범죄가 왜 가볍게 처벌되느냐. 그것을 연구한 사람이 분석해 놓을 것을 보니, 판사도 사회지도층이기에, 사회지도층 행위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재소자들을 편견 없이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문 판사는 법관들도 교도소 경험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파출소에 2시간 있다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경험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교도소에 가보면 바로 누워 자지도 못한다. 화장실도 실내에 있고 하루 운동 시간도 정해져 있으며, 식사도 거칠다. 교도소 1년 있으면 팍 늙는다.
 
미국은 사법제도가 성공한 국가가 아니다. 형이 높다고 해서 범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대체로 사법 제도의 선진국은 유럽이다, 선진국은 형이 높다 낮다는 것으로 접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재범하지 않을 것인가로 접근한다.
 
독일은 판사가 될 때 구치소에 하루 자고 오도록 한다. 대단히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판사들이 가끔 구치소에서 하루 자고 오는 프로그램이 있다. 모든 판사가 단 하루라도 교도소 경험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경험을 능가하는 힘은 없다."

태그:#문형배, #서울고등법원, #진주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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