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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전, 서강대학교 바오로관에서는 ‘로힝야 피해생존자 보호와 학살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로힝야 사태 2주기를 맞아 피해 생존자들의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미얀마를 떠나 19년간 무국적자로 살아온 로힝야인권네트워크 대표 야스민 울라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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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비록 우리가 난민이 돼 19년간 박해받으면서 극한의 가난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 덕에 저만큼은 군에 강간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때의 판단이 아버지로서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미얀마를 떠나와 너무 기쁘다고."

미얀마를 떠나 19년간 무국적자로 살아온 로힝야인권네트워크 대표 야스민 울라(25). 과거에 대해 묻자 대답 대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사실 참 힘든 기억이다. 미얀마를 떠나고 19년 동안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다"며 "무국적자들은, 그중에 나 같은 로힝야족(미얀마 내 소수민족) 사람들은 집단 학살이 자행됐던 조국을 떠나도 보호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지난 23일 오전 9시 서강대학교 바오로관에서는 로힝야와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모임 주관으로 '로힝야 피해생존자 보호와 학살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로힝야 사태 2주기를 맞아 피해 생존자들의 인권 문제 해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로힝야 사태'란 2017년 8월 25일,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 소탕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 일이다. 잇따른 미얀마 정부의 탄압에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항전을 선포하고 경찰 초소를 공격하자, 이들을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반격에 나선 것. 이날 9000여 명의 로힝야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살아남은 로힝야족 여성 대다수는 집단 강간을 당했다.

미얀마는 로힝야족을 19세기 후반 영국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에서 넘어 온 불법 이민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과 갈등이 이어져 왔다.

컨퍼런스에 토론자로 참석한 야스민 울라 대표는 '로힝야를 비롯한 미얀마 내 소수민족 여성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발언했다. <오마이뉴스>는 야스민 울라 대표를 만나 로힝야족이 처한 상황과 난민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물었다. 아래는 그가 간담회에서 한 발언과 인터뷰를 종합한 내용이다.

"언제 추방 당할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
 
 23일 오전, 서강대학교 바오로관에서는 ‘로힝야 피해생존자 보호와 학살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로힝야 사태 2주기를 맞아 피해 생존자들의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로힝야인권네트워크 야스민 울라 대표는 "로힝야를 비롯한 미얀마 내 소수민족 여성의 목소리"는 주제로 발언했다.
ⓒ 로힝야와 연대하는 시민사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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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년간 무국적자로 살아왔다고?
"그렇다. 나는 로힝야족이다. 그래서 미얀마에서 태어났음에도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1995년에는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곳에서 2011년까지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다.  2012년에 운이 닿아서 캐나다로 이주할 수 있었고, 그때 첫 시민권을 얻었다. 19년 만에 한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미얀마 정부는 1982년 새로운 시민권 법을 통과시키면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을 자국 내 소수종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방글라데시 출신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며 시민권을 박탈했다. 이후 대안으로 나온 게 '국가확인증'(National Verification Card, NVC)이다.

미얀마 정부는 NVC가 시민권의 대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힝야 인권단체들은 "이는 로힝야족을 정식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현재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에 정식 시민권을 요구하고 있다.

- 피난을 떠난 건 언제인가?
"내가 정말 어릴 적의 일이다. 잘 걷지도 못하는 날 엄마가 안고서 피난길에 오르셨다.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아온 가족사를 끊어내고 싶으셨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가족사와 관련해서는 대표적으로 우리 할머니 얘기를 할 수 있겠다.

1942년에 할머니는 남동생 하나만 남기고 가족을 모두 잃었다. 미얀마군에 의해 가족이 모두 살해 당한 거다. 이후 할머니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셨다. 그곳이 제가 태어난 고향인데, 할머니는 그 이후로 한동안 가난에 허덕이셔야 했다. 단 한 번도 구제받지 못하셨다.

이런 것들을 포함해 집단 학살까지 목격하신 엄마는 더 이상 미얀마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1995년도에 태국으로 가는 피난 배에 올라타셨다. 물론 피난길도 고난이었다. 엄마가 탔던 것은 남성 군인들로 가득 찬 배였는데, 여기서 갖은 폭력을 당했다고 하셨다. 그래도 이 순간을 참으면 새로운 곳으로 가서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견디셨다고 했다."
          
- 미얀마에 이어 태국에서도 무국적자로 살아왔다. 그간의 삶은 어땠나?
"미얀마에서의 개인적인 기억은 거의 없다. 너무 어렸을 적 일이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는 매 순간이 차별이었다. 태국은 이민자에 닫혀 있는 나라다. 사회 전반에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만연해 있다. 그래서 태국으로 떠나온 이후에도 항상 숨어다녀야 했고, 경찰이 있는 곳이면 늘 도망 다녀야 했다. 언제 추방 당할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해오면서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태어난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난 누구인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이 땅에서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기회조차 없었다."

"강간이 지속되는 이유는 정부도 방관하고 있기 때문"

- 19년간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인가?
"사람들의 편견이다. 난민은 게으르며, 정부 보조금으로만 먹고 산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가족만 해도 태국으로 옮겨온 이후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일했다. 부모님을 하루에 한 시간밖에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나라는 사람의 필요성과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늘 나는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당했다.

내 경험을 비롯해 할머니와 엄마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을 수 있다. 내가 태어난 곳 미얀마에서 자행된 '비인간화' 작업에 의해 발생된 피해라는 거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인종 탄압은 우리를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미얀마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우리의 과거는 내 가족 모두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 미얀마에 남아 있는 로힝야족 여성들의 상황은 어떤가?
"아직도 집단 강간이 이뤄지고 있다. 적게는 8살 아이부터 시작해, 전 연령의 여성들이 강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강간을 일종의 군사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성들의 가치를 하락시키면서 장기적인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동체의 가치를 크게 손상시키면서 위협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로힝야족 여성들은 군부의 피해자인 동시에, 공동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여성의 가치를 정조에 두고 있는 사회문화적 기조 때문이다. 여성들은 서로 연대하지 못한 채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더 극대화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양희 UN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미얀마 내의 집단 강간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UN에 보고된 사례 가운데에는 자신의 아이 앞에서 강간 피해를 당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호셍 미얀마 샨족 여성운동네트워크 활동가는 "제가 만났던 군 관계자로부터 일부 고위직 사령관들이 강간한 사실을 자랑삼아 말한다는 것을 들었다"며 "강간이 지속되는 이유는 군인들뿐만 아니라 정부도 이를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정부에 소수민족 박해에 대한 책임 물어야"
 
 23일 오전, 서강대학교 바오로관에서는 ‘로힝야 피해생존자 보호와 학살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로힝야 사태 2주기를 맞아 피해 생존자들의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로힝야 피해생존자 보호와 학살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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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의 '로힝야 사태' 후, UN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미얀마 정부 측에 관련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현재까지도 미얀마 내 로힝야족은 의료권이나 교육권, 어느 하나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통행에도 제약이 따른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은 농업과 어업뿐인데, 어업을 할 때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여성들은 출산도 제재받는다. 2명 이상의 아이를 낳을 경우 이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이곳의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 방글라데시에도 약 9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있다. 이들의 처우는 어떤가.
"너무 심각하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난민 캠프 내의 여성들은 제대로 씻을 수 없다. 샤워실로 된 공간이 남녀공용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제대로 된 집도 없다. 대나무로 엮거나 플라스틱을 기워 만든 집이 전부다. 이건 임시 초소일 뿐이다. 그들은 진흙 같은 땅바닥 위에서 잠을 잔다. 집 안에서는 조리도 불가능하다. 환기가 안 될 뿐더러, 플라스틱 소재로 된 집의 경우 화재의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2017년 8월 25일의 로힝야 사태 이후,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난 간 약 80만 명의 로힝야족은 집단 난민이 됐다. 현재 방글라데시 내 로힝야 난민은 8월 15일 기준 91만 2852명(공식집계)에 달한다.

- 이런 상황에도 불구, 22일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 난민들은 미얀마로의 송환을 거부했다.
"그렇다. 과연 누가 부모와 가족이 죽은 땅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그럼에도 이들을 돌려보내려면,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된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미얀마 내 로힝야족은 가난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고, 여성들은 집단 강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로힝야족이 주장하는 정식 시민권도 추진된 바가 없다.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은 상태서 로힝야족 난민들만 돌려보내겠다는 건 무책임한 판단이다."

-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먼저 로힝야족 생존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 22일의 송환은 당사자인 로힝야족이 배제된 채 내려진 결정이었다. 생존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송환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 정부에 앞서 자행한 학살을 포함해 소수민족 박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의 탄압에 공모했던 기업들도 책임의식을 갖고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 일부 기업들은 미얀마 군부 사업체에 투자를 하고 있다. 군부는 여기서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로힝야족을 탄압하는 데 사용한다. 이런 경제적 연결고리가 끊어져야 집단 학살, 집단 강간이 중단될 수 있다. 부디 이익만 생각하고서 진행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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