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 강추위 속에 유엔군들이 장진호 전투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후퇴하고 있다(1950. 12. 10.). |
ⓒ NARA | 관련사진보기 |
장진호 전투
미 제1해병사단은 서부전선의 미 제8군과 연결한 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 전쟁을 끝내겠다는 작전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1950년 11월 27일에는 유담리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여기서 복병 중국군을 만나 퇴로가 차단되면서 괴멸될 위기에 놓였다. 미 제1해병사단 창설 후 가장 치욕적인 패배요, 작전상 오류였다.
하늘마저 그들 편은 아니었다. 미 해병대는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에 험악한 지형으로 악전고투하면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전차, 야포들도 혹한의 추위에서는 고철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미 제1해병사단 스미스 소장은 미 해병 역사상 그와 같은 치욕은 없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상대를 얕잡아본 데다가 날씨도, 지형도 고려치 않고 무모하게 협곡을 거슬러 올라간 결과였다.
이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전혀 고려치 않은 군사작전의 기본을 소홀히 한 오만이었다. 결국 그들은 12월 6일부터 철수작전에 돌입해 훗날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을 돌파했다. 이로써 그해 12월 25일에야 장진호 및 흥남철수 작전이 종료됐다.
이번 회는 그 무렵의 NARA 소장 한국전쟁 사진으로 엮었다.
큰사진보기
|
▲ 중국군 참전으로 북진한 유엔군들이 혹한 속에 후퇴하고 있다(1950. 12. 9.). |
ⓒ NARA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대구, 훈련소에서 갓 나온 신병들이 전방으로 떠나고자 대구역 광장에 집결하고 있다(1950. 12. 18.). |
ⓒ NARA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전쟁 중이지만 주민들이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1950. 12. 24.). |
ⓒ NARA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흥남철수작전에 동원된 함정들이 흥남 앞바다를 메우고 있다(1950. 12. 24.). |
ⓒ NARA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흥남,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공장지대(1950. 12. 24.). |
ⓒ NARA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해군 수송선이 흥남에서 전차를 실어 부산항에 하역하고 있다(1950. 12. 26.). |
ⓒ NARA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J. W. Helms, Jr. 하사가 찍은 사진 한국인 위문단(1950. 12. 27.). |
ⓒ NARA | 관련사진보기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영복 지음 <6.25전쟁사>를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