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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밀양은 전쟁의 한복판 같았다. 평생을 밀양에 살았던 주민들은 난데없이 자신이 농사를 짓는 구역이 송전탑 부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화롭고 조용하던 마을 밀양은 곧 쑥대밭이 되었다. 어떠한 사람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또 어떤 사람은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이 모든 죽음이 송전탑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송전탑 부지에 잘려나가는 나무를 지키고자 나무를 껴안았다. 평생 시위도, 데모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태반인 마을이지만 언젠가부터 그들은 산 위의 농성장을 출근하듯 올랐다. 농성장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과 철거하고자 하는 경찰들이 매일같이 산에서 나뒹굴었다.

그곳에 사라 할머니가 있었다
 
 밀양 한국전력 공사 건물 앞 경찰들. 2014년 4월 26일 긴급연대 때의 사진
 밀양 한국전력 공사 건물 앞 경찰들. 2014년 4월 26일 긴급연대 때의 사진
ⓒ 신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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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6일, 서울에서 출발한 긴급연대 희망버스가 밀양에 도착했다. 그날은 경찰과의 대치 상황이 금방 끝이 난 날이기도 했다. 밀양에 도착한 연대자들은 시위에 참여하는 대신 주민들의 농사일을 도와주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밀양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농사를 짓는 대신 송전탑 반대 시위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사일에 일손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사라 할머니를 만났다. 80세가 넘는 고령의 사라 할머니는 송전탑 반대 시위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평밭 마을 주민이었다. 세례명을 이름처럼 쓰던 할머니는 말수가 많지 않았고 기풍이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가 매일같이 산에서 경찰과 나뒹구는 상황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사라 할머니 밭에서 잡초를 뽑던 나와 동료들은 곧 사라 할머니의 집에 초대되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시원한 차 한 잔을 내주었고, 우리는 얼마 일하지도 않고 차를 얻어먹는 신세가 된 것에 조금 난감함을 표했다. 그러나 사라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에게 호의적인 미소와 칭찬을 보냈다.
 
 2014년 6월 11일 행정 대집행 당시 밀양 주민들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편지
 2014년 6월 11일 행정 대집행 당시 밀양 주민들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편지
ⓒ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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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주민들이 쇠사슬로 농성장에 몸을 감게 된 것은 긴급연대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행정대집행이 다가오고 불안감이 마을 전체를 휘감았다. 시위를 하고 몸싸움을 하던 할머니들은 이제 '웃통을 벗고 나체로 시위'를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사라 할머니도 있었다. 사다리가 없이는 농성장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 고령인 할머니는 그런데도 많은 시위에 참여했다.

6월 11일이었다. 긴급연대 이후 사라 할머니를 다시 본 것은 뉴스 기사에서였다. 사라 할머니는 작은 뉴스 기사 사진 속에서 경찰들에게 사지가 들려서 끌려나오고 있었다. 사라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쇠사슬에 묶은 수많은 사람들이 절규하며 경찰들에게 끌려 나오고 있었다. 밀양의 많은 할머니들은 사라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나체 상태였고, 대부분 담요에 대충 둘둘 말려 끌려갔다. 연행을 피하기 위해 많은 주민들은 스스로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

결국 농성장은 무너졌다. 행정 대집행 며칠 후 무너진 농성장 뒤에서 경찰들이 V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소식이 '작게' 기사로 보도되었다. 나는 그 모습이 분노스러웠고 치욕스러웠으며, 어렴풋하게 끌려나온 할머니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곳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있었다

추석을 목전에 두고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이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의 요구는 '직접고용'이었다. 농성이 시작된 9일은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근로자와 달리 1심과 2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1047명에 대해선 직접 고용을 할 수 없다"고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농성장은 한국도로공사 본사가 되었다.
  
 한국도로공사 본사 1층에서 수납원 노동자들이 출입문을 밀고 들어오려고 하자 본사 직원들이 문을 막아 대치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본사 1층에서 수납원 노동자들이 출입문을 밀고 들어오려고 하자 본사 직원들이 문을 막아 대치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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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로공사 수납원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본사 2층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수납원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본사 2층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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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농성이 시작된 지 이틀째, 경찰이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했다. 이에 맞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상의를 탈의했다. 한 노동자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경찰과 구사대가 강제로 끌어내려고 하는데 우리는 힘이 없으니 그렇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1977년 2월 25일 동일방직 사측의 노조 파괴 공작에 맞서 싸우기 위해 70여 명의 여성 조합원들이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저항한 사건이 재현되는 듯했다. 1970년대 사건과 비슷하게 한국도로공사의 정규직 직원들이 이번 시위 진압에 함께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상의를 탈의했다.

그러나 사측의 구사대와 경찰들은 상의를 탈의한 조합원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촬영하고 이들을 조롱했다. 이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용기와 이들의 절박함, 그리고 어떠한 여성들이 겪은 역사적 시간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옷을 벗은 일에 치욕스럽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조롱과 불법 촬영에 대해선 "치욕스럽다"라고 표현했다.

그곳에 나와 사라 할머니,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있었다

나는 치욕스럽다는 말에서 사라 할머니와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그 말은 나와 가슴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진 말이기도 했다. 밀양 농성장이 철거된 후 손가락을 V자로 만든 경찰의 이야기, 상의를 탈의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촬영한 구사대와 경찰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치욕스러웠다. 
  
내가 더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고 신문사 인터뷰를 한 후 받은 몇 만개의 악성 댓글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신체를 잔인하게 도려내서 죽이겠다는 댓글, 외모를 품평하는 댓글, 가슴이 작아서 브래지어가 필요 없겠다는 댓글, 한 번도 성희롱 당해본 적 없을 것 같다는 댓글 등을 읽으며 나는 슬프지는 않았지만 치욕스러움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치욕스럽다는 감정은 부끄럽다는 감정과 다른 감정이었다. 치욕스러움은 차라리 분노의 감정과 비슷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여성의 신체는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 감추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시간을 지나 우리가 드디어 치욕스러움을 느낀다면, 마땅히 그 감정들을 원래 느껴야 했던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감정들은 원래 우리의 몸에 씌워진 굴레를 만든 사람의 것이었지 우리들의 몫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 정도까지 나아갔다. 치욕스러움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톨게이트 노동자와 사라 할머니의 싸움에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메시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가슴을 지닌 존재로서 끊임없이 몰 역사화 되고 몸으로만 치환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마침내 옷을 벗어 던져버렸던 용기의 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당신의 투쟁을 응원한다고. 세상은 당신들의 시간으로 한 번 더 바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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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대표이자 기본소득당 서울 창준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