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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임 인물화전 '동그라마' 포스터.
 송정임 인물화전 "동그라마" 포스터.
ⓒ 송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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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소설가인 장정일(57)은 "상대방의 춤을 바라본다는 건 그 사람의 영혼을 지켜보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1990년 쓴 장편소설 <아담이 눈 뜰 때>를 통해서다. 지극히 문학적인 수사.

그렇다면 '상대방의 얼굴을 그린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화가 송정임은 이렇게 말한다. "얼굴은 이야기다. 인간이 생긴 이래로 현재까지의 역사가 집약돼 있는 게 바로 얼굴"이라고. 여기엔 이런 말을 덧붙이면 될 듯하다. 사람의 얼굴을 그린 인물화는 개인의 '작은 역사'인 동시에 '예측된 미래'라고.

송정임은 자기 주변에 늘 존재했기에 관심의 촉수가 뻗치지 못했던 이들의 아름다움을 뒤늦게 발견하곤 인물화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들의 얼굴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 같은 슬픔과 신비한 빛을 찾게 됐다"고 말하는 송 작가.

오는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공간 일리'에서 열릴 송정임 인물화전 '동그라미'에선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 안에 담긴 '우주의 비밀'을 찾고자 했던 작가의 땀 냄새 배인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송정임의 붓끝 아래 형상화된 이들은 대부분 작가의 지인들이다. 그중 아버지의 젊은 날과 딸의 뒤늦은 후회를 추억하는 송정임의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가라기보다 시인에 가까운 글 솜씨다. 아래 옮긴다.

"아버지는 자신과 닮은 딸을 유별나게 사랑했다. 일제에 강제징용 된 할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아버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맏딸이 그림 그리는 걸 무엇보다 좋아했던 아버지. 하지만 딸의 방황은 길었다. 딸이 겨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을 때, 아버지의 시력은 턱없이 나빠졌다. 그림은 고사하고 딸의 얼굴마저 그저 '희미한 동그라미'로밖에 볼 수 없는 아버지. 그제서야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으니…"

이번 전시회에 걸리는 작품들은 화가 송정임에게 '진실된 얼굴'을 보여준 사람들에게 선물될 예정이다. 그림이 주인공을 찾아가는 드물고 귀한 풍경일 것 같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도 딸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모습에 기뻐할 아버지의 환한 웃음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송정임은 몇 해 전 영국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와 런던 몰 갤러리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블루 플라크, 스물세 번의 노크-어느 예술가 부부의 아주 특별한 런던 산책>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태그:#송정임, #인물화전, #공간 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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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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