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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지역문화인력 지원사업의 일환인 '도봉구민청(도봉문화재단) 돋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 기자말
 
수어 통역에 대해 설명중인 차광희 사무국장
 수어 통역에 대해 설명중인 차광희 사무국장
ⓒ 황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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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지 않는 서로의 말을 번역하여 전달하는 전문가'라는 사전적 뜻처럼, 통역사(通譯士)의 존재는 우리에게 그 의미가 남다르다. 소통을 돕는다는 점에서 통역사는 누군가의 다리가 되기도 하고, 동반자나 보호자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대신하기도 한다. 당신의 '마음'을 번역하는 한 통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인터뷰는 지난 9월 30일 도봉구민청에서 진행되었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도봉구수화통역센터에서 사무국장이자 수어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차광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도봉구수화통역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농아인, 농인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을 진행해주는 곳입니다. 농아인 분들의 경우 대화가 어렵기에 일상생활에 다양한 어려움을 갖고 있어요. 주민센터에서 민원 업무를 보거나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등 꼭 필요한 일들을 진행하기 힘들 때가 많죠. 그런 경우 센터와 통역사가 단순한 내용 전달뿐 아니라 농인과 청인의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 그렇군요. 수어통역사는 어떤 직업인가요?
"말 그대로 수어를 통역하는 일인데요,(웃음) 흔히 영어 통역이면 한글을 영어로 바꾸거나 그 반대로 언어를 전달해주는 거잖아요. '전달'하는 게 주목적이죠. 그런데 청각장애인의 경우 단순히 말만 번역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통역은 물론, 그들이 마주하게 된 전체적인 상황과 맥락까지 함께 전달해야 합니다."

- 농인 분들의 마음까지 번역하는 것이 통역사라고 볼 수 있는 거네요. 
"바로 그거죠. 저희는 통역 외에도 보호자, 동반자의 역할도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농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저희의 큰 임무라고 볼 수 있어요.

- 통역사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저는 대학에서 사회복지 전공을 했고요. 이후 첫 직장이 청각장애인 복지관이었어요. 당시에는 전국에 청각장애인 복지관이 딱 하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농인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선 아무리 거리가 멀더라도 하나의 복지관으로 무조건 찾아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6개 정도로 늘어났고, 그 외에도 농아인협회들이 많이 생겨서 정보를 접하는 데 훨씬 용이해졌어요. 복지관에 있을 때도 상담, 직업 알선 등을 수화로 진행했고 업무의 대부분을 수화를 사용했었어요. 그때부터였으니, 통역사 일은 대략 25~6년 정도 한 것 같네요."

"오랜 시간 통역사로 일한 저 또한 여전히 노력 중"
 
수어 통역을 진행하고 있는 차광희 사무국장
 수어 통역을 진행하고 있는 차광희 사무국장
ⓒ 황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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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역사로 살며 생긴 삶의 변화가 있다면?
"저희 직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데, 이젠 '말만 하면'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눈으로 보고, 몸을 움직이는 수화가 익숙해져서 그런지, 단순히 소리만 들어선 가끔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사무실에서도 평소에 회의나 업무를 전부 수화로 하니까, 이해체계 자체도 닮아가더라고요. 한쪽에 집중하면 다른 쪽이 어눌해지는 경향이 생기기도 해요. 수화만 쓰면 구화가 둔해지는 것처럼요. 그래도, 농인 분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직업병이 아닐까요?(웃음)"

-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글쎄요. 전 늘 기쁜 감정과 슬픈 감정이 동시에 함께하는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예전에 제가 새벽에 급한 전화를 받았던 적이 있었어요. 퇴근하고 나서 잠이 들려는 참이었는데, 계속 영상 전화가 오기에 받았어요. 당장 와달라는 식의 전화였는데, 알고 보니 농인 분께 교통사고가 난 거였죠.

제게 전화를 걸었던 분은 청인이고, 직접 보험회사를 전화로 불러서 처리도 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농인 분은 보험을 들었음에도 보험회사를 부를 수가 없었던 거예요. 어떻게 운 좋게 부른다고 해도 그 이후 의사소통이 불가하잖아요. 경찰이 와도 상황은 똑같고요. 그때 제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고, 농인 분 곁에서 답답한 부분을 해결해주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었는데, 만약 제가 그 늦은 밤에 거기에 가지 않았다면, 그분은 밤새 그 현장에서 기다리셔야 했던 거죠.

비슷한 일화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었어요. 한 농인 분이 비장애인 분과 갈등이 있었는데, 주변에 수화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 농인 분은 피해자였음에도 의사소통이 어려워 조사를 받지 못하고 이틀 무렵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도 제가 곁에서 함께하며 상황을 잘 마무리했어요.

이런 경우엔 기쁘면서도 안타깝죠.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기쁘고, 그분들이 혼자 남겨져 힘들어해야만 했다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마음이 아파요."

- 농인 분들에 대해 우리가 흔히 가지는 편견이 있다면?
"청각장애를 '가장 괜찮을 것 같은 장애'로 꼽는 분들이 많아요. 만약 장애를 가져야 한다면, 청각장애가 그래도 좀 낫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장애를 쉽게 여길 수 없는 것은 신체의 기능적인 어려움보다 사회적인 소외, 소통의 어려움 때문이에요.

소리의 단절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 내에서 아버지가 후천적인 청각장애인이 될 경우, 가족 간 대화나 회의를 할 때도 아버지가 아닌, 청인인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먼저 회의를 하고 결과는 아버지께 통보하는 식으로 바뀌는거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그렇게 되는데, 사회나 국가에서는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부분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아직 막막합니다. 서로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소통이 필요해요. 오랜 시간 통역사로 일한 저 또한 여전히 노력 중이니까요."

"이해하는 마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
 
차광희 수어통역사
 차광희 수어통역사
ⓒ 황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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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장님은 이런 일(수어통역사)을 하게 될 거라고 혹시 예상하셨었나요?
"제가 학교 다닐 무렵엔, 애초에 수화에 대한 것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장애인 등록도 88올림픽이 생기면서부터였고, 그즈음부터 인식이 개선되었는데, 그전까지는 농인이나 수화에 대한 것들이 일상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TV에서 수화통역이 지원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었거든요.

저는 무언가에 영향을 받아서 통역사가 된 것이 아니고, 농인 분들과 함께하게 될 거라고 한 번도 예상해 본 적은 없어요. 어떤 삶을 선택할 때 굳이 계기가 필요하진 않아요. 내가 좋아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내 길이고 인생이 되는 거라 생각해요."
     
- 우연히 농아인 분들을 만난다면,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까요?
"청각장애인들을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늘 그렇듯이요. 하지만 농인 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같은 나라의 문화를 가졌기에 동일한 정서를 느끼고 있어요.

꼭 수화를 잘하지 않더라도, 예를 들어 외국 유명 스타들이 한국에 와서 한마디라도 한국어로 이야기해주면 반갑잖아요. 그런 것처럼 농인 분들을 위해 수화로 간단한 인사라도 하나 알고 있으면, 농아인 입장에서는 정말 반갑고 기뻐요. 그런 작은 노력이 첫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이해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 거예요.

저도 처음부터 농인 분들과 함께했던 게 아니에요. 농인 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수화를 배우고,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그동안 어딘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농아인 분들이 제 삶에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기하죠.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는데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전과 후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거예요."

- 끝으로 기사를 읽는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청각장애인과는 기본적으로 '바라보아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세상의 어떤 누구와 만나도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에요. 외면하지 않고 상대방을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농인 분들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수화를 모르는 것도 사실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에요. 이런 부분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우리가 모두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주세요. 저도 언제나 노력할게요." 

서로를 편견 없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더 나아가서는 함께 웃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차광희 수어통역사가 25년간 포기하지 않았던 꿈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돋보기 프로젝트 인터뷰 기사 1편 산악구조대 기사(http://omn.kr/1kqiq)와 이어지는 2편 기사입니다.


태그:#도봉구민청, #도봉문화재단, #도봉구, #도봉구수화통역센터, #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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