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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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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타케 신스케의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라는 그림책이 있다. 책에서는 온갖 별을 조사하고 다니는 우주비행사가 세 개의 눈으로 앞뒤를 동시에 보는 사람들의 별에 간다. 이 별에는 지구에서처럼, 태어날 때부터 모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지구에서는 당연하지만 그 별에서는 특별한, 두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만나면서 우주비행사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하얀색을 좋아하는 사람과 까만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고,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다르다. 그런데 좋아하는 색이 다른 것은 대체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차이인 반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보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비교 대상이 된다.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주류를 기본값으로 상정해 두고 그와 다른 사람들을 '다르다'고 한다.

범주화는 일상의 사고와 업무를 돕고, 배려가 필요한 집단이 은폐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편견과 낙인, 차별의 출발이 된다. 굳이 다른 이름을 붙이면서 일반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한부모/다문화/조손/재혼/입양가정… 과 같은 호칭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녀가 처음 결혼해 출산으로 자녀를 얻고 부부 모두 가정을 떠나지 않은 상태를 '일반적인' 가정으로 여기는 데서 등장한 단어다. 부부가 동갑이라거나 자녀가 쌍둥이라는 특성처럼 부모 중 한쪽이 없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였대도 구태여 '한부모가정'이라는 명칭이 필요했을까.

'한글' 문서 프로그램에서 남교수라고 타이핑했을 때와 달리 여교수라는 말에는 맞춤법 오류를 확인하라는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는 것도, 사전에 기혼모라는 단어가 없지만 미혼모라는 단어는 나오는 것도, 은둔형외톨이의 반대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한글' 문서 프로그램에서 남교수라고 타이핑했을 때와 달리 여교수라는 말에는 맞춤법 오류를 확인하라는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는다.
 "한글" 문서 프로그램에서 남교수라고 타이핑했을 때와 달리 여교수라는 말에는 맞춤법 오류를 확인하라는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는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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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기준'이 없는 세상

그림책 속 주인공은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고, 그리고 모든 사람은 원래 조금씩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다수의, 혹은 강자의 특징이 당연한 게 아니라,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당연하다. 주류집단에 속했을 때는 당연했던 자신의 특성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고 오히려 희귀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화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또 좋아하는 색깔이 제각기 다른 것과 같은 의미에서 서로 다른 것으로 표현한다.

타인과 나는 어떤 점에서는 같지만, 어떤 점에서는 다르다.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다른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주류가 되고, 또 다른 면에서는 소수자가 된다.

지구인, 눈이 세 개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 몸이 흐물흐물한 사람, 하늘을 나는 사람. 이 넷이 모여 있는 장면에서, 한 명은 연어알이 우주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고, 몇몇은 아직 이불에 쉬를 하고, 또 다른 몇몇은 베개 없이는 못 잔다고 한다. 그리고 넷 모두 배고프면 짜증이 나고, 엄마가 꼭 안아주면 좋단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네 명보다 훨씬 많은 70억 이상이고, 나이대도 훨씬 다양하지 않은가. 사람은 한두 개의 범주만으로 설명하고 구분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특성이 교차하고, 무수히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다르다'라는 말이, '안 보이는 사람' 같은, 단 하나의 특징으로 규정되는 집단을 의미할 수 없는 이유다.
 
 책 본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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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다른 사람의 특징이나 생각을 알게 됐을 때 이렇게 외친다.

"우아!"

저 사람이 나와 같은 '당연한' 특성을 지녔는가, 나는 끼지 못하는 주류집단에 속한 사람은 아닌가, 내가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가 따위의 생각으로 타인을 향해 경계를 긋고 우열을 따지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떨까. 참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는 즐거운 일일 것이다.

화자는 몸의 특징과 겉모습을 '탈것'에 비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꽤 편리한 탈것을 타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한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다른 탈것에 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탈것만으로 그를 어떤 범주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타고 있는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알아가는 기쁨을 의미하는 말, "우아!"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내가, 그리고 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인권연대 웹진 <우리시대>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이희수님은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요시타케 신스케 (지은이), 고향옥 (옮긴이), 이토 아사, 토토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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