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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째 매일 아침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청주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롱패딩에 장갑, 모자, 손난로까지 중무장했지만 몸과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입니다.

'청주시는 15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백제유물전시관 학예사의 고용을 책임지고 보장하라'

청주시 '부당해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성. '정규직인줄 알고 15년 동안 일했는데 이제 와서 짤리고 보니 비정규직이었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습니다.

지난 2월 4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청주방송 고 이재학PD를 떠올리며 자신도 이 PD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라며 비정규직 현실에 분노합니다. 15년간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서 근무했던 한영희 학예사의 속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 기자 말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한영희 학예사는 1월 2일부터 현재까지 청주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한영희 학예사는 1월 2일부터 현재까지 청주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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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문득 도로에 뛰어들고 싶어요. 많은 것을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나 봐요. 아무래도 이번 생은 거리에서 마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영희 학예사는 50일째 청주시와 '도돌이표'를 이어가고 있다. 청주시는 청주문화원과 백제유물전시관 위·수탁계약기간이 끝났으니 한 학예사도 자동 해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 학예사는 자신은 청주배제유물전시관 학예사이지 문화원 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학예사는 1월 2일부터 현재까지 청주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오전 7시 40분부터 1시간 동안 한범덕 청주시장과 여러 '높으신 분'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가끔 인사를 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한영희씨는 투명인간이다.

"저도 제가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처음 한 일주일 동안은 정말 창피하고, 분하고, 속상하고, 울고 싶고, 수만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당해지자, 숨지 말자, 내 잘못이 아니다 수많은 다짐을 하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8시 45분. 시청 직원들의 출근이 마무리되면 한영희 학예사는 곧바로 백제유물전시관으로 이동해 출근투쟁을 이어간다. 2월 18일까지 자진 퇴거하라는 2차 퇴거명령까지 받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갑자기 열쇠를 바꾸고 인터넷 선을 끊었어요. 두 달 전까지 만해도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 격려해주시는 분이 많아 괜찮다며 애써 웃어 보이지만 공허하고 허탈한 눈빛만은 속이지 못한다.

비정규직의 운명은 그때부터였을까?

중학교 3학년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어머니 혼자 아이 넷을 키우기는 버거웠고 막내인 한영희씨는 인문계보다는 실업계(특성화)고를 선택할 기로에 놓인다. 우여곡절 끝에 인문계고와 대학에 진학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여행을 간다, 어학연수를 간다, 친구들이 들 떠 있을 시간에 한씨는 아르바이트 위해 옷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대학교 2학년 휴학을 하고 옷가게에서 일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학교에 다녔다. 비정규직의 운명은 그때부터였을까?

대학은 졸업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그녀 앞에 닥친 것은 IMF구제금융위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다', '죽겠다' 호소했고 주변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친구는 손에 꼽혔다. 막 대학을 졸업한 한씨도 마찬가지. 비정규직 학예사 자리에 감지덕지했다.

비록 비정규직·기간제 학예사였지만 대전 향토사료관에서 처음 접한 학예업무는 재밌고 보람 있었다. 그야말로 박물관의 꽃인 학예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청주백제유물전시관의 학예사 채용공고. 그것은 그녀에게 희망이 된다. 눈이 번쩍 띄었다.

"공공기관인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고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이었어요. 이제는 나도 진짜 학예사로 활동할 수 있겠구나 정말 기분이 좋았죠."

몇날며칠 가슴이 설레었고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박물관, 시민에게 사랑받는 박물관으로 만들어보리라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유방암과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어머니 치료비와 생활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짐'도 청주백제유물전시관이 있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어머니 병원과 전시관을 오가며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중간 중간 스카웃 제의도 있었지만 병든 어머니와 함께 옮겨야 하기에 이직은 쉽지 않았다.

제2, 제3의 이재학이 없기를

15년이 꼬박 흘렀다. 서른 살에 전시관에 들어와 어느덧 사십대 중반이 됐다. 그 사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청주백제유물전시관 위탁기관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청주문화원으로, 또다시 청주문화원에서 청주시로 바뀌었다. 소속은 바뀌었지만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주시로부터 월급을 받았고, 청주시 공무원들의 업무지시를 받았다.

"전 단 한 번도 백제유물전시관이 문화원 소속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문화원이 전시관을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그런데 이제 와서 청주시는 제가 문화원 직원이니 나가라고 합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공무원으로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업무의 연속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입니다."

한때는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청주를 떠날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19일 열린 청주방송 고 이재학PD 진상규명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한영희 학예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19일 열린 청주방송 고 이재학PD 진상규명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한영희 학예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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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까지 자책과 후회만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난 19일에는 청주방송 앞에서는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14년 동안 일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 이재학PD 진상규명을 위한 결의대회가 있었다.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 기꺼이 참여했다.

"저는 고 이재학 PD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함께 하겠다고 응원해줬더라면 과연 그가 세상을 등졌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나같이 살 것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이제 저는 저의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고 이재학PD를 위해서도 함께 할 것입니다."

2월 18일이 2차 퇴거명령 기한이니 조만한 3차, 그 이후엔 강제로 끌려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학예사 또한 예상하고 있다. 물론 두렵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중무장'을 하고 청주시청 앞으로 향한다. 제2, 제3의 이재학이 없기를 소망하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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