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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의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편집자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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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 진료를 하다 보니 반 농담으로 관상을 좀 볼 줄 알게 되었다. '이 환자는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특히 중년 여성들 가운데 이런 느낌이 드는 환자들이 많다.

한 오십대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섰다. 일단 걸음걸이에 힘이 하나도 없고 느릿느릿하다. 어깨는 축 처졌고, 얼굴은 짜증과 피로로 일그러져 있다. 그 여성은 몇 달 전부터 왼쪽 어깨가 너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밤이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최근에는 잠도 잘 못 잔다고 한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서, 옷을 입고 벗기조차 쉽지 않았다. 중년 여성들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동결견, 소위 '오십견'이었다.

그런데 난 환자의 어깨를 진찰하는 동안 그의 반응에 더 신경을 썼다. 그는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안도감과 그가 겪었던 고통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 것 같았다. 나는 환자에게 말했다. "그동안 참 많이 아프셨겠어요." 그는 갑자기 눈물을 울컥 쏟으며 흐느꼈다. 그리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 아프다는데 아무도..." 난 그의 가정사를 더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간절하게 이해와 공감을 원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잠 못 드는 여성들

많은 중년 여성이 만성 통증뿐만 아니라 불면증에도 시달리고 있다. 2014년 <한국 여성의 우울증과 만성 통증에 대한 심층분석>에 따르면, 60세 이상 여성의 만성 통증 유병률은 87.7%로, 남성 유병률 63.8%보다 훨씬 높았다. 불면증 역시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2015년 기준으로 불면증 진료를 받은 여성은 남성의 1.6배였다. 그리고 만성 통증과 불면증은 악순환의 고리를 이룬다.

불면증 치료에서 중요한 점은, 우울증 같은 다른 질병이 원인인지 살피는 것이다. 우울증과 만성 통증, 불면증 모두를 앓고 있는 중년 여성들도 흔하다. 그들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부터 다르다.

언젠가 바로 그런 여성을 만났다. 진료 기록을 살펴보니, 수년째 진통제와 수면제를 번갈아 타러 오고 있었다. 내 목적은 그 환자가 우울증과 불면증 치료를 위해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의사의 말 중 하나가 '다른 병원에 가라'는 것이다.

나는 먼저 환자를 위로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의사의 그 한 마디는 환자의 말문을 터지게 했다. 그 중년 여성은 함께 사는 시부모, 술과 폭언을 일삼는 남편,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자녀들 이야기를 줄줄 털어놓았다. 처음 보는 의사에게 말이다.

특히 남편에 대한 원망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아 사무치는 외로움에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잠들기 위해 한 잔씩 시작한 술이 이제는 끊을 수 없는 중독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 환자는 진료실에서 30분 가까이 신세 한탄을 했다.

난 애초 진료 목적도 잊은 채, 그의 말을 차마 끊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 환자의 상태는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을 때만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감정노동을 그녀에게만 맡겨두고 있을 그 가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면증' 성 및 연령별 진료인원 추이 (2011년 기준)
 "불면증" 성 및 연령별 진료인원 추이 (2011년 기준)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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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존재, 엄마들

'동네의사와 기본소득'에 등장했던 '엄마들'이 떠오른다. 아침 9시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은 아이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출근했던 엄마들, 자기 '죽음 이후' 혼자 남게 될 뇌성마비 장애인 아들을 걱정하던 60대 여성 그리고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어버린 엄마까지.

그러고 보니 아이를 병원에 데려오는 부모는 십중팔구 '엄마들'이다. 이것은 내 경험을 넘어,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한국 남성의 가사분담률은 16.5%였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 남성의 1일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45분으로 OECD 평균(138분)의 3분의 1이 채 안 되며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가 가장 활발한 덴마크(186분)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해당 통계를 낸 26개국 가운데 남성이 1시간도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반면 한국 여성은 남성의 5배가 넘는 227분을 매일 가사노동에 쏟고 있다. 하물며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감정노동은 말해서 무엇할까? 이 문제 역시 한두 가지 해법만으로 풀기 힘들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엄마들은 가족을 돌보는 일을 줄여야 한다.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을 가족 특히 아버지들과 나누어야 한다. 그 조건은 무엇일까? 

"몇 푼 번다고 이따위 일을 하는 거야?"

지금은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도 다른 엄마들처럼 전업주부였다. 그런데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집에서 부업을 시작하셨다.

라디오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한 가지를 조립하는 일이었다. 먼저 밥상 위에 재료를 수북이 쏟아놓는다. 왼손으로 검지 손톱만 한 플라스틱 본체를 잡고, 오른손에 쥔 핀셋으로 저항 하나를 잡아 끼워 넣는다. 그다음 저항에서 나온 전선을 본체의 다리에 돌려 감고는, 핀셋으로 비틀어 나머지를 잘라냈다. 어머니 손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2~3초면 하나가 완성되었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는 하루에 수천 개의 라디오 부속을 조립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께서 그 '부속' 일을 무척 싫어하셨다는 것이다. 잘린 전선 조각이 집 안 구석구석으로 튀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저녁 준비 전에 안방을 구석구석 쓸었다. 하지만 이불이나 베개, 옷에 전선 조각이 박혀 따가웠다. 밥을 먹다가 입에서 뱉어내기도 했다.

"돈 몇 푼 번다고 이따위 일을 하는 거야? 당장 때려치우지 못해!"

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은 것도 밥에서 전선이 나온 어느 저녁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몇 년을 꿋꿋하게 버티며 '부업'을 계속했다. 일하는 동안 어머니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지만, 결코 슬프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무엇인가 보상이 있는 유일한 노동이어서 그랬을까.

번듯한 월급

우리는 모두에게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은 한 개인이 먹고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 그럼 의문이 들 수 있다. 모두가 충분한 소득을 받는다면 도대체 누가 일하려고 하겠는가? 일하지 않는 20%의 개미처럼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분명 생길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운동은 반론도 갖추고 있다. 노동을 포기하거나 배제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전업주부들은 아무런 소득이 없으며 철저하게 다른 가족 특히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참고로 한국은 2014년 기준 '외벌이'가 46.5%로 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 아이가 크고 여유가 생겨 일자리를 알아보아도 '돈 몇 푼 안 주는' 시간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가사노동과 돈벌이를 병행하기에는 부담과 희생이 너무 크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받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본소득은 가구주가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주어진다. 비록 시간제 일자리일지라도 기본소득과 합하면 '번듯한 월급'을 만들 수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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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본소득당 공동위원장 (전)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한국 최초 에볼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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