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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의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편집자말]
만성통증, 불면증... 한국 중년여성이 아픈 이유(http://omn.kr/1n7vi)에서 이어집니다.

필자의 어머니가 경험한 '부업'과 그로 인한 갈등은 이미 수십 년 전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엄마들'에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엄마들'은 그들에게 허용된 일자리가 주는 '돈 몇 푼' 때문에, 여전히 가사와 노동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여성은 취직을 아예 포기하거나, 비정규직 또는 시간제 일자리에 내몰린다.

2018년 통계청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 지표'를 보자. 2017년 기준으로 비혼일 때 남녀 고용률 차이는 1.6%포인트이지만, 배우자가 있는 경우는 남자 81.9%, 여자 53.4%로 그 차이가 28.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이렇게 커다란 고용률 차이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아버지'의 고용률은 자녀가 어릴수록 높지만, '엄마'의 고용률은 자녀가 어릴수록 낮다. 자녀가 13~17세면 엄마의 고용률은 69.2%지만, 6세 이하일 때는 46.4%에 불과하다.
  
 
 자녀 연령별 부모의 고용률(일 가정 양립지표, 2018)
 자녀 연령별 부모의 고용률(일 가정 양립지표, 2018)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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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와 일이라는 이중고를 기꺼이 짊어진 엄마들에게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 임금의 63.3%, 즉 2/3에도 못 미친다. 남녀 임금 격차 36.7%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크고, OECD 평균인 14.1%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엄마들'에게 현실은 더 가혹하다.

2019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발표에 따르면 비혼 남성과 비혼 여성의 임금 격차는 13.4%였지만, 배우자가 있는 남녀의 임금 격차는 41.5%에 달한다. 이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15∼19세(4.8%), 20∼24세(7.0%), 25∼29세(10.1%)는 작았지만, 30∼34세(19.4%), 35∼39세(28.1%), 40∼44세(34.9%), 45∼49세(38.5%), 50∼54세(45.7%), 55∼59세(48.6%)로 30대부터 급격히 커졌다. 그러니까 50대 엄마들의 임금은 남편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게다가 2017년 기준으로 남성 노동자는 정규직 비율이 73.6%지만, 여성 노동자는 58.9%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갈 때 많은 '엄마'는 취직을 포기한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 일을 하려고 하면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일자리밖에 갈 곳이 없게 된다.

'번듯한 월급'은 여성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해줄까
   
 장진희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연령별 남녀 임금 격차
 장진희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연령별 남녀 임금 격차
ⓒ 장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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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기보다 전업주부를 선택한 여성들에게, 기본소득은 '일하겠다'라는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다. 기본소득으로 육아나 가사, 돌봄서비스를 좀 더 적극적으로 구매할 수도 있고, 여유를 가지고 취업 준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취업에 뛰어든 여성들을 기다리는 것이 '저임금 비정규 불안정 노동'인 현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출발점에 서 있다. 기본소득과 합쳐 '번듯한 월급'을 벌게 된 여성들은 가사노동, 돌봄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팔꿈치가 아파서 병원을 방문하는 여성들을 자주 만난다. 다친 적도 없는데 팔꿈치가 '공연히' 아픈 이 병이 유명한 '테니스 엘보'다. 물론 대부분은 테니스 구경도 못 해본 사람들이다. 테니스 엘보 역시 여성들에게 더 흔한데, 가사노동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잘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꿈치뿐만 아니라 손목이나 어깨, 손가락이 함께 아프다고 호소하는 여성 환자도 많다. 필자는 환자들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꼭 묻는다. 예전에는 "집에서 놀아요"라는 답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식당에서 일해요", "마트에서 일해요"라고 답하는 여성들이 늘었다.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그들의 팔꿈치는 쉴 틈이 없으니, 병이 안 날 턱이 없다. 그들에게 필자는 쓸모없는 권고를 해야 한다. "팔을 많이 써서 생긴 병입니다. 그러니 집안일도 좀 쉬거나 줄이셔야 해요." 여성 환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에이,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남성인 의사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한 중년여성이 손가락에 피를 흘리면서 진료실에 들어섰다. 식당에서 일하다가 부엌칼에 베였다고 한다. 봉합이 필요할 정도로 상처는 꽤 깊었다. 이런 경우 손가락을 움직였다가는 봉합한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봉합한 다음 손가락에 부목을 대고 붕대로 칭칭 감아주었다. 그러자 환자가 물었다. "아니, 꼭 이렇게 거창하게 해야 하나요?" 필자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그 중년여성의 걱정이 태산이다.

"아니 그래도 집안일은 해야 하는데..."
"이럴 때라도 남편보고 좀 해달라고 하세요."


그러자 그 환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필자를 쳐다본다.

"집에서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집안일을..."

노동시간을 줄여 일과 가사노동을 나누자
 

멀리 돌아왔지만, 우리는 이미 직관적으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많은 여성에게 일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부담을 줄 뿐이라는 현실 말이다.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준다고 가정해 보자. 여성들은 '바깥일'을 지금보다 더 많이 하면서 '집안일'도 똑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기본소득운동은 기본소득이 결코 단순히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본소득운동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세상을 바꾸는' 운동과 연결되어야, 제대로 된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일과 가사노동 이중부담' 문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여성은 '가정'이라는 닫힌 방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으로 갇힌 방에서 저임금 시간제 노동만 떠맡게 해서도 안 된다. 이 딜레마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그 조건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악명 높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볼 부분이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남녀취업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남자가 43.9시간, 여자가 38.5시간이었다. 그런데 맞벌이 가구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남자는 46.3시간, 여자는 40.3시간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엄마들'보다 6시간이 더 길다. 이는 물론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정규직 일자리에 많이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 그것이 딜레마를 푸는 첫 번째 조건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8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우리나라에서, 실질적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의 대대적 단축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 열쇠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남성의 노동시간은 여성보다 더 크게 줄어든다. 주로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던 정규직 일자리가 여성들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아버지들'이 더는 '바깥일'을 핑계로 집안일을 미룰 수 없다. 물론 조건이 바뀌었다고 남성과 여성이 저절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공평히 분담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완전히 다른 조건 위에서 일과 가사의 공평한 분담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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