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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의 청렴성과 강직성을 상징하는 일화로 널리 알려진 정붕의 글
 공직자의 청렴성과 강직성을 상징하는 일화로 널리 알려진 정붕의 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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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新堂) 정붕(鄭鵬)은 퇴계 이황(1501-1570)보다 반 세기가량 앞서 활동한 유학자이다. 그는 세조 13년(1467)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중종 7년(1512) 세상을 떠났다. 타계한 해 그는 46세였는데, 연산군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난 후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정붕은 청송 부사 관사에서 순직했다. 그런데 아들이 아직 어리고 집이 너무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경비가 없었다. 사정을 잘 아는 경상 감사 방태화(方太和)가 영남 지역의 여러 수령(군수나 현감 등)들과 상의하여 장사를 치렀다. 풍기 군수 임제광(林霽光)은 직접 묘갈명을 쓴 비석을 배에 실어 낙동강 물길로 선산까지 운송했다.

방태화는 정붕과 동방급제(同榜及第)한 사이였다. 동방급제란 같은 날 과거에 합격하였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정붕은 출세가 늦은 편이었다. 하지만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조선 시대 과거 합격자의 평균 연령이 36세라는 사실에 견줘볼 때, 정붕은 25세에, 그것도 장원으로 급제했다.

25세 장원급제 정붕, 본래 관직에 뜻이 없었다

정붕은 본래 벼슬에 뜻이 없었다. 그가 과거에 응시한 것은 이조 참판으로 있던 작은아버지 정석견(鄭錫堅)의 강권 때문이었다. 정석견은 어린 조카 정붕을 "우리 가문의 옥수(玉樹)"가 될 아이라며 서울로 데려가 공부시켰다.
 
 신당 정붕이 길재, 김종직, 자신의 제자 박영, 장현광과 더불어 제향되고 있는 경북 구미 금오서원
 신당 정붕이 길재, 김종직, 자신의 제자 박영, 장현광과 더불어 제향되고 있는 경북 구미 금오서원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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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붕은 과거에 장원급제하는 등 집안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성격이 강직한 그는 홍문관 교리로 있던 중 연산군에게 사냥을 그만 다니라고 직언하다가 곤장 40대를 맞고 경북 영덕으로 귀양보내졌다.

정붕이 당한 고충은 본인이 겪은 곤장과 유배만이 아니었다. 사화와 관련하여 작은아버지 정석견은 파직되었고, 스승 김굉필(金宏弼)은 죽임까지 당했다. 성균관에서 같이 공부했던 벗 이목(李穆)도 처형되었고, 또 다른 벗 조광림(趙廣臨)의 사촌 조광조(趙光祖)마저 참형에 처해졌다.

그런 일을 겪으며 정붕은 더욱 관직에 마음을 잃었다. 중종반정 이후 여러 벼슬이 내려졌지만 그는 줄곧 사양했다. 이에, 정붕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친하기도 했던 영의정 성희안(成希顔)이 중종에게 "내직(중앙정부 벼슬)이 아니라 외직을 주심이 합당할 것입니다."라고 천거했고, 그도 더 이상 임금의 명을 거절할 수 없어 청송 부사로 부임했다.

영의정도 사소한 부탁도 거절한 청렴성
    
행정을 잘 보살펴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던 차에 영의정 성희안이 보낸 서신이 정붕에게 당도했다. "청송의 명산품인 잣(柏子)과 벌꿀(淸蜜)을 구해 줄 수 있겠는가?"라는 내용이었다. 성희안이 정붕에게 그와 같은 부탁을 한 것은 그 본인이 부패한 고관이라서가 아니라 정붕과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정붕은 "잣은 높은 산마루에 있고(柏在高岺頂上) 꿀은 민간 벌통 속에 있으니(蜜在民間蜂桶中) 태수가 어떻게 얻을 수가 있으리오( 爲太守者何由得之)?" 라고 답신을 보냈다. 태수가 잣과 꿀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는데도 정붕은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영의정의 부탁을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했다. 

정붕의 언행은 평범한 세속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붕은 이 일로 조선 시대의 청렴과 강직한 관료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높은 명망을 얻었다. '잣과 꿀' 이야기는 현대에도 <한문 교과서>에 두루 수록되어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안상도
 안상도
ⓒ 해주정씨신당공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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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붕이 조선 시대의 명사(名士)가 되는 데에는 이황도 한몫을 했다. 정붕이 그렇게 숭앙받는 인물이 된 것은 물론 본인이 남긴 업적 덕분이지만, 이황의 평가가 크게 이바지를 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황은 제자들에게 "신당 선생의 안상도(案上圖)를 보라"고 했다.

안상도는 책상 위에 얹어놓은 문자도(文字圖)라는 뜻이다. 정붕은 평소 연구해온 도학(道學)을 실제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도표로 만들었다. 그는 그 도표를 책상 위에 둔 채 스스로를 갈고닦는 잠계도(箴戒圖)로 삼았다. 이황은 배운 학문을 실생활에 실천하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준거로 정붕의 사례를 천거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붕 본인이 안상도에 대해 해설한 도설(圖說)은 남아 있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운봉 등지로 피란을 갔던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구미시 선산읍 서쪽 고개에서 도적을 만나 선조 정붕의 문집을 모두 빼앗기고 삼 형제 중 한 명은 살해까지 당했다. 그 이후 이 고개는 정붕의 후손들이 울며 넘었다고 해서 '울 고개'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후손들은 혼사가 있을 때 이 고개를 넘지 않았다.

해설이 없어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안상도
    
안상도를 연구한 전공 학자들의 논문들로 구성된 <신당 정붕의 안상도와 도학>이 최근 출간됐다. 책에는 영남대 이완재 명예교수의 '신당 정붕 선생의 안상도와 도학', 영남대 홍우흠 명예교수의 '신당 정붕의 한시 소고'와 '한훤당이 정신당에게 전수한 도통', 경북대 이구의 교수의 '신당 정붕, 삶과 그의 시에 나타난 자아의식', 강원대 차장섭 교수의 '신당 정붕의 생애와 정치·사상적 역할', 계명대 권상우 교수의 '신당 정붕 도학의 형성과 전개' 등 논문 6편이 수록되었다.  

이완재 교수는 "신당 선생은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 이래 이 나라의 도학의 정맥(正脈)을 이어 오신 분이다. 퇴계 선생께서도 '선생의 학문적인 조예의 정심(精深)함은 후학들이 안상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先生學問所造之精 後學當觀於案上圖矣)'라고 안상도의 정치(精緻)함을 높이 상찬하셨다"면서 "안상도는 뿌리 깊은 도학에 연원하고, 거기에 선생의 탁월한 도학적 천품이 융합되어 이룩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신당 정붕의 안상도와 도학> 표지
 <신당 정붕의 안상도와 도학> 표지
ⓒ 정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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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붕 <안상도>의 "사람의 바람직한 아홉 가지 몸가짐(九容)과 사고방식(九思)"

구용(九容) : 용(容)은 모습 또는 태도를 뜻하는 글자로, 구용은 사람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아홉 가지 태도를 말한다. 이완재 교수는 안상도의 도표를 풀어서 그 원문과 뜻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족용중(足容重) : 발모습은 무거워야 한다. 왜냐하면 발은 전신을 지탱하는 것이다. 발놀림이 진중하지 못하면 전신 의 행동이 경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걸음걸이부터 천천히 진중하게 걸어야 한다.
수용공(手容恭) : 손 모습은 공손해야 한다. 옛 선비에 있어서 손의 역할은 읍양(揖讓)을 주도하는 주체였다. 읍양을 공손하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전 인격이 좌 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손모습은 공손해야 하는 것이다.
목용단(目容端) : 눈 모습은 단정하게 바로 보아야 한다. 곁눈질을 하는 것은 사특한 마음의 표시이오, 눈을 부릅뜨 거나 치켜뜨는 것은 분노나 경악의 표시이오, 아 래로 내리 까는 것은 공포나 굴복의 표시이다. 그 러므로 단정한 눈길은 바로 보아야 한다.
구용지(口容止) : 입모습은 그쳐야 한다. 입은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할 때 필요한 것이다. 그 이외에는 입을 닫고 조 용히 있어야 한다. 지(止)자는 필요한 말 이외에 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요하지 않은 말 은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성용정(聲容靜) : 소리의 모습은 조용해야 한다. 조용한 목소리는 안정된 마음에서 나오고, 동시에 상대의 마음을 또 한 안정되게 한다. 나와 상대가 안정된 상태에서 원만한 대화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두용직(頭容直) : 머리의 모습은 곧아야 한다. 사람의 머리는 인체 를 총괄하는 부분으로서 위로 하늘을 지향하는 것 이다. 그러므로 머리는 곧게 가져야 한다. 머리를 옆으로 기우는 것은 의문의 상징이오, 앞으로 떨구 는 것은 기상을 잃은 상징이오, 뒤로 제키는 것은 거만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머리는 곧게 바르게 가 져야 한다.
기용숙(氣容肅) : 기의 모습은 조용해야 한다. 여기의 기(氣)자는 기식(氣息)의 기로서 숨을 뜻하고 숙(肅)자는 조용 함을 뜻한다. 즉 숨을 조용히 쉬어야 한다는 뜻이 다. 숨은 마음상태와 상호작용을 가진다. 마음이 안 정되면 숨이 고르고 조용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 하면 숨도 고르지 못하다. 숨을 조용히 쉬라는 것은 마음을 안정하라는 뜻을 내포했다고 봐야 할 것이 다.
입용덕(立容德) : 선 모습은 덕(德)스러워야 한다. 선 모습이 너무 뻗뻗하면 불손(不遜)해 보일 수 있다. 공자의 선 모 습을 경절(磬折)이라 표현하는데 약간 숙인 듯 등이 두둑하여 덕이 충만한 듯한 모습이다.
색용장(色容莊) : 얼굴모습은 씩씩하고 생기가 있어야 한다. 색(色) 은 안색(顔色)으로 얼굴 모습을 뜻하고, 장(莊)은 씩씩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다.
 
구사(九思)의 원문과 뜻을 적어 보면 아래와 같다.
 
시사명(視思明) : 보는 데 있어서는 분명하게 보기를 생각하고
청사총(聽思聰) : 듣는 데 있어서는 똑똑하게 듣기를 생각하고
색사온(色思溫) : 표정은 온화하게 가지기를 생각하고
모사공(貌思恭) : 태도는 공손하게 가지기를 생각하고
언사충(言思忠) : 말은 충직하게 하기를 생각하고
사사경(事思敬) : 일은 공경스럽게 하기를 생각하고
의사문(疑思問) : 의문이 있을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
분사난(忿思難) : 분이 날 때는 뒷 끝이 어려울 것을 생각하고
견득사의(見得思義) : 이득이 있을 때는 의리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완재, 홍우흠, 이구의, 차장섭, 권상우 공저, <신당 정붕의 안상도와 도학>, 2020년 4월 25일, 도서출판 국토,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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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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