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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한국도자재단(대표 최연)은 '도자교육체험이 각 대상자에게 미치는 영향성 분석 연구'를 펴냈다.
 지난 2월 한국도자재단(대표 최연)은 "도자교육체험이 각 대상자에게 미치는 영향성 분석 연구"를 펴냈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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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무렵이었다. 산골마을에 살던 나는 흙돌담 아래서 친구와 소꿉놀이를 했다. 흙에 물을 섞어서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흙덩이를 만들고 그것을 반죽하여 그릇과 흙빵과 흙떡을 만들었다.

쑥, 제비꽃, 냉이꽃 등 풀과 꽃, 작은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모아 놀이를 했다. 옷에 흙물과 풀물, 꽃물이 든 채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엄마한테 혼이 났지만 다음 날에도 흙소꿉놀이를 했다. 흙소꿉놀이는 정말 재미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어느 날부터였다. 흙소꿉놀이를 하지 않았다. 찰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이 성적으로 연결됐는데 낮은 점수를 받으면서 만들기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세월은 흘러 지난 3월이었다. 도자기 제작 과정, 그러니까 성형-건조-초벌구이-유약바르기-재벌구이-소성(가마에 굽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 과정인 수비(그릇을 만드는 흙 따위를 물속에 넣고 휘저어 잡물을 없앰)를 못했는데 이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요즘은 대부분 수비된 흙을 사용한다. 이제야 밝히지만 몇 년 간 도예인을 취재를 해왔고 도자 제작의 부분 과정을 체험해본 적은 있지만 이처럼 도자기 제작 일련의 과정에 참여는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이 길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봤다. 흙을 빚는 동안 오직 그것에 몰입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나의 일상이 영화 속 낯선 타인의 삶처럼 바뀌고 그 생활이 이어지면서 생긴 스트레스가 맑아진 하늘로 날아간 듯 했다. 기물이 뜨거운 가마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기다림 속 설렘, 내가 만든 기물을 만졌을 때의 환희는 체험해봐야 안다.

오래전 깨닫지 못한 이 묘한 느낌의 정체가 궁금했다. 흙을 매체로 한 체험활동, 흙놀이가 진정 사람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 즈음이었다. <도자교육체험이 각 대상자에게 미치는 영향성 분석 연구>를 읽었다. '도자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성 검증'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지난 2월 한국도자재단(대표 최연)이 펴냈다.

최근 점토(흙)를 활용한 도자교육이 특수 계층에게 미치는 교육 및 치료효과가 부각되면서 그에 이어 다양한 연령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문 도자교육프로그램이 요구됨에 따라 책은 연구 대상자를 아동, 성인, 노인, 장애인 이렇게 4그룹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룹의 발달 특징에 맞는 도자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한 과정과 효과 및 검증 결과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연구팀이 고찰한 여러 편의 도예활동과 미술치료에 관련된 선행 연구결과도 눈길을 멈추게 한다.
 
'도예 중심 집단미술치료 프로그램은 점토가 갖는 치료적 효과가 참여자들의 정서적인 이완을 돕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여 대인관계 증진에 효과적임. 점토를 다루는 활동을 통해 에너지의 생성과 발산을 도모해 활력성 증진에 효과가 있음.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도예기법의 생소한 방법을 접하며 호기심을 증가시킴. - 5쪽, 장희정(2010)의 <도예작업 중심 집단미술치료가 저소득 청소년의 자아탄력성에 미치는 효과> 중에서
 
이 연구 과정에서 도예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도예전문가와 교육프로그램 전문가, 아동·노인 미술심리치료사, 상담심리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투입됐다고 한다. 이 시도는 늦은감이 있지만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한국도자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 연구를 시작으로 향후 의사와 아티스트 등 다채로운 분야의 전문가와 결합도 모색할 것이라고 하니 그 역시 기쁘다. 도자기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에도 이전의 도자교육은 도예전공자나 도예인, 취미도예를 위한 성형 및 조형작업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도자와 다양한 영역의 융·복합이 이루어지면 도예·도자산업은 물론 여러 분야에 새로운 활로가 펼쳐지리라 기대된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도자교육 프로그램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도자교육 프로그램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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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대상자 그룹별 효과성 검증을 위한 통계분석, 각 대상자 그룹에게 매회기 마다 진행한 성찰일지와 관찰일지, 세부프로그램 운영내용도 수록돼 있다. 대상자 그룹 가운데 아동그룹은 초등학교 4~6학년 49명, 성인은 초·중·고 학부모 8명(평균연령 43세), 노인은 복지관을 이용하는 독거노인 8명(평균연령 79.5세), 장애인은 성인 발달장애인 8명(평균연령 32.6세)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의 수업 분위기, 그들이 나눈 대화 등을 읽다보면 그 속에 투사된 나를 만나기도 한다. 자녀와 엄마, 할머니, 장애인의 마음을 관찰자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고학년 여자아이들만 모여 있는 그룹은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는 등 다소 산만한 느낌이다. 하지만 흙으로 땅을 만들고 트리를 만든 후 함께 선물 상자로 장식하는 등 재미있게 꾸미고 있다. 강사 입장에서는 어수선하게 보이는 이 풍경이 아이들에게는 경직되지 않고 가장 자유로운 작업 분위기이다. - 234쪽     

☀어르신: 매일 목요일을 기다렸어요. 도자기를 만들면서 우리들 문제도 바꿔가는 것 같았어요.
♥어르신: 항상 똑같은 손으로 만들었는데 똑같이 생긴 도자기는 없었어요.
♡어르신: 여기 화분에 물을 담아두면 썩잖아요. 그런데 계속 새 물을 채우면 물이 흘러넘치면서 물이 정화되듯이 도자기를 하면서 내 마음은 그런 느낌이었어.
☘어르신: 아무 생각없이 시작했는데 벌써 끝났네. 여기에 나를 끼워줘서 행복했어.
♠어르신: 형님이 계셔서 우리가 더 행복했어요. - 277쪽
 
도자교육의 효과성 검증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대상자들은 전반적으로 프로그램 실시 전과 후의 수치 차이가 유의했다. 하지만 아동그룹은 매회 마다 주어진 과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능력과 자신감, 주의집중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은 스트레스가 감소되고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미적 감각과 인내, 절제를 배우고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는 소감이 많았다. 노인의 경우 4그룹 중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프로그램 만족도 평균 5점(5점 만점)으로 도자교육의 긍정적인 효과성도 매우 높게 나타났다.

장애인은 발달장애인 특성으로 인해 효과성 검증에 다소 한계가 있었지만 강사의 인터뷰 및 행동관찰일지, 만다라그림 사전 사후를 분석한 결과 감정표현, 정서적 안정감, 주의집중력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짧은 기간에 걸쳐 진행됐고 첫 시도인만큼 현장에서 느낀 여러 과제를 제언한다. 대상별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한 도자교육 프로그램 효과성 확인, 도자·도예 프로그램 전문 강사 양성 및 지역 유휴 공간을 활용한 도예활동 장려, 다양한 대상 및 기관 맞춤형 도예 프로그램 개발, 과정중심의 도자교육 설계 등.

여기에 나는 흙놀이를 제안한다. 어릴 적, 옷이야 젖든 말든 흙탕물에서 맨발로 신나게 뛰어 놀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흙반죽으로 무엇이든 즐겁게 만들면서 친구 얼굴에 진흙을 펴 바르던(머드팩 놀이) 흙놀이. 아울러 평범한 시민이 전통방식의 도예체험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행복하겠다.

도예활동을 지역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과 연계하면 새로운 지역문화도 만들어질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도예전공자, 도자교육에 전문적인 교수 학습이 필요한 도예인, 도예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친구, 가까운 지인, 마을사람 등이 소그룹으로 모여 흙을 빚으며 흙이 건네는 따스하고 명랑한 수다를 나누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태그:#한국도자재단, #흙놀이, # 도자교육체험이 각 대상자에게 미치는 영향, #도예치료, #전통도예놀이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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