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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와 기본소득'은 지난 6월 7일 연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6월 11일에는 MBC <100분 토론> '기본소득 시대 과연 열릴까?'가 방송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4편을 추가로 올립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6월 11일 MBC <100분 토론>을 시청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재임 시절 공과와 달리, 지금도 많은 시민이 그를 지지하고 기억한다. 왜일까? 그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정의로운 나라'라는 열정과 상상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주민중항쟁이나 세월호의 진실을 끈질기게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할 때만, 다음 시대를 위한 우리의 상상력은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다.

코로나 시대, 한 아빠의 하루
 
 
 초등학교 1∼3학년의 3차 온라인 개학일인 4월 20일 오전 전북 전주 시내 한 가정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이 태블릿 PC로 수업을 듣고 있다.
 초등학교 1∼3학년의 3차 온라인 개학일인 4월 20일 오전 전북 전주 시내 한 가정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이 태블릿 PC로 수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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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는 자주 늦잠을 잔다. 날이 점점 더워지니까, 일찍 잠들지 못한다. 좀 더 자라고 지켜보다가, 오전 8시에는 깨운다. 눈곱도 떼지 않은 아이는, 간밤에 꾼 꿈이나 어제 한 게임 이야기를 조잘거린다. 무엇이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어린이의 능력은 참 놀랍다. 그리고 아침을 함께 먹는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아이는 옆에서 만화책을 들여다보며 킥킥댄다.

8시 50분이 되면,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공부방 문을 살며시 열어보면, 이미 컴퓨터를 켜놓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스스로 온라인 수업을 들은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 간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아빠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을 싫어한다. 체육수업 때나 과제물을 게시판에 올릴 때만, 아빠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빠와 함께하는 체조나 구르기를 하면서, 아이는 깔깔대며 즐거워한다. 필자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수업을 듣는 동안,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부터는 아이와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필자는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영어 회화를 배웠는데, 그 과정이 참 즐거웠다. 그래서 아이에게 직접 영어 회화를 가르쳐 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요즘처럼 아이와 사이가 좋았던 적도 없었으니, 좋은 기회였다. 아이는 내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한다. 필자도 화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최대한 웃는 얼굴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아이는 영어를 입 밖에 내길 어려워했다. 필자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해보라고 시켰다. 아이의 목소리가 더 기어들어 갔다. 그러다가 용기를 냈는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무섭지 않게 말하면 안 돼?"

그럴 때면 아빠라는 사실이 너무 무겁다. 아이는 내 표정의 아주 작은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상처받으며.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 살 자격이 있는가? 아이의 얼굴을 나는 그렇게 사려 깊게 바라본 적이 있을까?

기본소득 받는 삶

요즘 필자는 대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동네의원 원장님들이 휴가를 가면, 필자는 환자를 대신 진료하고 사례를 받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대진의사로 일할 자리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아이와 넉넉히 시간을 보내고, 섬세한 감정도 나누고 있다. 진실로 아이에게 배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그리고 팔자에 없는 글쓰기도 시작했다. 게다가 생계 걱정도 솔직히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사 일당은 무척 세다. 단 몇 번의 대진으로,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 월급만큼 벌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나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이, 이 시대에 몇 명이나 될까?' 그렇다. 필자는 참 팔자 좋은 사람이다. 의사라는 자격 덕분에, 이미 기본소득 받는 삶을 누리고 있었다.

선별복지의 문제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1일 MBC <100분토론 - '기본소득' 시대, 과연 올까?>에 출연해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을 두고 대립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1일 MBC <100분토론 - "기본소득" 시대, 과연 올까?>에 출연해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을 두고 대립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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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토론>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기본소득 구상을 20년 후 '모두에게 매달 50만 원'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황당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해 정부 예산이 500조 원인데, 어떻게 200조 원을 기본소득으로 쓰냐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정부의 예산이나 재정 지출과 무관하다.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물론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하지만 걷힌 세금은 정부의 예산으로 편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 일정액씩 되돌아간다. 정부는 이 과정을 책임지고 보장해 줄 뿐이다. 

오 전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예산을 빼앗아, 국민 모두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상위 10%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세금을 더 내더라도 소득이 늘어난다. 더구나 소득이 늘어나는 정도는, 저소득계층일수록 더 크다.

이날 오 전 시장은 대안으로 '안심소득제'를 들고나왔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가계에 속한 개인에게 부족분을 지원하는 제도다. 어떻게 포장을 하고 변형을 했든, 정체는 '선별 복지'다. 여전히 가난한 사람을 골라 돕자는 것이다. 그는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기본소득 논의가 불붙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의 복지국가 위기의 시대이며, 장기적인 불황 또는 저성장의 시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그 복지국가의 핵심이 바로 선별 복지였다. 오 전 시장은 9년 전 초등학교 무상급식 안도 '황당하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는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하나의 정책이자 제도이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한다. 기본소득은 훨씬 큰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도 아쉬움이 컸다. 그는 '수요와 공급이 경제성장의 두 바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기본소득은 부족한 소비를 채워주고,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경제정책이자 복지정책일 뿐이다. 또 '모두에게 매달 50만 원'은 출발지가 될지언정, 목적지일 수는 없다. 월 50만 원으로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기본소득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우리의 경제는 도대체 언제까지 성장해야 할까? 아니 지구는 인류의 경제성장을 언제까지 허락해 줄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나누어 쓸 수 있는 생산물이 충분히 있는데, 왜 더 성장해야 할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모든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겪고 있다. 전염병 대유행이 몇 년 주기로 되풀이될 것이라는 예상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6년 전 필자가 싸웠던 에볼라 바이러스나 코로나19 바이러스 모두 돌연변이다. 인류가 생태계 그 끝까지 헤집고 다니며 개발하는 통에, 일찍이 만날 수 없었던 바이러스 유전자가 섞일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공존을 꿈꿀 때다. 지금 당장 훨씬 더 많은 아빠가, 아이의 얼굴을 따뜻하고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모두에게 충분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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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본소득당 공동위원장 (전)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한국 최초 에볼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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