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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용 교수의 페이스북 게시글
 전우용 교수의 페이스북 게시글
ⓒ 전우용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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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서울은 깊다> <오늘 역사가 말하다>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이어 왔다. 그러나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학술 활동이 아니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활동이다.

전우용 교수는 특정 정치 세력을 부지런히 대변했다. 그는 지난 2019년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참석해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무결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폴리페서'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나는 자신의 정치적 정념을 주저없이 드러내는 그의 행보를 존중한다. 쉽게 읽히고, 쉽게 들리는 그의 언어는 SNS를 소비하는 이들의 소비 행태와 부합했고, '사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사이다' 발언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오점도 많이 생겼다.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을 때 했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역학 조사관의 인력 부족을 비판하면서 '대구시민들은 자기 도시가 왜 일본과 비슷한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많은 시민의 일상이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그는 특정 지역을 타자화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긴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고에 많은 시민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박 전 서울시장과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전우용 교수는 박 전 시장에 대한 애통함을 표했다. 그는 박 전 시장의 업적들을 열거했다. 부천 경찰서 성고문을 세상에 알리고, '성희롱'의 개념을 정착시킨 것, 시장으로 활동하면서도 부를 축적하지 않고 시민단체에 기부한 것 등을 논했다.

작금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고인이 공공선에 기여하는 행보를 걸어왔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즉, 이는 박원순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서 '가치'에 대한 감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권인숙과 우 조교를 변론하던 시절의 박원순 변호사를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문제가 된 것은, 7월 11일 그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었다. 전우용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가 두 여성(아내와 딸)에게 가볍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압니다.
그가 한 여성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나머지 모든 여성이 그만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원순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를 쓸 수는 없을 겁니다.
넘치는 반인간성에 질려, 당분간 SNS를 쉽니다.'


엄연히 피해호소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우용 교수는 '고인이 한 여성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한정적인 정보가 주어져 있으며, 건조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정말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었다면 가해 사실에 대한 가능성 역시 열어 놓아야만 했다.

피해호소인을 배제하지 말라

그러나 전우용 교수의 언어는 피해호소인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배제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박원순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면서, 상세한 진실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혹여 피해호소인의 고소한 가해 행위가 사실이라면, 그래서 '피해호소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가 말하는 '한국 현대 여성사'에서 해당 여성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가해 사실도 한국 현대 여성사에 포함되는 것일까. 여기서 '모른다'는 말은 중립을 가장하는 언어에 불과하다. 나름의 가치 판단으로 점철된 전 교수의 언어는 고인이 '권력형 성범죄'의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전우용 교수의 정치적인 언어는 낯설지 않은 일이다. 지난 2019년 가을, JTBC 여성 기자가 보수 집회 참가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 전 교수는 'JTBC는 조국 장관 가족의 일생을 추행하는 데 동조한 일에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안은 연관 관계가 전혀 없었다.

그때의 그 역시,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성 인권의 문제를 도구로 추락시킬 뿐이다. 그는 조심성 없이 '남자사람친구'를 운운하며, '한국 현대 여성사'를 끌어온다. 그의 단어 선택은 공허함을 남긴다. 두 여성(고인의 가족)과 한 여성(피해호소인)을 구분 짓는 수사 역시 말장난이나 기교 이상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사학자의 경륜, 책임 있는 지식인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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