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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화 Today'를 주제로 한 전시가 동덕아트갤러리서 7월 29일 열렸다. 월간 <민화> 유정서 편집장께서 인터넷 초대장을 보내주셨다. 
 
발열 체크를 하고 방명록을 적고 있는 참가자들. 동덕아트갤러리
▲ 화조화 Today 전이 7월 29일 열렸다. 발열 체크를 하고 방명록을 적고 있는 참가자들. 동덕아트갤러리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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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들어서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는 것과 그 많은 이들을 곳곳에 수용할 만큼 공간이 컸다. 갤러리를 화이트 큐브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마치 국제경기가 열리는 수영장만큼 컸다. 오픈식의 내빈 소개는 길었고, 그중 몇 사람에게서만 들었을 인사말과 축하의 변도 여럿 이어졌다. 

참여 작가는 서른 일곱이나 되고, 송현민화회와 이화채색연구회는 단체로 참여했다. 한껏 대작들을 낸 초대작가들 그림이 한쪽 공간을 꽉 차게 둘렀다. 회랑같은 담과 벽마다 눈높이에 화조화다. 어떤 그림들엔 생생한 꽃들이 여럿 놓였다. (화조화를 보는 꽃들의 기분은 어떨까?) 이들 공간은 질투하는, 경쟁하는 꽃들의 집하장이다.

은근히 서로 작품들을 곁눈질하게 된다. 가나다순으로 이름이 올랐지만, 어떤 작품은 가정 먼저 손님들 눈에 띈다. 어떤 작품은 가장 환한 자리를 차지한다. 해서 '내 작품' 말고, 내가 본 '다른 작품' 추천을 받기로 했다. '아는 작가' 김희순 님이 가리킨 곳엔 검은 괘가 파다하다. 

 
이정옥 작가의 작품 중 일부. 그는 주역의 글을 도상화한 그림이라고 전했다.
▲ 현대의 민화 역시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  이정옥 작가의 작품 중 일부. 그는 주역의 글을 도상화한 그림이라고 전했다.
ⓒ 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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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서 작품을 하고 있는 이정옥 작가의 그림은 강하다. 강시를 막자면서 대문에 붙일 것 같은 포스를 지녔다. 진언 아브라카다브라나 수리수리마수리수수리사바하가 들릴 것 같다. 아니면 옴마니밧메훔이든가? 

"나는 4년여 주역을 연구했어요. 주역의 말을 도상화한 것이죠. 괘가 말하는 24절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거죠."

꽃은 해와 땅과 바람의 순환을 정확히 반영하여 산다. 사방 팔방으로 뻗는다. 공부가 한참이나 필요한 그림이다. 이정옥 작가가 (친구를 챙기느라) 급하게 퇴장하고, 김희순 작가의 화조도로 갔다.
 
작가의 작업이 늘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 왼편 추상은 더 오래 전 작업이다.
▲ 김희순 작가와 작품 "정원채집-화조채집" 작가의 작업이 늘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 왼편 추상은 더 오래 전 작업이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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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과 오른편의 그림군은 대조적이다. 왼편은 추상에 가깝고, 두꺼운 먹선이 흘렀다. 오른편은 익숙해 편안한 그림이다. 꽃은 꽃인 줄 알겠고, 새와 잎새는 또 그런 줄 알겠다. 물었다.

"그림이 역시나 추상쪽으로도 가시는군요?" 
"아뇨. 왼편이 제가 초기에 했던 작품이에요."
"거기 개구리가 있군요. 왼편 그림들은, 치면 성벽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아요."
"저런 그림은 무의식에서 그려져요. 제가 초기에 오히려 순수했달까? 친구들하고 있고, 주변을 자꾸 의식하게 되면서 변화된 그림들이 오른편이죠. 왼쪽 그림들을 사겠다는 분들이 있어요. 솔직히 팔고 싶지 않죠. 다시는 저런 그림들을 못 그릴 거 같으니까."

 
"더 많은 한국의 전통들-수묵 서예 바느질 전각 반다지 등-을 배우고, 더 가까이 자신에게 다가가는 것." 전통과 현재가 만나는 박연옥 대표의 길이었다.
▲ 이화채색연구회는 단체로 참여했다 "더 많은 한국의 전통들-수묵 서예 바느질 전각 반다지 등-을 배우고, 더 가까이 자신에게 다가가는 것." 전통과 현재가 만나는 박연옥 대표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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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림들이 모여서 여기는 이미 꽃밭이 되었다. 그중 꽃다지처럼 단체전을 펴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화채색연구회>. 86학번, 이화여대 동양화과에서 수학했던 이들이다. 대표 박연옥 님의 말.
 

"대학에서 공부 당시 황창배 교수님께서 한국의 채색화를 많이 강조하셨어요. 한국에 민화라는 멋진 세계가 있는데, 너희가 관심을 갖고 해라. 당시엔 세상(대학가를 포함한 미술계)이 온통 수묵과 추상을 했었거든요. 베껴 그리는 그림을 해선 안 된다. 작가주의, 예술가의 혼, 그게 우리가 보고 배운 거였어요."
   
전공이 이후 그의 삶으로,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이들은 졸업 후 여차저차한 이유로 육아와 가정과 혹은 세상의 일들 안에서 일부가 되었다. 이들이 모인 5년전 쯤이면 대략 이들의 사회적 요구와 의무가 해소되는 즈음이었을 것이다. 


"다시 작업을 한다는 건,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는 걸 의미했어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어요. 그때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어요. 송규태 선생님께 다시 '테크닉'을 배웠죠. 그게 아름다움을 뽑아내는 원천이란 걸 알았어요."

박연옥의 작업실로 86 친구들이 모인 계기였다. 이 많은 꽃그림 중에 이전에 보지 못했던, 그리지 못했던 그림 하나를 짚어달라 했다. (이건 어려운 부탁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본 그 그림을) 이들 친구들은 짚어주었다. 파꽃 그림이었다. 작품을 꾸준히 해왔던 고정숙 작가의 그림. 

"나는 예산서 났고, 지금은 홍성에 귀농했어요. 민화에서 파꽃을 봤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현대작가니까. 어머니가 작은 텃밭서 작게 키우는 파꽃이 이뻤어요. 갈라지면 그 안에 별똥별처럼 검은 씨들이 가득해요. 어머니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렸죠."

행복의 그림, 일상의 그림 민화를 떠오르는 말들이었다. 옆에서 연옥이 보탠다. 

"'파꽃 여자'란 시가 있어. 그 이야길 해주고 싶었어. 팟국도 있다? 파를 고추씨 기름으로 볶다가, 소고기를 넣어 달달 볶고 물을 붓는 거지. 육개장과 비슷한지만, 팟국은 정말 맛있거든."
 
전통에 뿌리를 내리되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현대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민화계는 꾸준히 실험하고 소통하고 있었다.
▲ 정오경 작가의 전시 작품 여섯 편 연작 중 하나. 그림 중 일부분. 전통에 뿌리를 내리되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현대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민화계는 꾸준히 실험하고 소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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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옥의 추천으로 이동한 곳은 정오경의 여섯 편 연작이다. 도상은 옛것과 다르지 않은데, 완벽히 현대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걸 설명해 준다. 

"도상은 이전 거예요. 저도 그걸 바꿔본 적이 있지만, 어색하거든요. 근데 배경에 색을 입힘으로써 완전히 달라졌죠. 색은 파스텔 톤이잖아요. 전통 민화가 갖는 원색과 다른 지점이죠. 저 색들은 입자가 큰 호분을 배경에 몇 겹 발라줄 때라야 나올 수 있는 색이에요. 제 꽃도 그래서 붉은 색보다 더 붉죠."

작품들은 '아무튼 현대적'이다. 사마귀들과 참새들과 풀무치와 벌과 나비와 원앙과 잠자리들이 모두 그러하다. 자수인 듯한데, 회화인 점도 그러했듯이.   

어려운 시기에 작은 민화 저널과 정병모 교수가 기획하고, 기꺼이 동덕아트갤러리가 공간을 내줘 마련된 전시. 아마 꽃 한 송이 피기까지 필요한 자연의 조화와 비슷한 걸게다.

화조란 식물과 동물의 세계 중 작고 친근한 동네를 그린 그림이다. 거기 오래 머물고 싶었는데, 금세 여섯 시가 됐다. 나오자 다시 그곳에 가고 싶었다. 이 전시는 8월 3일까지 열린다. 

태그:#월간 민화, #오늘의 민화, #화조화 투데이, #동덕아트갤러리, #민화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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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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