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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은서점에서 개최한 낭독회
 니은서점에서 개최한 낭독회
ⓒ 주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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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독회를 다니다 보면, 행사 말미 독자에게 다양한 질문을 받습니다. 이때 받는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가 '요즘 시가 왜 어려운가요?'입니다. 

제가 봐도 요즘 시는 어렵습니다. 10여 년 이상 시를 써 왔고, 평론으로 등단을 한 저도, 어려운 시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하나도' 파악이 되지 않는 시도 있죠.

그런데요, 모든 시를 다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시뿐만이 아닙니다. 한국말로 쓰여 있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도 많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등의 현대 철학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번역상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에서 사고의 회로가 연결되지 않아서죠.

시인 '이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시의 난해함

생각해보면, 요즘 시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시가 어려워진 까닭이 2000년대 초 미래파의 활보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그 이전에도 어렵고 실험적인 시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그 시인은 모두가 잘 아는 시인 '이상'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이상의 시를 배울 때면 곤란함이 많았습니다. 한용운 시인이나 김소월 시인 등의 시도 은유와 환유 등으로 밑줄을 그리면서 암기했습니다. 그래도 의미가 파악되었기 때문에 읽을 만했는데요, 이상 시인의 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가역반응>이라는 시가 있는데요, 이렇게 시작합니다. '임의의반경의원(과거분사에관한통념) / 원내의한점과원의한한점을연결한직선…' 이해되시나요. 시의 부분을 옮겨왔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운 까닭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시인 이상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모더니즘 선구자이자 불세출의 천재 시인. 저는 이상 시인을 '모더니즘의 선구자'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불세출의 천재 시인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분명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유독 그 혼자만 천재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 시기에 활동한 다수의 시인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가 천재라고 주목받는 까닭은 '당시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시'를 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상 시인의 맥이 끊겼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꽃>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시도 쉽지 않습니다. 그는 '무의미 시'라는 시론을 확립했는데요, 그의 <김춘수 전집 2 시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상이 없을 때 시는 의미를 잃게 된다. 독자가 의미를 따로 구성해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시가 가진 의도와는 직접의 관계는 없다. 시의 실체가 언어와 이미지에 있는 이상 언어와 이미지는 더욱 순수한 것이 된다(문장사, 1984).'

조금씩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시죠. 

서정시의 퇴보가 시의 난해함으로 연결된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 시는 쉽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해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동시에 있었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그 혼용의 폭이 넓었기 때문에, 어려운 시 만큼이나 쉬운 시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쉬운 시들을 보통 '전통 서정시'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서정시의 시론도 따지고 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정시는 왜 퇴보한 것일까요.

그것은 시대적 배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근현대의 한국은 정치적 혼란기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합니다. 시인들도 같이 맞서 싸웠습니다. 다만, 시인들은 시로 싸웠죠. 이 시기의 시를 '참여시'라고 부릅니다. 참여시란 '정치·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변혁을 추구하는 시'입니다.

세상이 뒤숭숭하고 불행한 사건이 넘쳐나는 시기 사랑과 세상을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서정시가 환영받을 수 있을까요? 당시 도종환, 서정윤 시인이 서정시인으로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서정시인의 활동은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물러나면서 서정시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요. 2000년대 이후 미래파의 등장으로 서정시는 다시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합니다.

난해함에 한 획을 그은 미래파의 등장 

미래파 시를 소개할 때 '파편성'을 그 예로 듭니다. 파편이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서진 도자기 한 조각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단 한 개의 조각만이 내 손에 있습니다. 이 조각 하나만으로 도자기의 원형을 떠올리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시는 '파편성' 등으로 무장했습니다. 
 
 파편성의 문제, 파편으로 전체를 떠올릴 수 있을까?
 파편성의 문제, 파편으로 전체를 떠올릴 수 있을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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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만약 파편이 한 종류에 한한다면, 시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한 종류의 파편이 아니라, 다양한 파편이 등장하고, 심지어 시인마다 다른 문장을 만들어 파편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몇몇 미래파 시인들이 특별한 주목을 받으면서, 미래파는 중심에 놓였습니다. 미래파적인 시 쓰기가 등단에도 유리했기 때문에 시를 공부하는 문청들이 미래파를 흉내 내기 시작했으며, 주류가 되었습니다. 오늘 발표되는 다수의 젊은 시인들의 시 쓰기에 미래파적인 시 쓰기가 녹아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한국 현대시가 어려워진 까닭

현대의 한국시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일부 시들은 공부하지 않으면 읽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도 하게 됩니다. 시를 해석하지 말고 언어적인 느낌으로 읽어보라고.

일부 시들은 의미보다는 언어적이며 음악적인 느낌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시도 있습니다. 전통적 모더니즘의 시가 수수께끼였다면, 오늘의 포스트 모던의 시는 암호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난해한 시, 어려운 시를 긍정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우리 한국 현대시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 것입니다. 문제는 너무 한쪽으로만 발전하고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등단'의 문제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현대시가 한편으로만 자라난 까닭이 미래파적인 시 쓰기를 하는 시인만 주로 뽑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 서정시와 미래파적인 시 쓰기를 하는 시인이 동시에 투고하면, 심사위원들은 '가능성(있음 직함과 혼용되는 의미입니다)'이라는 면을 높게 보고 미래파적인 시 쓰기를 하는 시인을 뽑기도 한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한두 해 이런 방식으로 당선자를 뽑게 되면, 다수가 미래파적인 시를 써서 투고하게 될 것이겠죠. 그런데 만약 십여 년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까요? 

우리 문학을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의 시'를 쓰는 시인이 활동 가능한 문학적 풍토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시를 쓰는 다수의 시인이 나와야 하는데요, 그 바탕이 되는 것, 다양한 장르의 시집을 독자분들이 구입해 주는 것입니다.

문단 내부에서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외부의 충격, 특히 독자의 요구가 문단의 변화를 가장 빠르며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같은 기사를 시를 읽는 아침 블로그(https://blog.naver.com/yhjoo1) 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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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문학과 관련한 대중문화평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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