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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영면한 여성학 학자이자 여성운동가 고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기리면서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의 부고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빈소가 5일 오전 경남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6일이다. 2020.10.5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빈소가 5일 오전 경남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6일이다. 2020.10.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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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큰 어르신이신 이이효재 선생님께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4일 영면하셨습니다. 이이효재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는 저의 여성학과 대학원 석사학위 지도교수님이셨고 제가 기자로서 활동하고 이후 여성, 인권운동을 하면서 언제나 본받으려고 노력한 제 정신적 지주셨습니다. 

선생님을 회고하고 애도하자면 오늘 하루 밤 동안 쓰고 또 써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낮에 비보를 접하고 가슴이 먹먹하고 황망해서 애도의 글을 올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너무 그립고 안타까워 선생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편지를 찾느라 한동안 허둥댔습니다. 

여성학을 공부했던 이유 

선생님을 직접 뵌 것은 제가 석사학위 과정에 들어간 1985년이었지만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것은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시절의 남녀공학 대학은 짐작하시겠지만 모든 것이 남학생 중심이었습니다. 학생운동 서클이라고 해서 예외일 리가 없지요. 그때도 나는 좌충우돌 남학생 동기나 선배들에게 여성차별이 많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들거나 분해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책이 바로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이라는 책이었습니다. 1979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이이효재 선생님께서 엮은 책이었습니다.

베티 프리단, 줄리엣 미첼과 같은 서구 여성해방이론 선구자들의 글과 흑인 여성, 알제리, 멕시코 등 제3세계 여성 문제, 그리고 제3부에는 성과 노동, 농촌 여성, 분단시대의 여성 문제 등 한국의 여성운동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논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미 제3세계에 눈을 돌리셨다니 얼마나 앞선 분이셨는지요!) 

한 줄 한 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댔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회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파해내면서 그때까지 제가 전혀 몰랐던 알제리, 멕시코, 중국 여성운동에다 한국의 여성현실에 관해 설명해주니 어려웠지만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책 내용은 많이 잊어버려도 그때의 감동과 흥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공감되는 부분에 줄을 그으려고 하니 다 줄을 그어야 할 것 같아 감히 줄도 긋지 못했지요. 빛바랜 그 책은 지금도 제 책장에 고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한마디로 여성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눈을 뜨게 해 준 교과서였고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연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찌 제가 이이효재 선생님을 제 인생의 지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과의 10년 전 만남

제가 여성전문기자로 일하면서 남성 중심적 편집국에서 고군분투한다고 힘들어할 때면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특유의 흘림체로 편지를 써서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여성단체를 비판한 기사로 제가 곤욕을 치를 때, 편지로 격려해 주셔서 혼자서 그 편지를 몇 번이나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09년경이었던가요. 선생님께서 진해에 계실 때 제가 부산으로 출장을 갈 기회가 있어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선생님을 뵈러 갔습니다. 따뜻하게 입으시라고 스웨터를 하나 사서 갔더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요.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식당에 모시고 갔더니 당신이 제자에게 밥을 사주시겠다고 우기셔서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갱년기로 온몸이 열이 나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증상이 있음을 아시고 선생님이 다니시던 부산의 어느 한의원을 소개해 주셔서 제가 그 병원에서 한동안 한약을 지어 먹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이이효재 선생님이 한국 여성학과 여성운동에 끼친 영향을 일일히 열거하자면 정말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이 소개하실 것이고 언론에서 잘 조명할 것이라 굳이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음의 내용은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인간적이고 따뜻하셨던 분, 정의감과 순수함이 온몸에 깃들어 있으셨던 분, 그러면서도 어떠한 권력과도 거리두기를 하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태도를 끝까지 견지하셨던 저의 스승, 우리의 선생님, 이이효재 선생님.  

아,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명절의 마지막 날입니다. 제 마음의 이이효재 선생님을 함께 나누며 선생님을 애도합니다. 

부디 평안하게 잠드소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문경란 시민기자는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입니다. 이 글은 문경란 시민기자의 페이스북에 중복으로 게재됐습니다.


태그:#이이효재,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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