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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다시 주식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위해, 돈 대신 다른 것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주식 투자.
 주식 투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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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하나가 작년에 아이를 낳았다. 늦은 나이에 가진 첫 아이라 임신기간 내내 마음을 졸이면서도 막달까지도 직장 생활을 이어갔던 그녀는 최근 전업주부가 되었다.

15년 넘게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내가 알기로는 꽤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하고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고,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결국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그녀가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 얼마 전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서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녀가 다니던 직장에서 아이를 돌봐줄 만한 곳을 구해줄 테니 복직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아직 한참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내키지 않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면서 그녀는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나 요즘 주식 하거든. 월급만큼은 안 돼도 제법 쏠쏠해."

그 말에 '현타'가 왔지만 

20년 가까이 알고 지냈으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그런 재주가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그녀가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퍼뜩 떠올랐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동안 짬짬이 인터넷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만으로도 제법 괜찮은 벌이가 된다니 나도 모르게 귀가 번쩍 뜨였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주식의 노하우, 즉 '돈 버는 비결'을 내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들으면 들을수록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으로 주식 관련 실용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잘만 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꿈을 안고서 말이다. 그런데 '2년 안에 주식으로 10억 벌기'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실용서들을 하루종일 검색한 끝에 나는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셈은 느리면서 또 성격은 급한 내가, 기다림과 입질의 묘미를 알고 적절하게 '밀당'을 주고 받아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주식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언감생심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내 주변에는 그녀 말고도 주식에 빠진 사람이 여럿이다. 그중에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이제는 주식 관련 유튜브 방송을 할 정도로 고수가 다 된 사람도 있다. 그가 어떤 종목을 언제 어떻게 사서 어떻게 팔아야 얼마큼 이익을 볼 수 있는지 지지치도 않고 떠드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나만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인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결국 어느 순간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어쩐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현타'가 온 느낌이랄까?

내가 주식 투자 대신 하는 것 

사실 나는 '돈 버는 법'과는 애초에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언제부터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작고 귀여운' 첫 월급을 받은 직후였던 것 같다. 당시 내 첫 월급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그 돈으로는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해결하고, 핸드폰 요금과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늘 생활비가 빠듯했다. 볕도 잘 들지 않던 손바닥만한 방의 월세가 무려 35만 원이나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적은 돈이긴 해도 좀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알뜰살뜰 모아 훗날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내 월급만 가지고 서울에서 20평 대의 아파트를 사려면 대략 300년은 넘게 걸릴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일찌감치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접었다. 그러니 돈에 관해 아등바등 집착할 필요가 없었고, 덕분에 자연스레 물욕과도 멀어졌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나이를 먹고 몇 번의 이직을 반복하는 동안, 경력이 쌓이면서 월급이 쑥쑥 올랐다. (물론 그래 봤자 시작이 워낙 미약했으므로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또 운이 좋게 8년 전 월세살이를 청산하고 전셋집을 마련하면서부터 통장에도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내 씀씀이는 이십 대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월급을 주로 '먹는 것'과 '읽는 것'에 쓴다.
 
 나는 늘 군것질을 달고 사는 편이다.
 나는 늘 군것질을 달고 사는 편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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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먹는 것'에 돈을 쓰는 이유는 요리에 최소한의 흥미와 소질마저 없는 자취생인 탓에 매 끼니를 꼬박꼬박 사 먹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늘 군것질을 달고 사는 편이다.

달콤한 것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는 기분 좋은 하루를 위해 바닐라 라떼와 초콜릿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또 딱히 큰돈이 들지 않는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데다가 비싼 맛집을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길 정도의 부지런함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읽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은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등장인물이 많고 갈등이 난무하며 끝까지 결말을 종잡기 힘든 '복잡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게다가 '읽는 것'은 '먹는 것'처럼 금방 없어지지 않고, 영구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하며, 굳이 신상이 아니어도 좋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인터넷 서점을 뒤져 읽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다가 월급날 한 번에 결제한다.

물론 집이 좁다 보니 마냥 쌓아 놓을 순 없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땐 아주 신중해야 한다.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에서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배우 현빈의 그 출중한 미모가 아니라 (물론 전혀 안 설렜던 건 아니고), 극 중 현빈이 소유하고 있던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책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꿈꾸는 노후에는 늘 커다란 책장이 포함되어 있다.

월급을 받으면 달콤한 것을 사 먹고,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인터넷 쇼핑으로 적당한 가격의 옷 몇 가지를 고르는 것으로 나를 위한 쇼핑은 끝이 난다. 그리고 남은 돈은 고스란히 저축한다. 1인 가정의 가장인 내게는 가정 경제를 불릴 만한 의지도 재주도 없는 셈이다.

마카롱과 시럽 듬뿍 넣은 바닐라 라떼면 된다  

코미디언 박명수는 일찍이 말했다.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라고. 티끌을 태산으로 만드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로또와 유산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더는 우습게 들리지 않는 시대다. 로또와 유산이 낭만적인 사람들의 꿈이라면 좀더 현실적인 사람들에게는 요즘 주식이 대세인 모양이다.

그것은 어쩌면, 월급만으로는 부자가 되기 힘든 세상에서 뭐라도 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소시민들의 처절한 사투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어쩐지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일이다.

오늘은 퇴근길에 혀끝이 아리도록 달콤한 마카롱과 시럽을 듬뿍 넣은 바닐라 라떼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엊그제 주문한 책이 배송 중이라는 문자까지 한 통 받았더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다달이 월급을 받고, 좋아하는 군것질거리와 읽을거리를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하루다. 생각해보니 부자가 되면 또 뭘 하나, 딱히 돈 쓸 줄도 모르는데. 우리 엄마 말씀이 딱 맞다. 돈도 벌어 본 놈이 벌고, 써본 놈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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