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상화 시인이 독립운동을 함께 한 지인에게 선물한 병풍 1점이 대구시에 기증된다.
 이상화 시인이 독립운동을 함께 한 지인에게 선물한 병풍 1점이 대구시에 기증된다.
ⓒ 대구시 제공

관련사진보기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 시인이 독립운동을 함께 한 지인에게 선물한 병풍 한 점이 대구시에 기증된다.

이상화 시인으로부터 작품을 선물 받아 소장했던 포해 김정규의 셋째 아들인 김종해(1938. 대구 출생)씨가 오는 3일 대구미술관에서 기증한다.

김씨는 생전에 선친께서 소중하게 여겼던 병풍을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대구시에 연락했다.

대구시는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이 작품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기증 절차를 밟았다.

대구시에 기증되는 병풍은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1903-1978)이 행초서로 쓴 작품으로 병풍 마지막 폭에 1932년 '죽농 서동균이 글씨를 쓰고 시인 이상화가 포해 김정규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서화 작품 가운데 이처럼 제작 연도와 얽힌 사연이 뚜렷하게 기록된 것은 드문 사례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이상화 시인은 일제강점기 민족시인이고 죽농 서동균 또한 잘 알려진 근현대기에 걸쳐 활동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수묵화가이다.

포해 김정규은 합천 초계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1924년 대구노동공제회 집행위원을 지냈다. 일본에 유학해 주오(中央)대학, 메이지(明治)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신간회 활동도 한 민족 지사이다.

1932년 이 병풍이 제작될 당시 서동균은 30세, 이상화는 32세, 김정규는 34세의 청년으로 이들은 모두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던 대구의 엘리트였다.

이 병풍은 이상화가 10폭이나 되는 대작을 부탁할 만큼 서동균과 막역한 사이였고 김정규는 이상화로부터 이런 대작을 증정 받을 만한 인물이었음을 알려준다.

김종해씨는 "선친께서는 상화 시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병풍이라고 지극히 아끼셨다"며 "1974년 선친이 돌아가신 후 집에서 보관해 오다가 대구시에서 문화예술아카이브 구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락했다"고 말했다.

서화연구자 이인숙 박사(경북대 외래교수)는 "이 병풍은 일제강점기인 근대기 대구가 보유한 최대의 자산 중 하나인 이상화의 국토에 대한 생각, 교유 관계, 문화 활동을 알려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는 3일 열리는 기증 행사는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며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과 김종해, 이원호 이상화기념관 관장, 대구미술관장 등이 참석해 병풍 기증과 함께 감사패를 증정할 예정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대구주재. 오늘도 의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희망합니다.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