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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관으로 2020년 7월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가짜폐지 1년 규탄 및 전동휠체어 행진' 참가자들이 장애등급제의 제대로 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관으로 2020년 7월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가짜폐지 1년 규탄 및 전동휠체어 행진" 참가자들이 장애등급제의 제대로 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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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긴 역사를 가진 단체이지만, 이들에게도 코로나19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장애인운동의 중심축으로 역할하는 전장연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떤 의제를 중심으로 대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장연 변재원 정책국장과 지난 1월 14일 줌을 이용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차별에 저항하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두 개의 슬로건을 걸고 활동을 하고 있는 전장연 소속 정책국장 변재원입니다. 전장연은 87년 민주화 이후, 당시 지체부자유 장애인 대학생들끼리 모여서 다함께 한국사회의 장애의제를 끌고 왔습니다. 본격적으로 전장연의 꼴을 갖춘건 2001년 오이도 추락사고 이후였어요.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다가 장애인이 추락사한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도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이동권 투쟁이 전면화되었고, 투쟁을 산발적으로 하지 말고 전장연 이름 앞에 모이자 한 것은 2007년부터 14년 정도 되었습니다."

전장연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탈시설이다. 청도대남병원에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변재원 국장은 무력감을 느꼈다. 더 이상 시설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그가 탈시설 운동을 하는 강한 동력 중 하나다.

"코호트 격리의 문제점은 많이 들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1지침인데, 유일하게 시설에서 감염된 경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사회적 격리를 시켜버립니다. 집단격리를 시켜 버리고 절대 못 나오게 폐쇄시켜버리는 거죠. 하루 아침에 확진자가 100명, 200명씩 나오는 게 시설입니다. 요양시설에는 호흡기증후군을 대처할 수 있는 의료기기나 의료적 노하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냥 일방적으로 가둬버리는 거죠.

2020년 청도대남병원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7%의 치명률이 나왔고 최근에는 서울 송파구 신아재활원에서 70명의 장애인이 집단확진 받는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저희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에서 만들어낸 '긴급탈시설(Emergency de Instutionalization)'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집단감염 상황에서 코호트격리가 아니라 긴급탈시설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분산조치를 시키고 각자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시설 문제는 코로나 이전에 없었던 문제가 아닌 만큼,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에도 없어질 문제가 아니다. 시설에서 집단감염에 노출됐던 시설거주인들은 긴급분산조치를 통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후에도 다시 시설로 돌아가게 된다. 전장연은 코로나19 상황을 통해 시설의 문제를 완전히 드러내기 위해 강력하게 투쟁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아무리 시설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건 너희들의 이야기지' 했는데 코로나가 너무 명확하게 시설의 문제점을 보여줘 버렸어요. 100명이 한 공간에서 감염되고 몇 명이 죽고, 이런 상황들.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 우리 사회는 동등하게 건강할 권리를 주어야 해요. 누구는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산골짜기 시설에 가두어 놓고 한평생 거기서 살게 하고, 절대 나오지도 못하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신아재활원에서 감염된 분들이랑 통화를 할 수 없었어요. 발달장애인 분들에게 시설장이 '전화통화만 해도 코로나 걸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전화를 못한 거예요. 시설에서 겁을 준거죠.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더욱 견고하게 갇혀 있었습니다. 이런 시설의 폐쇄성 같은 문제들이 이제는 좀 드러났어요. 

노르웨이에서는 시설이 한꺼번에 문을 닫았었고. 미국 같은 경우는 긴즈버그 대법관이 과거에 옴스테드(Olmstead v. L.C)판결에서 '장애인은 자립생활의 권리가 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 가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 있어요. 한국은 그게 안 되거든요.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자는 것에 대해 너무 크고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어서, 이런 문제를 같이 해결해나가는 것이 코로나 이후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감염되고 너무 많은 죽었기 때문에, 코로나가 끝났다고 해서 잊어버리면 않고 이분들이 지역사회에서 같이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는 어디에 있나

탈시설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은 모두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호라는 명목 아래 분리되어 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에요. 버스 타고 이러면 국가가 다 부조해줘야 하는데, 그냥 어디 지방에 모아 놓고 살게하면 돈이 별로 안 들잖아요. 돈 안 되는 애들은 강원도 태백 어디다가 박아 놓고 거기서 알아서 먹고 살게 하는 거예요. 이건 한국사회가 너무 오랫동안 해왔던 반인권적 행태입니다. 탈시설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부랑자, 미혼모, 노인도 시설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한국 사회에서 돈 안 되는 분들은 다 시설로 가 있습니다, 지금.

노숙인은 빈곤사회연대와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노숙인 시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들을 같이 진행하고 있고요. 미혼모 시설도 최근에 연락이 와서, 탈시설을 하고 싶은데 장애인단체만큼의 영향력도 없고 노하우도 없다고 하셔서 저희가 탈시설 운동을 해왔던 걸 알려드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중증, 최중증장애인들에게 자립은 단순히 시설에서 나와서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립에는 노동이 필수적이다.

"기존의 일자리로는 최중증장애인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취업이 불가능해요. 정부는 '그러면 장애인 연금을 받아라'고만 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노동이 반드시 돈만 벌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노동을 통해 얻는 자기만족감이 있고요. 주변 네트워크라는 것이 생겨요. 최중증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굴리고 굴리다가 만든 것이 '권리중심형 중증장애인 일자리'입니다. 

유엔에서 한국 사회는 지역사회 장애인이 너무 보이지 않으니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낸 아이디어는, 한국 사회가 시설로 보내 놨던 최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만의 문화예술을 발표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일자리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서울시향단원들의 악기 연주가 일자리로 인정받는다면,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문화예술을 하는 것은 왜 일자리로 인정받을 수 없겠어요. 무엇이 일자리고 일자리가 아닌지를 나눌 수 있는 기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형 일자리 투쟁을 했고, 서울시청이 작년에 시범사업을 위해 260명을 받았습니다. 

서울시가 시범사업을 하고 나니까 올해 중증장애인 맞춤 일자리 취업박람회 때 40명 정도의 국회의원이 축사를 해줬어요. 그러고 나니 이재명 도지사가 '경기도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경기도도 하고 서울시도 하게 되면 장애인직업재활법에 '중증장애인을 위해서는 이러한 직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가도록 개정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개정 작업도 준비하고 있어요. 최중증장애인, 중증장애인과 같이 한국사회가 절대 채용하지 않을 것 같은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전장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쉽사리 바뀌지 않는 세상 앞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하루라도 더 시설 밖에서 '나'라는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전장연은 코로나 상황에 머물지 않고 그 이후를 끊임없이 얘기한다. 

"저는 장애인운동, 탈시설 운동이라는 게, 가만히 보면 인간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운동인 것 같아요. 인간이기 때문에 가둬지지 않아야 하고. 가둬지지 않는다면, 밖에 나와 있을 때 인간이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되고. 인간이기 때문에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건강할 수 있어야 되고,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운동이 장애인 운동이 아닌가. 사회적 구조 속에서 야만과 폭력이 자꾸 배제했던 사람들과 그 조건들을 다시 되찾아오는 운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그:#코로나19, #장애, #장애인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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