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을 하던 시절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선곡'이었다. 아임유어즈(I'm Yours), 럭키(Lucky), 그리고 언론리(Unlonely)까지... 친환경 팝이라고나 할까, 맑고 깨끗하면서도 흔들흔들 리듬 타게 하는 그의 음악은 어느새 제이슨 므라즈라는 이름 앞에 '그래미상 2회 수상', '20개국 멀티플래티넘'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 뮤지션' 등 다양한 수식어를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수식어를 더 붙여야 할 것 같다. 18년 차 과수농민.
커피전문점에서 통기타를 메고 음악을 시작한 제이슨 므라즈가 농부가 된 것은 지난 2004년이다. 그는 첫 앨범의 수익금을 털어서 시골 땅을 샀다. 레게 음악의 전설인 밥 말리처럼 자연 속에서 곡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15년 전 밥 말리의 자메이카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안개 자욱한 푸른 산을 바라보며 곡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나의 꿈이 됐다.
- 제이슨 므라즈 페이스북, 2019.6.
그가 구입한 미국 샌디에이고의 농지는 5에이커(6천여 평) 규모로, 77년풍의 낡은 집과 음악하기 좋은 차고와 수 십 그루의 아보카도 나무가 딸려 있었다. 그는 이 곳에서 음악을 만들며 나무를 심었다. 차고를 음악 스튜디오로 꾸며 곡을 썼고, 앨범 수익금으로 다른 스타들이 차를 사 모을 때 그는 과일나무를 사서 심었다.
지난 2009년부터는 유기농 재배방식으로 다양한 아열대 과일을 재배했고, 지난 2015년 요리사이자 허브 전문가인 크리스티나 카라노와 결혼해 함께 농사를 지으며 '므라즈 가족농장(Mraz Family Farm)'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기후변화 관련 다큐 영화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에 출연해 자신의 농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여긴 과일 숲이에요. 다양한 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어 농사 짓는 거죠. 아보카도 나무도 있고 바나나 나무도 있고, 무화과 나무도 있고 커피나무도 있어요. 처음에는 아보카도만 다량으로 재배하다가 지금은 40종의 과일나무를 함께 재배해요. 수종 다양화로 매월 수확하고 있죠.
늘 빡빡한 공연 일정을 가져온 제이슨 므라즈는 스스로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가 트랙터를 즐겨 몬다고 말한다.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공연장에서는 뮤지션이지만 집에 돌아오면 영락없는 농민이다.
공연에서 돌아온 뒤 작년 가을 온라인 도시농업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을 활용해 퇴비의 품질향상과 우리 집 닭들의 삶의 질 개선, 그리고 뒤 뜰 텃밭 개량을 할 수 있었다. 우리 과수원의 종 다양성을 높이려고 30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는 동안 벌에게 쫒기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었다.
- 제이슨 므라즈 페이스북, 2015.9.
18년 차 농민 뮤지션
그가 이렇게 땅을 일구고 나무를 심는 이면에는 지속가능한 먹거리와 지구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것 같다.
당신의 먹거리와 물 공급을 조절하는 건 돈을 아끼고 에너지를 아끼고 폐기물을 줄이고 연료를 절약해 잃어버린 힘을 되찾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게 바로 '생각은 글로벌하게 실천은 지역적으로'라는 아이디어의 밑바탕입니다.
- 2015.9.
그는 넷플릭스 다큐 <대지에 입맞춤을>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쉬운 실천은 나무를 심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대지에 큰 영향을 끼칠 선행을 찾고 있다면 나무를 심으세요. 과일 숲을 만드는데 큰 땅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수십 제곱미터만 있으면 됩니다.
나무를 심어서 공기 중에 떠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유기농업으로 땅을 비옥하게 해 토양 속에 탄소를 잡아두는 '탄소 농사'를 짓는다. 그는 공연 여행 중 생겨나는 탄소발자국을 상쇄시키려고 비행기를 탄 횟수만큼 나무를 심는다. 국내선을 타면 한 그루를 심고, 국제선을 타면 다섯 그루를 심고, 여기에 동행하는 사람 숫자를 곱해서 심는다. 이렇게 연간 평균 2500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다 못 심으면 못 심은 만큼 국제 산림 기구에 기부한다.
그는 재단을 만들어서 공연 여행을 하는 곳곳에서 나무 심기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도시농업 팟캐스트에 출연한 그는 지금껏 한 번도 나무를 심어보지 못한 자원봉사자들이 '나중에도 또 심겠다'고 말할 때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남아프리카의 한 제약회사는 주차장을 텃밭으로 전환해 수백 명의 공장 직원과 가족들, 인근 주민들이 먹을 먹거리를 생산했는데 우리는 초기 재배와 공급을 도왔습니다. 텍사스 오스틴에선 노인들을 위한 공원을 청소하며 나무 묘목을 제공했고, 북캘리포니아에서는 한 사원에 70그루의 과일나무를,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공터에 쌓인 콘크리트와 유리를 거둬내고 이곳을 도심 텃밭으로 바꾸는 준비를 도왔어요. 이 밖에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 2016.5.
지난 2019년에는 인근 농지를 매입해 쇼핑몰과 주택단지로 바꾸려는 도시계획에 맞서 '농지 지키기 청원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저는 이곳 출신은 아니지만 여기서 15년을 살면서 지역개발의 장단점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중략) 식량 생산은 우리 지역의 특권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은퇴하는 농민들은 그들의 농지를 개발업자에게 비싼 값에 팔고 싶어 하지만, 젊은 농민들은 새로운 농사의 혁신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토양 재생 및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하며, 종 다양성을 확보하고, 놀라운 농촌관광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농장 홈페이지, 2019.11.
어느 정치인의 말이 이보다 더 설득력 있고 간절하게 와닿을 수 있을까. 18년 차 농민 제이슨 므라즈는 그렇게 과일 숲을 가꿔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빠짐없이 나무를 심고 가꿀 때
국제연합(UN)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으로 지난 2015년 파리 협약을 이끌어낸 크리스티아 피게레스 여사는 최근 저서를 통해 나무 심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후변화 대응책으로 나무 심기만큼 중요하고 시급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은 거의 없다. 나무는 아득한 옛적부터 존재해 온 탄소 흡수 장치로, 어려운 첨단 기술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안전하며, 매우 저렴하다.
그녀는 최근 나무 심기가 탄소배출의 속죄행위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빠짐없이 나무를 심고 가꿀 때 30년 뒤 우리 미래는 이렇게 바뀔 수 있다고 예측한다.
때는 2050년, 세계 대부분 지역의 공기가 촉촉하고 상쾌하다. 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숲속을 걷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실제 숲속을 걷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기가 산업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해졌다. 나무 덕분이다. 주변 사방에 나무가 있다.
- 한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 중에서, 2020.
봄기운이 언 땅을 녹이고 있다. 식목일은 20일 가량 남았지만 나무 심기는 지금이 적기라고 한다. 이 또한 한반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올봄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심어보자. 한 그루 한 그루씩 꾸준히.
[참고자료]
Lorenzo Brenna, '"The Soil Story", told by Jason Mraz' (Lifegate 누리집, 2015.9.1)
Tayler, '83: Jason Mraz Part 2: Farming on the Road' (The Urban Farm 누리집, 2016. 5.26)
Margaret Badore, 'Jason Mraz Is Serious About Growing His Own Food' (Treehugger 누리집, 2019.3)
Jason Mraz, 'Save South Morro Hills Farming' (Mraz Family Farms 누리집, 2019. 11.6)
크리스티나 피게레스, 톰 리빗카낵 (홍한결 옮김) '한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 (김영사, 2020)
다큐멘터리 영화 'Kiss the Ground' 공식 누리집
제임스므라즈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