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의 역사를 간직한 초등학교를 검찰청과 법원의 이전 신축을 위해 통폐합시켜달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논란이다. 현재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법원(논산지원)과 검찰(논산지청)이 논산시로 이전하려 하자 일부 단체가 강경읍 요지에 위치한 강경중앙초(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를 폐교해 부지를 제공하자며 나선 것이다.
지난 2월 24일 오후 강경읍사무소 3층 대회의실. 강경읍상생발전협의회가 주관한 '강경중앙초 통폐합 관련 학부모 및 주민설명회'가 개최됐다. 주민 17명과 강경읍 주민자치원장, 충남JC 회장, 논산시의원, 일부 강경중앙초 운영위원 등 약 30여 명이 참석했다.
강경읍사무소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생긴 일
강경중앙초(교장 최충식)는 1905년 개교, 논산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현재 53명(초등 43명, 유치원 10명)이 재학 중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 신사참배거부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학교 강당인 보명관은 등록문화제 60호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이다.
이날 복수의 참가자들에 따르면 박강희 주민자치위원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박 위원장은 강경읍의 연령별 취학 예정 학생 추이를 설명하며 "이대로라면 3년 후에는 학생 수가 급감한다"며 강경중앙초의 통폐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기호엽 전 강경상고 교장이 나섰다. 그도 "강경중앙초등학교뿐만 아니라 강경여중과 강경중도 통폐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통폐합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면서 "강경읍의 인구수가 8000명인데 강경에 있는 법원(논산지원), 검찰청(논산지청)이 (강경읍 밖으로) 이전하면 5000명도 깨질 것"이라며 "강경중앙초는 폐교해 인근 다른 학교와 통폐합하고 법원과 검찰청을 강경중앙초 부지로 옮겨 논산 이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중앙초를 폐교해야 한다는 이유 중 하나로 '법원과 검찰청 논산 이전을 막기 위한 부지 제공'을 든 것이다.
그는 이어 통폐합에 따른 혜택을 20여 분 넘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특히 "강경 산양초나 황산초 중심으로 통폐합하고 중앙초 학생들은 통학버스를 이용하면 된다"며 "학생 수가 30명 미만이 되면 통폐합을 추진하게 돼도 지원금 33억 원 등 혜택을 절대 받을 수 없다, 통폐합으로 학생들이 통학버스를 타야 하는 문제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 전 교장은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이은 자유발언에서 한 참석자는 "걱정하지 말고 통폐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사실상 강경중앙초 통폐합 추진을 선언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다짐 대회 자리가 된 것이다.
일부 동문-학부모 "검찰청, 법원 부지제공 위한 '학교 폐교'가 교육적?"
이후 강경중앙초 통폐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강경읍상생발전협의회는 통폐합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법원(논산지원)과 검찰청(논산지청)이 노후화하고 협소해 새 부지를 물색하고 있는데 이들 기관이 강경읍을 떠나지 못하도록 강경중앙초를 폐교하고 부지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앙초는 학생 수가 적어 교육 환경이 낙후되었고, 향후 학생 수가 더 줄 것이 예상된다"며 "빨리 통폐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또 "(시설도 좋아지고 지원금도 많이 받을 수 있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통폐합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비교육적인 이유로 불거진다면 학생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동문과 학부모들이 우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강경중앙초 동문은 "검찰청과 법원 이전신축을 위해 116년 역사를 간직한 학교를 폐교하는 게 교육적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학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420여 세대 임대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며 "학교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때에 비교육적 이유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명관(학교 강당, 1937년 건립)까지 허물어야 하느냐"고 거듭 되물었다.
강경중앙초와 중앙초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중앙초는 맞벌이 가정 자녀 돌봄 편의를 위해 저녁까지 운영하는 충남형 초등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학급당 학생수도 많지 않아 오히려 만족도가 높다"며 "검찰청과 법원의 논산 이전을 막기 위해 학교 폐교를 추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법원과 검찰청에는 학교 아닌 다른 부지 제공해야"
일부 동문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졸업생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116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학교를 폐교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 졸업생은 "검찰과 법원의 이전 터를 제공하기 위해 학교가 통폐합된다면 강경읍의 교육 역사 한 부분이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강경중앙초 관계자도 "작은 학교의 장점을 살린 개별 수업과 특성화 프로그램 운영으로 학생 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학생 수도 50명 이상으로 통폐합 대상 학교도 아니다"며 "법원과 검찰청에는 학교가 아닌 다른 부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중앙초는 1905년 4월 2년제 사립학교인 보명학교로 개교했다. 이후 강경공립보통학교(1907), 강경중정공립심상소학교(1938), 강경중립공립국민학교(1941), 강경제일공립국민학교(1946), 강경제일국민학교(1946), 강경중앙국민학교(1946)로 교명을 변경, 한국근현대 교육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이 학교 강당(보명당)은 1937년 건립됐는데 근대 시기 교육 시설 중 강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어 2003년 등록문화재(제60호)로 등록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