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들의 SNS 계정이 지워졌다고 울먹이며 전화했다. 1년여 접속기록이 없자 아들의 SNS는 휴면 상태가 됐다. "여전히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2월 22일 경북 경산에서 시작해 약 380㎞의 도보행진에 나선 고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재(54)씨는 아내의 전화를 받은 16일 저녁, 막걸리 반병을 비웠다.
아들 정유엽(당시 17세)군은 지난해(2020년) 3월 18일 영남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40도를 오르내리며 호흡곤란에 시달리던 정군을 민간병원은 '코로나가 의심된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정군은 결국 14번이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최종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그 사이 정군은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채 병원을 전전하다 폐렴으로 숨졌다.
17일 오전 10시 대림역에서 정성재씨가 24일차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날 도착지는 서울 서대문 정동사거리. 애초 정씨의 계획은 광화문광장에 도착해 다음날인 18일 청와대로 향하는 거였지만, 정부의 불허 조치로 서울역, 서부역을 거쳐 정동사거리로 가야 했다. 청와대 사랑채로부터 2.3km 떨어진 정동사거리가 그에게 허락된 최대치였다.
앞서 정씨는 직장암 3기의 몸으로 아들의 응급처치를 거부했던 경북 경산중앙병원에서 김천, 영동, 옥천, 대전, 세종, 천안, 평택, 오산, 안양을 거쳐 지난 16일 서울에 도착했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정씨와 대림역~영등포역을 함께 걸었다.
"
정유엽 사망,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야"
100여명의 사람들이 도보행진에 참여했다. 정유엽군의 죽음이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의료공공성의 공백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데 공감한 사람들이었다. 코로나 검사를 14번 받으며, 제때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정군의 일이 언제든 자기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었다.
요양보호사, 간병인, 병원 사업장 등을 포괄하고 있는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정유엽군의 사망은 공공의료 부재로 생긴 의료사고"라고 말했다. 그는 "1년 동안 유족이 나서서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국내 트랜스젠더 1호 변호사로 알려진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도 도보행진에 동참했다. 그는 "성소수자 역시 코로나 시기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병원들은 이들의 치료를 거부했다"라면서 "의료공백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건 결국 소수자"라고 주장했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아래 인의협) 인권팀장은 "지역에 살았던 건강한 고등학생이 코로나로 의료공백을 경험하고 사망에 이르렀다"며 "사회적·경제적 자산이 취약한 이들이 코로나 시기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 나간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코로나 3차 대유행때마저도 공공의료 확충·보완책은 미비했다"면서 "정부가 위기 상황을 모면하는 정책이 아니라 민간병원 위주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도보행진에 동참한 이들은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9인씩 떨어져 걸었다. 집합금지 조치에 따라 식당에서 밥을 먹는 대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고, 마스크를 쓴 채 대화를 최소화하며 묵묵히 걸었다.
서울 도심에서의 도보행진은 만만치 않았다. 영등포 경찰서는 이들 곁에서 "지자체에서 감염병 법률(감염병의 예방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에 따라 금지한 집회를 하고 있다"라며 경고방송을 했다. 정씨는 "24일 동안 걸으며, 경찰이 경고방송을 한 건 처음"이라며 "청와대가 가까워져서 그런가 경찰의 경계가 심해진 거 같다"라고 말했다.
뭐든 바꿔보겠다, 길 나선 아버지
|
▲ 고 정유엽 아버지, 청와대까지 337km 보도행진 나선 이유
|
ⓒ 유성호 |
관련영상보기
|
열개가 넘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육교를 지나던 정씨가 "내일 어떤 답변이라도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아들의 죽음과 관련해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지난 1년, 그는 아들의 죽음이 의료공백 때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수십차례 공공의료 공백과 관련한 토론회에 참석해 아들의 죽음을 설명했다.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정당을 찾아다니며 탄원서를 제출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정씨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정군의 죽음은 하나의 사례일 뿐 전체 의료공백을 문제 삼기는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엽이 하나로는 부족하고,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만 공공의료 문제를 돌아볼 수 있다는 건가." 정씨가 되물었다.
그는 의료진에게 공식 사과를 받은 건 '딱 한번'이라고 했다. 며칠 전, 도보행진 후 이뤄진 간담회에서 경기의료원 수원병원 정일용 원장은 정씨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K방역의 성과 뒤에 의료 공백이 있었다고 인정한 병원장의 말에 외려 힘을 얻었다"고 했다.
두 시간을 걸어 정오가 넘어서야 영등포역에 다다랐다. 민주노총 관계자 대여섯명이 영등포역 광장에서 떡과 차를 준비하며 이들을 맞이했다. 정씨는 "우리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이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내 아들 한 명이 죽었다고 나만 억울하다고 나선 길이 아니다. 의료서비스가 사회 취약계층을 방치하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도보행진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함께 10여 개국 이상을 여행하며 속내를 털어놓던 아들은 세상에 없지만, 아버지는 '제2의 정유엽'이 없도록 뭐든 해보겠다며 24일을 걸었다. 이제 하루 남았다. 18일, 아들이 죽은 지 1년 되는 날 아버지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 설 생각이다.
정씨는 "지금까지 도보행진 출발 전에 한마디씩 하고,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했지만 당장 내일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눈물만 흘리게 될 거 같다"라고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