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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부쩍 게으름이 늘었다. 물론 원래부터 그다지 부지런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책 읽고, 영화 보고, 글 쓰고 등등 돈 안 되는 취미 생활에 있어선 제법 빠릿빠릿하던 나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요 몇 주간은 뭘 하더라도 시들시들 영 재미가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집콕' 생활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탓이려니 짐작만 하고 있던 찰나,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 하나가 나의 이 몹쓸 게으름을 향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등단을 향한 집념의 시간, 그 결과
 
석 달 전쯤, 나는 작은 공모전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석 달 전쯤, 나는 작은 공모전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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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 날이라 느지막이 일어나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뒹굴고 있을 때였다. 별생각 없이 티브이 리모컨을 들고 여기저기 돌려대다 말고 손을 멈췄다. 케이블 채널에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예능 프로의 재방송이 한창이었다. 마침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유재석이 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한 우물을 파는 것과 여러 우물을 파는 것 중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의 대답은 저마다 달랐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당연히 한 우물을 파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하죠." 확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요즘 시대에 한 우물만 파서는 비전이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같이 일리가 있는 소리라 그 누구의 말이 옳다고 쉽게 판가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 나로 말하자면, 한 우물을 이십 년 가까이 판 사람이다.

나는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그리고 '프로 응모러'라 나를 소개해도 될 만큼 나는 긴 세월 소설 공모전에 매달렸다. 대학 졸업 후에 학원 강사로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매년 신춘문예의 소설부문 응모에 빠짐없이 도전했고, 또 매번 탈락의 쓴맛을 보았다. 그래서 매번 그해 신춘문예 당선작이 신문에 실리는 1월 1일이면 몸도 마음도 여지없이 욱신거려서 며칠을 내리 끙끙 앓곤 했다.

지금 내 노트북에 저장된 단편 소설은 어림잡아 육십에서 칠십 편 정도다. 보통 시중에 나와 있는 한 권의 소설집에 열 편 정도의 단편이 실린다고 계산하면 나는 대략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 일곱 권의 책을 쓴 셈이다.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나는 기분전환 삼아 다른 장르의 글을 쓰기도 했다. 칠십 분 분량의 드라마 대본도 다섯 편이 넘게 썼고, 동화도 썼고, 희곡도 썼다. 서평도 영화 감상평도 에세이도 가리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재능이란 성실함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내가 '한 우물'을 파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누구보다 성실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기약 없는 희망 고문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작년에 서른아홉 살이 되었을 때, 나는 결심했다. 딱 올해까지만 죽기 살기로 해보기로. 마흔이 되거든 어차피 읽어 줄 사람 없는 소설 따위는 다신 쓸 생각도 말고, 월급 받고 하는 일이나 잘하자고.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2020년 12월 그러니까 석 달 전쯤, 나는 작은 공모전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당선을 알리는 문자를 처음 받았을 땐 내 눈을 의심했다. 편집장으로부터 수상 소감과 책에 실릴 프로필 사진을 준비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한편으로는 '혹시 이거 사기 아니야?' 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1월, 내 수상작이 수록된 책이 발간되었다. 이제 창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계간지긴 하지만 분명 내 사진이 실려 있고, '신인상 수상 작가'란 글자 옆에 내 이름도 떡하니 박혀 있었다. '오지랖 넓은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수상 소감 역시 한 지면을 차지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한편 맥이 탁 풀리면서 허탈해졌다.

다음 목표는 드라마 작가다
 
마흔다섯이 되기 전에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겠다는 새로운 우물을 찾아 나서보려고 한다.
 마흔다섯이 되기 전에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겠다는 새로운 우물을 찾아 나서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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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한 우물'에 관한 저마다의 담론들을 듣다 말고 정신이 번쩍 든 것은 내가 요즘 들어 전에 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십 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다가 이제 겨우 찔끔, 하고 이슬이 맺힌 걸 보았는데 나는 덜컥 겁이 나는 모양이다.

머지않아 콸콸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든가 아니면 몇 방울 이슬을 끝으로 더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바짝 마른 커다란 돌덩이를 만나게 되든가 양단간에 결판이 날 텐데 나는 그 끝을 확인할 자신이 없다.

결국, 내 꿈의 결말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낭비했던 것이다. 슬그머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한번 미끄러지고 자빠질지언정 이렇게 비겁한 뒷걸음질이라니.

며칠 전, 나는 드라마 대본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마흔 되기 전에 소설로 등단하겠다는 꿈이 현실이 되었으니 이제는 마흔다섯이 되기 전에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겠다는 새로운 우물을 찾아 나서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밀가루를 끊어보려 노력 중이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그 흔한 말이 실상 '인내심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남들보다 오래오래 살아서 남들보다 더 오래오래 써볼 작정이다. 재능이 어설프다면, 지구력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실패라면 이가 갈릴 만큼 많이 겪었지만, 새롭게 도전할 분야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오늘은 문득 내가 스무 살에도 또 서른 살에도 궁금했던 것, 그리고 이제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궁금한 그것에 대해 아무나 붙들고 하소연하듯 묻고 싶은 날이다.

"나는 이다음에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태그:#나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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