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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 지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그중에 엄마들이 가장 힘들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은 답답함 정도 참으면 된다. 그러나 엄마들은 답답함 더하기 하루종일 가족들의 의식주 생활을 돌봐야 한다. 특히 아이들이 어린 엄마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코로나에 발목 잡힌 일상

나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부분적으로 주부 파업을 하고, 가족들이 그것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주말에 딱 한 번 로봇이 청소를 한다. 빨래도 주말에 몰아서 한다. 옆지기가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세탁이 끝나면 꺼내서 건조기에 넣는다. 누군가 다 된 빨래를 꺼내서 개든지 말든지 자유롭게 한다. 필요한 사람이 하면 되는 거다. 

밥하는 것도 옛날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주말에 옆지기가 냉장고에 채워 넣은 재료를 가지고 일주일을 산다. 부족한 것은 둘째 아들에게 부탁하면 군말 없이 사 온다. 25년 만에 누려보는 상팔자다. 이렇게 살아도 큰일 나지 않는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청소에 빨래에 밥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는지.
 
가사노동
 가사노동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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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그럼 너는 뭐하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난 이제 집안일이 지겨워졌다. 25년 동안 집에서 논다는 소리를 들으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지쳤다. 그래서 엄마 파업을 선언했다. 옆지기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한다. 이제부터는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자고 한다. 

그는 많은 부분 가사 일을 솔선수범한다. 주말에는 내가 하던 일을 그가 대신 한다. 힘든 표정 하나 없다. 오히려 즐거워 보인다. 그는 50여 년 동안 엄마가 형수가 아내가 해준 밥을 먹으며 부엌과는 별 상관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장을 봐서, 다듬고 씻고 자르고 끓이고 볶고 무치고 조리고... 부엌은 그에게 신세계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하는 것이 힘들다. 아니, 솔직히 가족이라는 짐이 무겁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왜 내 어깨가 이렇게 무거울까 생각했었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의 어깨가 무겁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남편까지 짐이 되어 내 어깨에 떡하니 얹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자립적이 되어 많이 가벼워졌지만.

나 홀로 집에

옆지기는 휴가를 내고, 막내는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둘째는 하던 공부를 잠시 내려놓고 2박 3일 남원 여행을 계획했다. 그는 나에게 몇 번이나 같이 가자고 한다. 둘째도 엄마는 안 가느냐고 물어본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집콕 탈출이냐, 가족 탈출이냐. 

결국 나는 가족 탈출을 선택했다. 집콕 탈출보다 가족 탈출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래 아이들과 남편으로 도배된 삶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려나 싶었을 때, 코로나가 다시 발목을 잡았던 시간이 벌써 1년 3개월이다. 이것이 가족여행에서 살짝 빠져나와 혼자가 될 수 있는 기회, 꽉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5년 만에 나 홀로 집콕! 해방이다! 그런데 웬일? 그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2박 3일 여행길에 12번이나 전화를 한다. 연신 사진도 보내온다. 같이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홀로 있는 나에 대한 배려였을까. 좋게 좋게 생각하자.

밥 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내 일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밥 먹는 것도 잊어 먹고, 영화 리뷰를 쓰며 저녁 8시를 훌쩍 넘긴 게 흐뭇하기까지 했다. 아이들과 함께였다면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어스름 저녁 남원의 광한루, 여행중 둘째가 보내온 사진이다.
 어스름 저녁 남원의 광한루, 여행중 둘째가 보내온 사진이다.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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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여행에서 돌아온 막내가 묻는다. 

"엄마, 나 안 보고 싶었어?"

참 눈치 없는 질문이다. 가족의 일을 잊고 혼자가 되고 싶다는 내 말을 솥에다 삶아 먹었나. 대답하기도 난처하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막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혼자 있어서 좋았어!"

속히 코로나 일상에서 벗어나길

지금은 또다시 아이들과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일상이다. 설거지하는 아들 등 뒤에서 안아 주기도 하고, 막내의 노래에 화음을 넣기도 하며, 때로는 아이들의 짜증에 짜증으로 화답하는 나날이다. 오늘은 둘째가 점심 밥상에 대해 불평 아닌 불평을 한다.

"오늘도 또 달걀찜이야?"
"왜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엄마가 해 주는 거 먹기 싫으면 사 먹어. 너희들 여행 간 사이 내내, 난 밥 한번 안 하고 지냈어. 청국장, 김치, 김만으로도 충분했거든. 나도 너희들 밥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야. 밥을 해주고도 욕먹으니, 원!"


투닥투닥, 왁자지껄, 때로는 부글부글! 좁은 공간에서 가족과 집안일에 매몰된 일상!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코로나 일상, #고달파진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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