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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병 치료차 입원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지난 7월 2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병 치료차 입원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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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사면을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며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혜량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박근혜 사면 명분 '국민 화합'... "이명박과 박근혜는 다르다").

이로써 2017년 4월 구속기소된 박씨는 4년 8개월 만에 영어의 몸에서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 1월 14일 대법원에서 징역 22년을 선고받았으니 전체 징역 중 4분의 1도 채 못 채운 셈이다.

공약도, 촛불민심도 무시한 결정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29일, 첫 특별사면을 결정하면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범죄와 반(反)시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지킨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그러한 공약은 이번 사면으로 인해 반박되게 됐다. 박씨는 뇌물죄로만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공약을 어긴 것만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평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촛불정부라 자임하며 적폐청산을 부르짖어왔다. 지난 2017년 9월 뉴욕에서 '2017 세계시민상'을 수상할 때는 "나는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을 맞아가며 자발적으로 모인 수십, 수백만 명의 '촛불 민심' 중 상당수가 문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 대통령이 촛불시위에 모인 시민들의 염원을 부정하는 것마저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박근혜 구속'을 외친 수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결말을 원하고 문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런 결정을 해놓고선 촛불혁명, 촛불정부를 운운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아직도 억울하다는 박근혜

심지어 박씨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진심 어린 사죄 역시 없었다.

박씨는 자신의 지지자들로부터 온 편지에 답장을 보내며 "거짓은 잠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세상을 속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그 모습을 반드시 드러낼 것으로 믿고 있다", "선동은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 생명이 길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신을 향한 시민들의 비판을 거짓과 선동으로 치부했었다. 이런 사람을 사면하는 건 촛불민심을 향한 모욕이자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적어도 본인 임기 내에서만큼은 이런 결정을 해서는 안 됐다. 설령 차기 대통령이 사면을 결정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됐든 박씨와 관련된 문제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는 데 중요한 이슈는 비교적 아니었을 테니, 논란은 있을지언정 자신을 뽑은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경우는 다르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기까지의 맥락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박씨의 법적 처벌을 향한 촛불민심이었다. 문 대통령은 박씨의 구속을 두고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정의와 상식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드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4년이 넘게 흐른 지금, 문 대통령에게 있어서 그날의 준엄한 명령은 명을 다한 것인가. 이번 사면 결정은 문 대통령이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사면이 불러일으킬 파장...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

게다가 박씨의 사면은 단순히 개인이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직도 극우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소위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탄핵반대론자들이 적지 않다. 박씨를 사면하지 않았다면 알아서 자연히 힘을 잃을 이들이었다.

그런데 박씨가 사면됨에 따라 그들이 다시 사회에 준동할 가능성이 생겼다. 국민의힘에서 그들의 목소리의 비중이 커질 수도 있다. 이는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을 겪는 차원을 넘어서서, 국민의힘이라는 한국 사회의 거대 정당이 도로 '탄핵 논쟁'으로 퇴행함에 따라 야기되는 사회적 부담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결국 문 대통령의 이번 사면 결정은 촛불민심과 본인의 지지자들을 향한 정치적 배신이자 박씨 사면이 불러일으킬 사회적 부담을 망각한 결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2017년 3월 14일 민주당 대선토론회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토론 장면.
 2017년 3월 14일 민주당 대선토론회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토론 장면.
ⓒ 강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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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3월 2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7차 토론회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경선 후보는 이재명 당시 대선경선 후보의 "박근혜, 이재용 사면 금지 약속을 혹시 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박근혜, 이재용 사면불가 방침 함께 천명하자'고 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국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박씨 사면 결정이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올바른 '국가 지도자의 자세'인가? 필자는 아니라고 단언하겠다.

태그:#문재인, #박근혜,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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