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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기도회' 소식을 전하는 1975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정의구현사제단은 당시 지학순 주교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꾸준히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기도회" 소식을 전하는 1975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정의구현사제단은 당시 지학순 주교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꾸준히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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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은 2월 6일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제4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고난의 의미, 희생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진리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우리는 이 땅의 정의구현과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를 계속하여 왔다. 우리의 기도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차라리 몸부림이었고 하나의 실천이었다."고 전제한 '선언'을 발췌한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 지학순정의평화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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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계속하면서 우리가 본 것은 광정(匡正)되어가는 현실이 아니라 더욱 비인간화되어가는 역리(逆理)의 현실이었다. 이 사회의 부정의(不正義)와 비양심의 농도는 없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되고 심화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자가의 의미는 묵상으로서만 아니라 몸으로서 체득할 것을 현세는 강요하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가를 뜨겁게 깨달을 수 있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와 수난을 통한 구원의 길은 더욱더 멀리서 빛났다.

그리스도교 사랑과 관용의 질서는 그 관용 자체를 파괴하려는 이와 같은 독재체제나 전체주의만은 관용할 수 없다. 따라서 결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와 같은 체제를 우리가 받아들일 때 그 현실적 결과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용에 본질적으로 위배되는 결과가 된다.

양심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현세의 권력은 하느님과의 양심의 대화마저 권력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서 이 땅의 인권회복과 민주회복을 하느님의 소명으로 확인하였다. 인권회복은 정치권력의 무한한 횡포로부터 우리의 기본적 인권을 찾자는 것이다. 이 땅의 인간회복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자는 것이며 이 땅의 민주회복은 독재정치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자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인간적 요구다.

이 인간적 요구에 대한 정치적 응답이 이른바 국민투표라는 것이다. 국민투표는 국민의 최소한의 인간적 요구를 원점으로 환원시키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국민투표의 과정과 결과는 현재의 상황과 법제, 그리고 그것을 획책하는 사람들의 속성으로서는 예정된 표석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다. 하느님의 교회는 양심을 거부하는 무리들에게 눈의 가시로 투영되고 있다. 하느님의 교회는 폭풍 속의 언덕 위에 지금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과 진리의 발언은 계속될 것이다. 이 땅의 정의 실현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괴로움이 가득한 이 어두운 현실에서 촛불을 밝혀 들고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맡겨진 양떼들의 길을 비추어갈 것이다. 

인권회복, 인간회복, 민주회복은 체제와 정권의 차원을 뛰어넘는 인간적 양심의 요구다. 우리의 양심은 외친다. 우리 겨레는 지금 노예로 가는 길목에 끌려가고 있다. 양심의 요구를 거부함은 사탄의 길을 선택함을 의미할 따름이다. 우리는 모든 현세의 음모와 박해에도 우리의 기도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의 관심과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공동의 신앙에서 우러난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제4시국선언의 정신에 따라 우리의 결의를 밝힌다.

                             우리의 결의

1. 우리는 대구대교구 기도회에서 발표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국민투표 거부 결의를 재천명한다.

2.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양심에 따라 인권회복, 인간회복, 민주회복의 노력을 국민투표와 관계 없이 계속한다.

3. 우리는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을 거듭 지지하며 또한 인간의 양심을 탈환하고 방위하는 양심선언운동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4. 가혹한 언론 탄압에 뒤이은 종교와 신앙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하느님의 교회와 양심,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지킨다.

5. 우리는 부정과 부패, 독재와 정보정치를 거부하며 이 사회에 충만한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 광정(匡正)한다.

6. 우리는 하느님의 모든 백성과의 화해에 솔선하며 특히 억압받고 찌들은 약자에의 관심과 화해에 주력한다.

7. 우리의 기도와 실천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비폭력, 무저항, 평화적인 방법으로 계속한다. (주석 4)


주석
4> <암흑 속의 횃불>, 301~303쪽.(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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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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