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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관광을 할 때 여행 가이드가 해준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널리 알려진 얘기였다. 이야기의 내용인즉슨 비엔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이 도시와 관련된 두 명의 역사적 인물에 관한 것이다.

여섯 살의 모차르트는 비엔나 쉔부른 궁전에 초청돼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의 천재성에 경탄을 금치 못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그의 소원을 물었더니, 모차르트는 자기보다 두 살 연상인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와 결혼하고 싶다고 해 또 한 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앙투아네트 공주는 후일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는데, 만일 그녀가 모차르트와 결혼했더라면 비록 가난한 음악가의 아내로 살았을지언정,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는 빈 사람들의 안타까움이다.

다른 한 명은 이 글에서 얘기하려는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는 원래 독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라는 도시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화가의 꿈을 안고 비엔나로 상경해 예술학교 입학시험을 몇 번을 치르나 끝내 합격을 하지 못한다.

당시 히틀러를 합격시켰더라면 그가 엉터리 화가가 됐을지언정, 2차세계대전은 일으키지 않았으리라는 빈 사람들의 안타까움이다. 1907년 시험을 치르러 빈에 온 히틀러는 식비를 아껴가면서 일주일에 몇 번 씩이나 오페라 극장 등에 둘러 바그너 오페라를 보고 또 봤다고 한다.

히틀러는 일면 열정적인 예술 애호가였던 셈이다. 히틀러가 좋아한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점도 있지만, 내 경우 바그너의 오페라처럼 듣기 힘든 음악도 없다. 탄호이저 또는 결혼행진곡 등 익숙한 곡도 있지만, 그의 아리아는 고압적인 느낌을 준다.

비슷한 시기 이태리 베르디의 오페라, 가령 '라트라비타' 등이 듣기에 편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그너 마니아들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면박을 주겠지만, 히틀러가 바그너의 광팬이었다고 하니, 바그너의 음악에 더욱 호의적이지 않게 된다.
 
비엔나의 호프부르크 왕궁 발코니는 히틀러가 빈 입성을 한 직후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비엔나의 호프부르크 왕궁 발코니는 히틀러가 빈 입성을 한 직후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 양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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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예술학교를 수차례 떨어지고 한때 '루저'의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여년 후 비엔나로 개선(?)하여 돌아온다. 1938년 3월13일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히틀러는 군중들의 환호 속에 빈에 입성했다.

비엔나의 호프부르크 왕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대 황제들이 살아왔던 곳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 역시 이곳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다. 왕궁 앞 너른 광장에는 16세기 초반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을 물리친 오이겐 왕자의 기마상이 있다.

광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왕궁의 발코니는 히틀러가 빈 입성을 한 직후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곳서 오스트리아 병합을 선언하고 선동적인 연설을 이어간다. 군중들은 광장서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열광한다. 환호하는 군중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프랑스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이 장면을 담은 필름 속 군중의 박수 소리가 너무 획일적이고, 힘차고, 용솟음치는 듯하여 과연 그것이 당시 똑같은 군중의 것인지 의심을 품는다. 나치는 많은 영화감독, 편집인, 촬영기사, 음향기사, 기술자를 고용해 기록영화 등을 제작한다.

뷔야르에 의하면 박수 소리는 나중에 영상에 첨가된 것이고 소위 후시 녹음의 결과다. 히틀러의 등장에 맞춰 미친 듯 울려 퍼진 박수 소리 중 어느 하나도 우리가 실제로 들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상들은 나치 선전상인 요제프 괴벨스가 기획한다. 괴벨스는 히틀러의 정치가 옳은 것인지 선한 것인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심지어 그게 거짓말일지라도 이를 독일 국민과 전 세계를 향해 어떻게 감동적으로 아름답게 꾸며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이를 '정치의 미학화'라고 한다. 윤리를 미학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히틀러는 자기가 애호한 예술, 대표적으로 바그너 오페라의 비장하고 웅혼한 멜로디들을 자신의 정치에 자주 이용했다. 바그너뿐만 아니다.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조차 전쟁의 공격성을 찬양하는데 활용한다.

일본 군국주의 역시 "짧은 인생 다음, 사쿠라 꽃잎처럼 아름답게 저라"면서, 전쟁이나 살육을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꾸미고자 벚꽃의 미적 가치를 활용한다. 일제 때 시인 서정주는 필리핀 레이테 만에서 '옥쇄'한 조선인 가미가제 특공대를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태그:#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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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재한 피사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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