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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지난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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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덫'에 걸려 비틀거리고 있다. 자칫하면 '통일교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정국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0월 31일의 중의원선거와 올해 7월 9일의 참의원선거에서 잇달아 대승을 거두면서 '장기 안정 정권'을 구가하는 듯했다. 일본 정치권과 매스컴에선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는 한, 다음 참의원선거 때까지 3년 동안 선거 걱정 없이 자신의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뜻에서 '기시다의 황금의 3년'이 시작됐다고까지 평가했다.

그러나 참의원선거 전날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되면서 이런 계산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암살범 야마가미 데츠야가 통일교에 대한 원한으로 아베 총리를 저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특히 아베파와 깊은 유착관계가 연일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이것이 통일교에 대해 나쁜 감정을 지니고 있던 일본 시민의 가슴에 불을 붙이면서 기시다 정권에까지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일본 시민들은, 통일교가 일본에 진출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헌금 강요와 비싼 물품 판매로 가정파탄까지 일으키면서 교세를 확장하는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자민당이 이런 '못 된 종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니 용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아베 암살을 계기로 급속하게 전사회적으로 형성됐다. 물론 이런 분위기가 확산된 데는 통일교가 한국에서 발원한 종교라는 사실에서 유래한 '반한 감정'도 작용했다. 

일본의 민심, 기시다 정권과 멀어지다
 
지난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각료들이 도쿄 총리 관저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떠나고 있다.
 지난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각료들이 도쿄 총리 관저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떠나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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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가 기시다 정권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고 있는지는 <아시히신문>의 8월 29일 여론조사가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직전의 7월 조사보다 무려 10%p나 빠진 47%를 기록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용이다. 기시다 총리의 통일교 문제에 대한 대응을 묻는 질문에, 긍정평가의 의미를 가진 '평가한다'는 대답(21%)보다 부정평가에 해당하는 '평가하지 않는다'(65%)는 답변이 3배 이상 높았다. 심지어 기시다 정권 지지층에서도 '평가하지 않는다'(48%)는 사람이 '평가한다'(37%)보다 훨씬 많았다. 정권을 지지하는 않는 응답자층 중 89%는 부정평가 의견을 냈다.

아베 국장에 대한 찬반 조사에서도 반대 응답(50%)이 찬성 응답(41%)보다 많았다. 이것은 죽음에 관대한 일본 사회의 관행과 매우 다른 현상인데, 통일교 문제가 아베 국장 문제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여론 흐름이 <아사히신문>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도통신>의 7월 30~31일 여론조사에서도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51.0%로 직전 조사에 비해 12.2%p 급락했다. <요미우리신문>의 8월 5~7일 여론조사에서도 57%의 내각 지지율을 보여 직전 조사 대비 8%p 떨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개각 직후인 8월 10~11일 긴급 전화 여론조사를 다시 실시했는데 여기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51%를 기록했다. 8월 5~7일 조사보다 6%p나 더 하락했다. 이 지지율은 <요미우리신문> 조사로 볼 때 지난해 10월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최저치다. 이런 전반적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통일교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다.

통일교 문제, 딜레마
 
왼쪽부터 기시 노부오 안보당담 총리보좌관(전 방위상), 하기우다 고이치 정조회장(전 경제통산상).
 왼쪽부터 기시 노부오 안보당담 총리보좌관(전 방위상), 하기우다 고이치 정조회장(전 경제통산상).
ⓒ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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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내 역학 구도상 이를 확실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게 기시다 총리의 딜레마이자 한계다. 우선 통일교와 접점을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의원들은 최대 파벌인 아베파다. 기시다 총리는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위해서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일 단행한 개각에서도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 의원이 6명이나 입각을 했고, 관련이 있는 각료 2명이 총리실(기시 노부오 안보담당 총리보좌관, 전 방위상)과 당(하기우다 고이치 정조회장, 전 경제통산상)의 요직에 기용됐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아베파 소속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시다 정권 앞에 닥친 문제는 통일교 문제뿐이 아니다. 찬반이 확실하게 갈리는 원전 재가동, 아베 국장(9월 27일) 등의 곤란한 현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역전의 노장인 오카다 가쓰야를 간사장, 아즈미 준을 국회대책위원장에 다시 포진하는 등 대결 자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은 그동안 미적미적대던 자세를 바꿔 지난 27일 소속 의원들 전원을 상대로 통일교 관련을 조사해 9월 초에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조사가 시민들이 바라는 속 시원한 결과를 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에도 악영향

기시다 정권의 급속한 지지율 하락은 일본 정국 운영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한일관계 개선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선 일본도 어느 정도 한국을 달랠 수 있는 양보가 필요한데, 지지율 하락은 이런 양보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두고 한국의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추락을 걱정하던 일본이 거꾸로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신경써야 하는 처지에 몰린 형국이다. 이 현상을 보니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태그:#기시다 후미오, #통일교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자민당,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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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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