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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여름 김자동 회장의 아버지 김의한이 장시성 우낭현의 쑨원기념 중산도서관 관장으로 일할 때 도서관 앞에서 찍은 사진. 앞줄 왼쪽 넷째가 어머니 정정화, 다음이 아버지 김의한이다. 그 앞 소년이 김자동 회장
▲ 쑨원기념 중산도서관  1936년 여름 김자동 회장의 아버지 김의한이 장시성 우낭현의 쑨원기념 중산도서관 관장으로 일할 때 도서관 앞에서 찍은 사진. 앞줄 왼쪽 넷째가 어머니 정정화, 다음이 아버지 김의한이다. 그 앞 소년이 김자동 회장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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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동의 어릴적 이름은 후동(厚東)이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김후동이라 불렀다. 대부분 만리타국에서 독신으로 지내던 터라 후동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다시피 하였다. 그는 노령에 이르러도 자기는 '임시정부의 소년'이라고 자부했다. 자서전의 명칭도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이라 지었다.  

자서전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평생을 임시정부에 대한 기억을 품고 살았다.
 임시정부는 내 삶의 뿌리였고, 살아가는 질의 좌표였다. 
(주석 4)

김자동은 백범 김구에 대한 호칭과 관련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나는 임정 어른들 품에서 귀염둥이로 자랐다. 우리 민족이 존경해마지 않는 백범을 '아저씨!'라고 불렀으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있겠는가. 내가 백범을 아저씨라고 부른 연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백범을 형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형님이면 내겐 절로 큰아버지뻘이 된다(이렇다보니 백범의 자식, 특히 둘째 신(信)을 나는 자연스럽게 형이라 불렀다).

백범의 오른팔로 불린 일파 엄항섭 선생도 백범을 형님이라 부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임정의 다른 사람들은 백범을 대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내 또래 아이들은 석오 이동녕, 성재 이시영, 그리고 백범을 전부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나는 석오, 성재 두 분만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나머지 어른들은 전부 아저씨라고 불렀다. (주석 5) 
독립운동가 어머니 정정화 여사 품에 안긴 김자동 선생
 독립운동가 어머니 정정화 여사 품에 안긴 김자동 선생
ⓒ 김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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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소년'은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당시 백범을 '아저씨'로 부르셨다지요. 백범은 회장님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 이 몸의 아명은 김후동(金厚東)이었습니다. 백범은 절 '후동이'로, 어머니를 '후동어멈'이라 부르셨죠. 백범은 제 증조부를 선생으로 모셨으니 제 아버지도 동배로 여겼나 봅니다. 두 분이 형제처럼 지내셔서 남들이 백범을 '할아버지'로 부를 시기에 저만 '아저씨'라 불렀습니다. 이런 광영이 또 있겠습니까(김 회장의 부친은 성엄 김의한 선생, 모친은 정정화 여사다. 성엄의 부친, 즉 김 회장의 조부는 동농 김가진 선생이다).

- 백범과 '후동이'의 관계는 살가웠나요.
= 글쎄요. 자주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던 것 같아요. 임정 어른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오면 귀한 초콜릿을 사다 주시곤 했어요. 백범이 주신 초콜릿 맛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윤봉길 의사와의 추억도 있나요.
= 윤 의사의 아들은 제 또래였습니다. 부인과 아들은 충남 예산 고향에 두고 윤 의사만 홀로 상하이에서 타국살이를 한 거죠. 그래서인지 윤 의사가 절 아끼셨습니다. 한 번은 고향의 가족들이 남편 먹으라고 예산에서 상하이까지 사과를 한 상자 보냈어요.

한 알씩 나눠 먹고 나머지는 홍커우공원에 좌판을 벌여 팔았죠. 상하이에서 사과는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윤 의사가 김영린에게 사과를 얼마에 팔라고 시키고서는 바로 옆에서 일본인과 '시시덕거리며' 얘길 나누더랍니다. 잡담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었던 거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의거를 일으키셨습니다. 그게 1932년입니다(홍커우공원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장소다). (주석 6)


주석
4> 김자동 회고록,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 푸른역사, 2018.
5> 앞의 책, 84쪽.
6> <'임정둥이'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매일경제>, 2019년 1월 1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자동, #김자동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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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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